못 자리에는 아파트가 수초처럼 자라나 있었다. 자라난 콘크리트 건물을 겨울바람이 휭휭 휘감았다. 그 바람을 물살인 양 가르고 지나가는 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 같았다. 내 기억이 스민 지난날이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무엇을 낚으려 했기에 그 기억의 터에 수시로 낚싯대를 드리웠을까. 못 중심에서 못 둑이던 곳까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선배와의 약속 시각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왜 나를 식당으로 불러내는 것일까? 그와 나는 각자의 삶에서 생겨나는 아픔을 슬쩍 기대곤 하던 사이였다.
비대면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적하고 쓸쓸해진 도시의 밤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과의 소소한 만남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3년째 외손녀를 돌봐주고 있느라 새벽잠을 쫓아가며 쓴 글이 수상이라는 기쁨으로 돌아와서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짤막한 시만 쓰다가 소설을 쓴다는 건 긴 노동을 자처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를 감싸온 시간을 풀어내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쓴 글이 나를 떠나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가로등 아래서 바람에 흔들리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수필 분야)에 응모한 수필 작품은 무려 765편에 달한다. 양적인 풍요로움이 반드시 질적인 우수함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학대전이 연륜을 더해가면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문인의 관심을 반영해 주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문학공모전의 우수작을 고를 때 심사위원들은 여러 가지 기준을 다각도로 논의하게 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건을 필수적으로 생각한다. 무릇 수필은 문장이 매끄럽거나 정확해야 한다. 그리고 소재에 대한 신선한 감수성이 뛰어나야 하고, 주제에 대한 날
핸드백에 자신의 얼굴을 넣고 다닙니다여자의 하루가 거울 속에 있습니다여자는 자신이 사라질까 봐 거울을 자주 봅니다궁금한 얼굴을 해석해 주는 면경을 유심히 보다가왼쪽과 오른쪽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거울 속에는 충혈된 눈과 마스카라의 눈물도 있습니다우울한 손이 거울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깨지는 소리가 사람들에게 박힌듯합니다여자 마음도 균열이 갔습니다그녀는 거울 속의 제 얼굴을 잃었습니다천의 눈을 갖은 거울은천 개의 세상을 보고 싶어 쨍그랑, 깨졌을까파편 속에서 반짝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틈이 필요하다는 걸 안 것은집 안에 가구들이 많아지고 부터이다가구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곁의 가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오래되고 낡을수록 안으로부터 조금씩 부풀어 오른 배들 벽과 벽 사이에도 틈이 숨 쉬고 있었다이어진 레일 사이에도 틈을 두었다단단할수록 간극이 필요하다 때로 틈이 사막 같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틈은 너를 너답게 하는 방식이다건물을 견디게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아내와 다투고 돌아서 바라보는 무연한 달빛달빛과 달빛 사이에도 틈이 있을 것이다 아스팔트 검은 입술 터진 틈으로 가느다랗게풀들이 외치며
한 마리의 거미가 촉수를 세운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까맣게 그을린 서까래 사이에 거미들이 이리저리 줄을 쳐놓았다. 바짝 다가가 거미줄을 살펴본다. 촘촘하니 방사형으로 쳐놓은 그물이 제법 정교하다. 자신의 몸속에서 진액을 뽑아내며 거미줄을 마무리 하던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장 틈 사이로 몸을 숨긴다.덩그런 기와집은 주인을 잃은 채 빈 집이 되어있다. 기와는 부스스하니 윤기를 잃었지만, 아침햇살은 예전처럼 두꺼운 마루에 반질반질 올라앉는다. 삐꺽거리는 마루에 올라 작은방 문고리를 잡는다. 베틀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당선 통보를 받고 기뻤지만 제일 먼저 궁금한 것은 무슨 작품이 선정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내 시를 바라보는 눈이 객관화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보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또 한편 ‘선정된 작품이 상의 가치에 값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 되기도 해서입니다. 다시 읽어 내려갔습니다. 보낼 때보다 좀 더 나은 느낌이 든 것은 상이 가지는 아우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여 독자들이 읽고 이런 시가 당선이 되다니 이런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평소에 예술의 생명은 감동에 있고 그 감동은 진실함과 새로
등산로에서 사람들이 나무의 등에 제 등짝을 부딪칩니다. 껍질의 표면에는 세상의 등짝 흔적이 묻어있습니다. 나도 딱딱해진 등짝을 나무의 등에 부딪쳐봅니다. 내 등짝에 시원한 나무의 물이 흐릅니다.오늘은 그런 날입니다.조카가 전원주택을 짓는다고 땅을 샀는데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해서 양평 전원부지에 막 도착했는데 문자를 받았습니다.당선된 기쁨과 집을 건축할 부지가 오버랩 되는 순간 땅의 기운이 따뜻했습니다.오늘은 그런 날입니다.등단을 한 뒤에 상을 받아본 이력이 없는데 주변 지인들이 응모에 도전해보라는 조언이 있어 경북일보 공모전에 참여
화창한 가을 햇볕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뜻밖의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배와 목 사이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파닥거렸습니다. 길가 찔레 덤불에서 놀던 참새도 기쁜 듯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습니다.작은 꿈을 안고, 뒤늦게 수필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맏딸로서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거미의 꿈’을 썼습니다. 썼다가 지우기를 몇 년, 이 당선 전화가 그때의 발자국 소리를 되살렸습니다.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저는 발자국이 길을 만든다
“윗집에 새로 이사 왔어.” 세면대에 물이 차오르는 걸 보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응?” 눈뿌리가 꾹꾹 쑤셨다. 난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아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한 조명 탓인지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처럼 보였다.“아침에 이삿짐 센터 차가 사다리를 올리고 있더라고. 층수를 세어보니까 바로 우리 윗집이던데?”나는 아, 하고는 투명한 액체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냉기가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난 호흡을 멈춘 상태로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던 노부부를 떠올렸다. 그들은 종종 늦은 저녁에 자그마한 개를 끌고 산
거듭된 탈락의 고배는 생각보다 썼습니다. 휴대폰은 끝내 울리지 않고, 전 나중에야 누가 당선 되었는지를 조용히 검색해 보며 제 글에 대한 부정적인 의심을 품고 또 품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절 안타까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지요.그렇다고 글을 놓을 순 없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착상된 생각의 씨앗들이 고찰이란 영양분을 공급받아 점점 자라나고, 그것이 결국 활자로 꽃을 피울 때의 감정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종류의 기쁨이기 때문이었습니다.그동안 글쓰기는 제게 좌절의 고통을 주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충분히 상
눈만 뜨면 들려오는 무거운 소식들, 긴 한숨 소리에 지쳐가고 있었다. 습관처럼 공모전에 도전하고 낙선을 반복하며 자존심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울리는 안전문자가 지겨울 무렵 날아든 당선 소식! 정말이지 오랜만에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혹독한 겨울을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싹 사라진 기분이다. 기다리다 보면 이렇듯 행운이 깃들기도 하나보다. 한동안은 꽤 들떠 있을 듯하다. 오래 묵은 장맛이 좋다고 하듯 이번 당선작은 3년 전에 쓴 초기작품이었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퇴고를 해왔었다. 당선통고 후
비가 내리면 오랜 습관처럼 시장에 간다. 우산에 수가 놓인 날염 꽃들 덩달아 비속으로 숨어들었다. 겨울비에 젖은, 터가 넓은 시장 안은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상인들의 머리 위로 안개가 피어올랐다.시장 한가운데쯤 그녀의 노점을 만날 수 있다. 부산에서 대구로 시집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할 때 시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의 가게에 들러 그녀가 정성껏 내어 주는 수제비 한 그릇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온다. 따뜻한 국물이 속을 덥혀오면 세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위로되는 것 같
올해는 코로나19 영향 탓인지 소설 부분에서는 작년보다 조금 적은 296편이 응모되었다. 이 중에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45편이었다. 세 심사위원은 15편씩을 나누어 읽고 그 중 14편을 최종 본심에 올렸다. 최종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다시 윤독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집중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뒤틀린 소리」「선샤인타운」「6번국도」「지층의 갈피마다 망각이 끼워져 있다」등 4편이었다.「뒤틀린 소리」는 층간 소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문장이 활달하고 요소요소
본심 심사위원 네 명에게 넘어온 작품은 예심을 거쳐 올라온 60편이었다. 그것을 네 명이 나누어 몇 번을 거듭 윤독했다. 그런 연후 19편을 1차로 걸러냈다. 걸러낸 19편을 다시 윤독해 그 중 상위 4편을 골라냈다.대상 수상작이 된 백명순의 ‘서문시장 수제빗집’을 뽑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작품에 비해 완성도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돋보여 심사위원 모두가 이견 없이 최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다시 2차로 나머지 18편을 심도 있게 논의한 끝에 전종대의 ‘틈’을 금상에, 이종호의 ‘면경’과 안행덕의 ‘을숙도 현대미술
도어록 번호를 눌러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문을 열어젖히자 겨울들판 같은 황량한 거실이 민낯을 드러낸다. 그녀가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고인 공기들이 와락 달려들어 코 점막에 들러붙는다. 시큼한 곰팡내가 코를 찌른다. 그녀는 환기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세탁실로 종종걸음 친다. 세탁조 뚜껑을 열고는 보스턴백에서 꺼낸 비닐봉지를 쏟아 붓는다. 쉰내가 뭉근하게 올라온다. 그녀가 콧등을 찡그리며 액체세제를 들이붓고 세탁기의 전원버튼을 누른다. 세탁조에 물이 차오르자 세탁기 뚜껑을 닫고 거실로 나온다.사흘 전, 그녀는 시모가 입원해 있는
빗물 질펀한 시장을 가로질러 노점에 닿는다 양은 솥 가득 수제비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연신 코를 벌렁거리며 게딱지 손으로 쉼 없이 수제비를 뜯어내는 그녀의 저 재바른 손놀림, 겨울비 내렸고 생의 절반이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뚝 떨어져 나간 남편과 어린 자식 삼 남매와 빚덩이만 밀가루 반죽처럼 게딱지 손끝에 매달려 있다팔자라 말하기엔 아직도 잘라버리지 못한 것들 손끝에서 댕강댕강 양은 솥 안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어야 살아가는 삶, 밀가루 반죽은 ‘뚝 뚝’ 그녀를 잘라 먹는다 숨을 쉬는 동안 끝나지 않을 눈물을 밀랍 하는 일 찜통에 담아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지향하는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당선된 51편의 작품들이 경북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된다.이번 문학대전 당선작 소개는 공동대상을 수상한 시 부문 백명순(대구 남구)씨 ‘서문시장 수제빗집’과 소설 부문 이은정(경북 경주)씨 ‘선샤인타운’과 함께 시작된다.시·소설 부문 7명의 심사위원들은 백명순씨의 ‘서문시장 수제빗집’에 대해 “다른 작품에 비해 완성도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돋보여 심사위원 모두가 이견 없이 최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또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낯선 언어들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지향하는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국내·외 총 3191편 작품이 응모된 가운데 시 부문 백명순(대구 남구)씨 ‘서문시장 수제빗집’과 소설 부문 이은정(경북 경주)씨 ‘선샤인타운’이 각각 공동대상을 차지했다.경북일보문학대전운영위원회는‘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심사결과 공동대상과 금상, 은상, 동상, 가작에 시 부문 19명, 소설 부문 13명, 수필 부문 19명 등 모두 51명의 당선작을 발표했다고 3일 밝혔다.이번 공모전은 산소카페 청송을 문학의 고장으로 알리는 계기로 삼고 청송의 뛰어난 절경과 관광
지난 주 산을 다녀왔다. 산을 물들인 것은 단풍이 아니라 사람의 물결이었다. 그 속에 끼인 채 앞의 사람 뒤꼭지만 보고 올랐다. 답답해서 갓길로 비켜나 풍경 한 컷을 남기고 올라온 길을 돌아본다. 산길은 여러 갈래인데 길마다 넘쳐나는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했을까, 휩쓸려서 걷고 있는 것일까. 돌아보는 길 위에서 받은 당선 소식은 기쁘면서도 숙제를 받은 듯하다.글을 쓰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글밭에서 헤매는 사색의 시간이 길어질 때는 지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수없는 의문부호를 던질 때가 많다. 산이 깊으면 숨겨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