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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방이라 가리킨 곳은 신문지 위의 한 뼘 신문지 한 장의 온기란 추위의 다른 이름이다 신문지 한 장의 등걸잠이란 살얼음이다 바람은 징의 동심원을 돌면서 그의 추억 속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집을 짓는다 신문지 옆에 벗어놓은 신발은 지금 발굴된 고분의 금동 신발처럼 부식이 진행 중이다 신문지 한 장에 자꾸 쏟아지는 모래여, 사람 대신 울어준다는 명사산이여 한때 따뜻한 피돌기를 하던 저녁 불빛들은 이미 박제가 되었기에 가끔 불러보는 이름처럼 마른 피처럼, 눌러 붙었다 ...
아침시단
20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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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그 어떤 허세에도 굴하기 싫어했던 '큰 사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겠다는 아이같았던 사람, 천진 무구함으로 인간의 길을 일러준 그가 왜 짐...
아침시단
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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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
아침시단
20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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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게도 눈물 나리라 한 줄기의 냇가를 들여다보면 나와 거슬러 오르는 잔 고기떼도 만나고, 그저 뜨는 마름풀 잎새도 만나리라. 내 늙으면, 어느 냇가에서 지난 날도 다시 거슬러 오르며 만나리라. 그러면 나는 눈물 나리라. 이 시를 읽으면 행간마다 젊은 날이 걸어 나온다. 마른 잎새 뜬 강을 거스르며 나는 얼마나 외로워던가. 또 얼마나 눈물났던가. 그 시절의 강가를 걸을때면 지금도 나는 '마름풀'뜨는 강물에 눈이 시려온다. (진은정시인)
아침시단
200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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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용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 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 가락으로 비단 옷을 입은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
아침시단
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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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에 즈음해 어머니 털실 가게 다녀왔다 내 머리통을 신문지에 본뜨고 날마다 조금씩 키우기 위해 어머니 실타래를 당길 때마다 함지박 안에서 나는 탯줄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돋보기 편안하게 조는 밤 반만 완성된 모자 속으로 자꾸 기억을 들이밀면 라면발처럼 엉킨 어머니의 헌 실은 오빠의 스웨터에서 언니의 조끼로 잘도 둔갑했다 선술집 색시 간드러지는 노랫소리 깊은 밤 삼켜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몇 번이나 삶을 짜다 풀었는지 아랫목에 앉아 끝없이 ...
아침시단
200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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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 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생겨나면서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가 찻물을 새지 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 벽도 ...
아침시단
200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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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 네가 준 방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식지 않은 향기가 뚝뚝 넘쳐 나지만 너를 송두리째 틀어쥐고 싶어 자꾸만 배가 고파 나는 뻗어가 손톱이 겁도 없이 마구 돋아 너는 내 몸을 꽃피우고 다시 잎 지우고 나는 벌써 몇 생이 헛손질이었어 아직 가시 남았을 때 뿌리 거두어 줘 손톱 자르고 싶어 속속들이 열어봐야 직성이 풀릴거라구 무엇이던 밀어내고 말거라구 네 안 방방곡곡 그래 만발하고 싶어 내겐 낯선 어둠 같은 것 먹히고 싶어 ...
아침시단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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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불을 켜지 않은 방에 앉아 있으면 커다란 뒤주 속에 있는 것만 같아 어둠의 알갱이를 나는 만질 듯한데 간혹 창문을 바라보는 거 있잖아 새벽 세 시의 창밖을 바라보는 거 말야 어둠의 알갱이를 만지다 내가 곤두선 밥알처럼 단단해질 것 같은, 누에고치처럼 말야 이런 새벽이면 한 가닥 실을 잡고 잠들면 좋겠어 네가 다른 한쪽을 잡아당기면 가늘지만 끈끈한 그 실을 타고 꽃들이 내려갈 것이고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에서 꽃들은 네 옷 위로 피어나겠지만 그러면 ...
아침시단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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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방이라 가리킨 곳은 신문지 위의 한 뼘 신문지 한 장의 온기란 추위의 다른 이름이다 신문지 한 장의 등걸잠이란 살얼음이다 바람은 징의 동심원을 돌면서 그의 추억 속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집을 짓는다 신문지 옆에 벗어놓은 신발은 지금 발굴된 고분의 금동 신발처럼 부식이 진행 중이다 신문지 한 장에 자꾸 쏟아지는 모래여, 사람 대신 울어준다는 명사산이여 한때 따뜻한 피돌기를 하던 저녁 불빛들은 이미 박제가 되었기에 가끔 불러보는 이름처럼 마른 피처럼, 눌러 붙었다 ...
아침시단
200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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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언제 한 번이라도 나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며 지나온 삶을 뒤적여 본 적이 있었던가. 말간 얼굴로 현관문을 나서는 이 아침, 나도 살다가 때로....
아침시단
200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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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물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맹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어느 겨울 깊은 호수는 얼어붙고, 냉랭한 호수에 돌맹이를 던지면 얼음은 꿈쩍않고 산만이 쩡쩡 울린다. 얼음이 다 녹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와도 돌아오지 않는 네 이름을 부르는 일, 누군가를 그리는 일은 이처럼 메아리만 남는 일이다.
아침시단
나희덕
200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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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한 자리에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 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봐, 저것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이토록 아름다운...
아침시단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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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숨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같은 여자, 시집(詩集)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아침시단
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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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있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식구처럼 의지하며 살아가는 할머니와 소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동물과도 오랜 세월 교감하면 이처럼 믿음직한 정이 생기나 보다. 오늘 하루 잘 지났다고 위로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비 몇 방울이 흐린 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처럼 무의식의 세계로 퍼져간다. (진은정시인)
아침시단
200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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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저녁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 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 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를 비추며 기나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텅 빈 공원같은 내 마음엔 하루 종일 부우연 먼지만 쌓이고...... 소리없이 사그라드는 저녁빛에 잠겨 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먹임에 귀 기울이네...... 부서진 꿈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 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가오는 창강 서서 붉은 저...
아침시단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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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아침시단
200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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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놓은 논두렁에 고인 물을 본다. 마음이 행복해진다. 나뭇가지가 꾸부정하게 보이고 햇살이 번지고 날아가는 새 그림자가 잠기고 나의 얼굴이 들어있다. 늘 홀로이던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 누가 높지도 낮지도 않다. 모두가 아름답다. 그 안에 나는 거꾸로 서 있다.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이 본래의 내 모습인 것처럼 아프지 않다. 산도 곁에 거꾸로 누워 있다. 늘 떨며 우왕좌왕하던 내가 저 세상에 건너가 서 있기나 한 듯 무심하고 아주 선명하...
아침시단
이성선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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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지표위에서 가장 기품있는 건목(建木), 소나무, 머리에 눈을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이 오만함과 당당함의 시인 , 대단함이다. 날마다 진저리쳐지는 살아있음의 모욕, 눈들어 오래된 소나무를 쳐다본다. 그리고 휘어...
아침시단
황지우
200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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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꿈꾼다 "나는 관념적 그림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열정인 것이다." 좋은 작품은 늘 강렬하며 감동적이다. 그것은 바로 삶의 핵심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재미화가 박혜숙씨의 말 역시 시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아침시단
200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