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봄은 언제나 강을 건너서 온다. 바람에 실린 봄은 시린 강을 버겁게 건너와서 강둑에 먼저 다리를 푼다. 변함없이 시퍼럴 것만 같았던 강물도 계절따라 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계절에 가장 민감한 것이 강물이 아닌가 싶다. 땅속에서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겨우내 몸도 마음도 웅크리고 있다가 강변에 나와보니, 불어오는 바람에도 햇살에도 봄이 가득 실려 있다. 동지섣달 삭풍 속에서 불면의 날을 보낸 나무들은 침묵한 채 그러는 것 같았다. “다시는 꽃도 잎도 피우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경칩 날, 때 아닌 봄눈이 나무들의 ...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 시대 비스마르크를 도와서 덴마크, 오스트리아 및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독일 통일에 기여한 탁월한 군사전략가 폰 몰트케 장군은 젊은 시절의 실패는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실패한 다음 실의에 빠져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일어서 앞에 놓인 두갈래의 길 중 하나를 다시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택의 결정만큼이나 실천을 중시한 영국의 철학자 러...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고 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생명만을 영위하는 식물인간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개의 인간의 생명활동은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많은 고찰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삶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문명이 있어온 이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한 영원한 숙제이다. 혹자는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구도의 삶을 살기도 한다. 유사 이래 무수히 많은 현자와 깨달은 자들이 이에 대한 물음과 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였지만 그 물음에 도달한 자는 ...
3·1절을 지난 지 두 주일이 넘어 선다. 해마다 국경일로 맞이하는 3·1절 행사는 최근에 와서 의례적으로 하는 형식적인 행사로 끝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일 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중에서 전국의 모든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참여한 민족 최대의 저항운동이 3·1운동이다. 이 운동의 정신은 이해관계를 초월한 민족의 단합과 구국일념(救國一念)에 불타는 순수한 민족자존을 바탕으로 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3·1정신이 결코 망각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의 조선총독부 탄압정치가 극에 달하고 ...
지난 해 산골에 허름한 농가주택을 한 채 구입하고는 넉넉한 시골 인심과 정취에 푹 빠졌다. 처음 접하는 시골 생활이라 주말만 기다리는 해바라기 생활로 1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골에 가면 한숨이 나온다. 사연인 즉은, 여름 시골에선 아주 조금의 텃밭농사 후에 마을 앞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일이 큰 재미이기도 한데, 낚시를 하고 있노라면 지저분한 낚시터가 마음에 걸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쓰레기를 볼라치면 주로 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로 낚시미끼통 등 낚시 관련 쓰레기는 물론 라면 과자 포장지에 술병 그리고 ...
“임교수 자네 운동권 교수 맞제!” “예, 운동을 즐겨 하는 편입니다.” “그기 아이고, 교수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데모한다 카데!” “데모라니요?” “대학에서 교수협의회 조직해가주고 이상한 서명이나 하고, 정부 비판하는 글만 쓰드구만. 민중문화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자네 책도 그런 냄새가 상당히 풍기드만.” “난 또 무슨 얘기라고요. 교수가 교수협의회 활동 안 하마는 학생들이 합니꺼. 교수가 정부 비판하는 글 써야지 그럼 장사꾼들 보고 써라 칼까예. 교수가 소신에 따라 서명도 하고 비판적인 글도 쓰고 문화운동도 해야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무사히 저승에 도착하셨는지요? 옛날 농경사회시절처럼 설 차례상도 푸짐하게 차리지 못하고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셔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사는 누추한 아파트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동 호수를 찾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으셨을텐데……. 할아버지, 설이나 추석명절 또는 제사 때 이곳 이승까지 오시려면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시는지요? 진짜 오시기는 꼭 오시는 건가요? 저는 그게 늘 궁금하더군요. 할아버지께서 이승을 떠나신지 어느덧 55년째입니다. 6.25 동란이 나던 해 돌아가셨...
초저녁, 무심코 고개를 들어 산을 보았다. 컴퓨터를 트인 공간에 두고 있는 까닭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몸에 밴 버릇이다. 한데 눈 쌓인 산등성이로 웬 물체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뭇가지사이로 절반의 모습만 보이고 있는 반투명한 물체, 순간적으로 나는 ‘저게 뭘까’했다. 눈의 초점을 모아 다시 보니 달이었다. 열엿샛날 달. 글 쓴다는 사람이 달뜨는 풍경 앞에서 ‘저게 뭘까’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멍한 상태에서는 눈에 익은 사물도 엉뚱하게 보인다는 걸 체험했다고나 할까. 지극히 조용한 사람의 움직임처...
요즘 시대의 화두는 웰빙이다. 대부분 사람의 소원은 행복한 삶, 즉 웰빙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중에서도 삶의 질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육체 및 정신적 허약과 병일 것이다. 노화도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각종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서 찾아오는 질병 때문에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감안한다면 역시 웰빙의 첫번째 화두는 병의 예방과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나 국가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일본 우익잡지에 한모 교수가 일본의 식민지배가 다행스럽고 ‘축복’해야 할 일이라고 섰다. 또한 친일을 무조건 반민족 행위로 몰아붙이는 것은 여론물이식 인민재판이며 ‘망국의 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이런 글을 썼지만 추호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인터뷰까지 했다. 일본 식민지 지배를 축복이라고 말한 것은 국민감정을 고려할 때 지나치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이며 당시 일본에게 먹히지 않았다면 러시아에 복속되어 조선이 공산화되고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한민족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라는 반론을 제...
지난해 수도권 일부 대학 입시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전국이 시끄러웠다. 당시 해당 대학들은 내신 부풀리기 때문에 고교성적을 신뢰할 수 없고 현실적으로 각 고교간의 학력격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강남 8학군은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아 모든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아파트 가격도 다른 곳보다 훨씬 비싸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열이 높고 학원도 많은 등 교육환경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수학생들이 집안형편만 되면 강남으로 몰려가는 것이다. 고교 평준화를 시작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
최근 우리 사회는 고령화 추세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령사회에 대비한 대책을 이미 준비했어야 했는데 늦게나마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고 향후 대책 시나리오까지 작성하는 등 고령화 사회 돌파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전후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2020년쯤이면 노인층에 대거 접어들게 되고 최근의 저출산 풍조가 맞물려 우리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를 넘는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로 2000년에 이미 진입...
대중가요 가사 중에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고 하는 노래가 애창되고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는 긴 세월을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면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을 것이다. 이것들이 애창되는 우리 사회는 아무리 컴퓨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어도 일년에 두 번 이상은 어김없이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낸다. 설이나 추석은 본래 열심히 일한 이후에 휴식을 즐기는 명절이었지만 이것이 언제부턴가 조상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먼저 표해야 하는 조상숭배의 전통으로 변화되었다...
최근 일본의 시마네(島根) 현 의회에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 ‘다케시마(竹島, 일본의 독도 명칭)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가 상정되었다. 이 조례 상정은 시마네 현이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우리의 독도를 시마네 현 오키(隱岐) 군 오키노시마(隱岐의 島) 정에 편입한 것이 지난 달 22일로 100주년이 된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아시아 침략을 정책목표로 한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그 여세를 몰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을 체결한 것이 바로 이 해이다.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제국주의의 분...
지난 26일 경북일보에 ‘보험금 노려 식당에 불지른 60대 체포’라는 제하에,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의 영업이 잘 되지 않아 빚을 지게 되자 5억원 규모의 화재보험에 가입한 뒤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불을 지른 혐의(방화)로 60대를 붙잡아 조사중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보험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경제 제도’라는 찬사를 듣곤 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할 경우 원상복구에 필요한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보험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보험사기와 보험범죄의 규모가 대형화,...
“여기 차들이 왜 갑자기 정체되지?”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가 봐.”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하길래 밤낮 시위야! 불편해서 죽겠네.” “지율 스님 살리기 촛불시위인데, 정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 “왜 없어. 대선 공약으로 터널공사를 중단할 것처럼 이야기했다가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니 그렇지!” “그게 어디 정치 탓인가? 국책사업과 환경문제의 충돌 현상이지.” “어쨌든 정치를 좀 잘 해봐! 광화문 앞에 저따위 시위가 있는가. 괜히 시민들만 불편하잖아.” “그럼 전에는 정치를 잘 해서 줄곧 화염병 시위가 일어나고 최...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키 위하여 개최된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EXPO)의 상징물로 건축된 것이다. 당시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이 탑은 무려 7천5백t의 강철만을 사용하여 317m 높이로 쌓아진 것이다. 탑이라면 석탑이요, 건물이라면 석조를 최고로 치던 시대에 파리시내 어느 곳에서든지 고개만 들면 이 거대하고 드높은 철탑이 눈에 들어와 매우 흉물스럽게 느껴졌던지 이것을 싫어하는 명사가 꽤 있었던 것 같다. 작가 모파상은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란 에펠탑 안 밖에 없다고 생각돼 에펠탑내 식당...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다가 살기가 어려워지면 두 가지 상반되는 사회 현상이 일어난다. 그중 부정적인 것은 물질이 주는 쾌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사기, 강도 등의 행위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경우이다. 긍정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다 잘 이해하여 작은 것이나마 정성을 나눌려는 자세이다. 이미 우리 모두는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최빈국에 해당되는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의 삶의 만족도가 여타 선진국이나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는 나라보...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중 하나인 비빔밥은 전주, 진주, 해주가 유명하고 그중 전주비빔밥이 가장 유명하다. 1800년대 말엽 에 처음으로 용어가 언급된 비빔밥은 이미 지어논 밥에다 여러 가지 찬을 섞어 비빈 것이란 의미로 골동반(汨董飯)이라 불렸다. 조선시대 임금이 가벼운 점심으로 먹는 밥에서 유래되었다는 궁중 음식설, 음복설, 동학혁명 음식설, 임금 몽진설 등 그 유래에도 다양한 설이 있다. 유래에서 보듯이 비빔밥은 궁중음식과 민중음식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의미 깊은 우리나라 대표음식이다. ...
‘풍경(風景)’은 바람과 경치가 합해진 말이다. 적어도 두 개 이상 어울림이 있어야 한다. 경치는 모양과 빛깔이 있으나 정적인 것이며, 바람이 있어야만 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나의 사물이 아닌 또 하나의 사물이 있어야 생동감을 갖고 아름다워지는 게 아닐까. 겨울 해질 녘 느티나무가 노을을 배경으로 빛을 뿜는 듯 보이는 건 제 혼자 만으로서가 아니다. 한 잎도 남김 없이 떨쳐버린 가지들이 수천 갈래 하늘로 뻗힌 모습은 섬세하고도 고요롭다. 그러나 노을빛과 어둠에 묻힐 산능선과 어울리지 않았다면 경탄하지 않을지도 모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