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정경부장
이종욱 정경부장

30년 전 해병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숱한 베트남전 영웅들과 만나고 일했었다.

내가 근무하던 부서 선임하사관(부사관)도 베트남전 최대의 전과로 기록된 ‘짜빈동전투’의 영웅이었다.

짜빈동 전투는 1967년 2월 15일 새벽 4시 해병대 1개 중대가 지키고 있는 중대전술진지에 대해 2개 연대규모의 월맹정규군과 게릴라군(일명 베트콩)이 급습하면서 이뤄졌다.

해병대는 새벽부터 4시간여에 걸친 이 전투에서 300여 명(추정 포함)의 적을 사살했고, 15명의 전사자(부상자 중 추가 사망 4명)만 내는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당시 베트남 외신들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를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며 대서특필했고, 미 육군은 중대전술기지 FM(Field Manual·야전교범)으로 채택했다.

나는 이 전투의 영웅이었던 화기소대장을 지휘관으로 모셨고, 후일 당시 중대장도 만났었다.

그러나 많은 베트남전 영웅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유독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우리 선임하사관이 했던 말이었다.

"살아 있는 우리는 영웅이 아니지요. 진짜 영웅은 그 전투에서 숨져간 전우들입니다."

나는 선임하사관의 이야기를 들은 뒤 매년 6월을 맞을 때마다 조국과 겨레를 위해 헌신한 군인과 경찰·학도병, 그리고 순국선열들을 생각하게 됐다.

한반도는 유사 이래 지정학적 특성상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자와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자의 야심들에 의해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숱한 고난의 역사를 지켜낸 것은 어쩌면 이 산하에서 이름 없이 숨져간 영웅들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들이 나라와 겨레를 지켜온 것인 양 치적 알리기에 혈안이 됐고, 그 아전인수격 치적 남기기는 현대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거나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국립묘지나 충혼탑을 찾는 행사를 갖지만 정작 그들이 순국선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일제강점기 많은 독립투사들의 후손이 가난과 고통 속에 살고 있으며, 한국전쟁에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과 전상자들은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단 전쟁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올 들어서도 화재진화현장과 구조현장에서 산화한 소방관을 비롯 국가와 사회,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숱하다.

하지만 우리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줬는가?

또 국민들은 그들의 헌신에 어떤 존경을 보내왔는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지난 2015년 LG복지재단이 ‘의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보탬, LG 의인상’을 설립하고, 2019년 포스코청암재단이 ‘포스코히어로즈펠로’를 설립해 국가와 사회·국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그들의 헌신이 존경받아야만 또 다른 국난과 또 다른 사회적 재난,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할 때 모든 국민이 주저하지 않고 헌신할 것이라 생각한다.

2020년 6월을 하루 남겨 놓은 날, 조국과 겨레를 위해 산화한 고귀한 영령들의 충정을 가슴에 새기면서 나 역시 위기에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이종욱 정경부장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