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병풍 치고 오어지 마당 삼아 마음의 시름 잊네

쉼터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일가족이 평화롭다.

경북 포항의 ‘포항 12경(景)’중 하나인 ‘오어지(吾魚池)둘레길’을 지루한 장마가 주춤하는 사이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이던 8월 첫 주말에 찾아 나섰다.

녹음이 짙푸른 길을 따라 시내에서 30여 분 자동차로 달려 닿은 너른 오어사주차장에 차량이 얼마 없다. 긴 장마에다 코로나여파로 나들이 나온 탐방객이 그리 많지 않다. 주차장에서 오어사까지 오어지 푸른 물색과 벚나무 녹음이 어우러지는 신작로를 걷다 보면 원효교와 혜공교를 건너 오어사 일주문인 ‘운제산 오어사(雲梯山 吾漁寺)’라는 현판이 걸린 높은 문루를 지난다. 햇빛 쏟아지는 오어사 주차장에도 차량통제 전에 올라온 차량 몇 대만 있을 뿐 인적이 드물다. 경내를 들어가기 전 오른쪽 경사지를 올라가는 자장암 오름길이 숲속 에서 얼굴을 내민다.

원효교 주탑에 채색된 용과 잉어 문양이 이색적이다.

둘레길 트레킹을 마치고 경내를 둘러볼 생각으로 좌측으로 난 원효교 출렁다리를 건넌다. 전체 길이가 118.8m, 폭 2m의 현수교로 높이 15m 주탑 4기에 단청형태로 채색된 잉어와 용문양이 오어사의 설화와 이어져 다리를 건너는 탐방객들에게 입신, 출세의 관문에 이르게 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짙은 녹음사이로 잔잔한 오어지 물결이 얼굴을 내민다.

오어지둘레길은 운제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신라 천년고찰 오어사의 지형 특성을 살려 편안하게 수변경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게 만든 힐링로드로 총길이가 7㎞,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라고 안내한다.

원효교 주탑과 출렁다리 모습.

비상(飛上)하는 용과 거센 물살을 가르며 튀어 오르는 잉어문양을 좌, 우에 채색한 주탑 사이로 출렁거리는 다리를 흥미롭게 건너자마자 만나는 시(詩)한편이 눈길을 잡는다. 오어사 전경 사진 밑에 적힌 윤석홍 시인의 ‘그대 오어사에 와 보셨나요’ 라는 시(詩)내용이 잔잔한 감흥을 준다.



- 그대 오어사에 와 보셨나요/

적바림에 잊고 있었던 혜공이 원효를 만나던 날/

오어사 동종이 바람에 텡텡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기운 빠진 여름이 풍경에 매달려 소리공양을 올리고/

제비집 처럼 지어진 자장암과 산깊은 원효암에 올랐습니다/

오어지가 보이는 법당에 인연이 물살로 흔들리고/

산속 암자에 눌러 앉아 그냥 쉬고 싶어집니다/

혜공과 원효의 내공이 듬뿍 담긴 비빔밥 먹다/

고기 똥 떨어지는 소리에 물고기 바람타고 올라갑니다/

그대 정말 오어사에 와 보셨나요.-

운제산 오어사 일주문이 높게 서있다.

오어사와 오어지, 원효와 혜공, 자장암과 원효암, 이 한편의 시(詩)에 모든 것이 파노라마가 되어 눈에 어른거린다. 시를 쓴 윤석홍 시인은 필자도 잘 아는 산악인이라 더욱 친밀감이 든다. 감칠맛 나는 시어(詩語)에 취해 본격적인 둘레길 트레킹의 의미를 잊을 뻔 한다. 원효교 건너 좌측으로 난 오솔길에 야자잎으로 만든 매트가 단아한 모습으로 탐방객을 맞는다.

200여m를 가다 만나는 첫 쉼터에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단란한 한 가족이 탁자에 앉아 오어지 물바람과 짙은 녹음 속 여름나기를 하는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와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가족의 참모습을 느끼게 만든다. 쉼터 앞에 놓여 진 포토존 사각액자 안에 오어지 물결이 바람에 일렁이고 산 그림자가 내려와 앉았다. 야자매트를 지나 데크길이 길게 이어지고 물가로 휘어진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번갈아 가며 물속을 헤집고 나간다.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 2급이라는 남생이와 닮았다는 ‘남생이 바위’가 물속에서 불쑥 올라와 사라져 가는 남생이를 살려달라는 듯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소소히 불어오는 물바람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하는 탐방로가 산객의 마음도 흔들리게 하는 듯 지루하지 않게 이어진다. 한 구비 경사진 산길을 올랐다 내려서면 물가 평탄한 곳에 곧게 뻗은 메타쉐콰이어가 숲을 이루는 쉼터에 닿는다. 편안하게 누워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벤치도 있고 여럿이 둘러 앉아 즐길 수 있는 평상과 정자도 보인다. 연인들이 함께 탈 회전그네도 있다.

관어정에서 본 파란하늘과 흰구름,짙은 산이 한폭의 그림이 된다.

‘관어정(觀魚亭)’ 이라 이름 붙인 육각 정자에 앉아 잔잔한 호수의 물비늘을 바라보며 일상의 번뇌를 떨쳐본다. ‘오어사(吾魚寺)’의 절 이름이 지어진 유래로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설화(법력으로 살려낸 물고기가 서로 자기(吾), 고기(魚)라고 주장했다는)를 설명한 현판이 붙어 있고 정자 지붕 속으로 들어온 파란하늘과 흰 구름이 한여름 풍경을 더하는 호숫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휴식의 꿈 속을 헤맨다.

휴식의 단잠에 취한 메타쉐콰이어 숲을 떠나 산바람이 일렁이는 탐방로를 따라 다시 길을 재촉한다. 숲 속으로 난 길 옆에 쌓다만 돌탑이 여기저기 보이고 한차례 낮은 고개를 넘으면 고을 원님이 심산유곡을 가는 행인들을 위해 숙식할 수 있는 집을 지어 놓았던 터가 있는 골짜기를 ‘원터골’이라 불렀다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는 원터골은 이른 봄이면 야생화천국이 된다. 야생화 군락지가 넓게 분포된 이곳이 전국의 야생화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이름나 있다. 오어지 둘레길 소개에도 나오지 않는 비경이 숨어 있고 탐닉하는 애호가들만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원터골의 진면목이 오래도록 보존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안항사 입구 쪽으로 간다. ‘대골’이라고도 불리는 원터골에서 안항사 입구까지는 1.6㎞로 평탄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고 ‘황새등 쉼터’를 돌아 수변 숲길을 30여 분을 간다. 오어지가 남북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어 건너편 둘레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항사리(恒沙里)의 지명에 따라 남쪽 상류지점을 ‘안항사’라 부르며 북쪽 저수지 댐이 있는 곳을 ‘바깥항사’라고 한다.

오어지 둘레길 총 길이가 7㎞이지만 탐방로로 조성된 곳은 절반 정도이며 나머지는 포장도로라 걷기에는 그리 편한 곳이 아니라 대체로 안항사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회귀트레킹을 많이 한다. 호숫가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시원한 숲 속으로 걸으며 무상무념에 빠져보는 것도 각박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며 걷는 산길과 전망 좋은 쉼터에서 짙은 녹음과 파란하늘, 흰 구름, 은빛물결을 보노라면 모든 시름을 잊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어 도회지 사람들의 힐링공간으로 제격이다.

다시 원효교를 건너 오어사 경내로 들어간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하여 ‘항사사(恒沙寺)’라 부르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설화가 ‘오어사(吾魚寺)’ 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오어지 서쪽 끝자락 계곡 양쪽에 원효암과 자장암을 품고 있는 오어사는 운제산(雲梯山·478m)이 병풍처럼 받혀주고 있는 이름난 신라고찰이다. 운제산의 이름에 얽힌 스토리가 흥미롭다. 신라고승 네 분(원효, 자장, 혜공, 의상)이 이곳에서 수행할 때 원효암과 자장암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구름으로 다리를 놓아 다녔다는 설화로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자를 사용하여 운제산이라 했다는 이야기와 신라 2대왕 남해왕의 왕비인 운제부인(雲帝夫人)의 성모단이 있다 하여 운제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는 유서 깊은 산이지만 현세에서는 포항 남쪽지역 대표 산으로 많은 등산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인근에 해병대교육훈련단이 있어 신병훈련의 마지막 코스로 전통이 나 있는 ‘천자봉 행군’ 코스이기도 하여 많은 해병대원들에게는 추억의 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어사 경내에 있는 ‘동종’이 고려 고종 3년(1216년) 제작된 것으로 그 당시 동화사 스님들이 경비를 들여 종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것으로 1996년 저수지 준설로 세상으로 나와 보물 1280호로 지정된 진귀한 유물이다. 전에 없던 해수관음보살상과 절 마당에 오래된 배롱나무 붉은 꽃이 한여름 뙤약볕에 수줍은 듯 피어 있는 신라고찰 오어사를 둘러보고 부처님께 삼배 드리며 절집을 나선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숲속에서의 힐링으로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8월 한여름의 ‘걸어서 자연 속으로’ 의 힐링 앤드 트레킹 열한 번째 스토리를 운제산 자락에서 끝을 맺는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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