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보여지는 모더니즘 구현 추상회화 이목

손아유

1949년 9월 오사카 소네사키(曾根崎)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화가 손아유의 호적증명서에는 경상북도 영일군 동해면 임곡리 592번지에서 부친 손수익(본관 경주), 모친 장을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재돼 있다. 재일 한국인들은 부모의 본적지를 출생지로 기재한다. 손아유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색의 위치’라는 작품에서 고추의 붉은 색을 연상시키는 민족적인 색채가 투영돼 있음을 보더라도 출신(족보)이라는 뿌리가 손아유의 예술세계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다.

자화상.포항시립미술관 소장.

2010년 7월 손아유 작품 2000여점을 포항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컬렉터 하정웅 선생(이하 하정웅)은 평소 손아유가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고향에 수장되기를 소망하던 작가의 꿈을 실현해주었던 사람으로서, 우리지역 입장으로서는 미술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해 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이다. 하정웅의 기부는 우리지역 기증문화 정착에 씨앗을 뿌렸으며, 무엇보다도 궁핍한 포항미술사에서 깊이와 넓이를 만들어 가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큰 꽃망울을 피우려면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고, 충분한 물과 햇빛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역사상 예술분야에서 가장 화려한 성과를 거둔 르네상스는 예술가들에게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물과 햇빛을 마련해준 코시모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활동했던 재일작가들의 작품들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뻔 했던 귀중한 문화유산을 하정웅의 따뜻한 햇볕 같은 정신으로 빛을 발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손아유도 마침내 고향에서 그의 작품들이 안착하게 되었다. 자화상을 비롯한 풍경화, 정물, 꼴라쥬, 비정형적인 형태의 작품, 엽서 크기 만한 판화와 드로잉 수백 점의 작품들은 손아유의 예술에 대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우라로 손아유에 대한 삶의 기록적 여정들의 결정체이다. 손아유의 많은 작품들이 하정웅에 의해 전국공립미술관에도 소장돼 있어 손아유가 우리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희소성의 가치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손아유가 우리지역 출신임을 알리고 손아유의 존재감은 국내에서의 위치는 크다.
 

예향색.포항시립미술관 소장

손아유는 ‘자신의 작품들은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최악의 환경은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재료로서 작용 된다. 인간의 심리적인 불안은 자신의 육체를 혹사시키며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몰두하게 되고 거기에서 파생된 행동들은 또 다른 세계관을 발견하면서, 불안한 정서를 정화하려는 심리가 있다. 손아유의 작업들에서 엿 볼 수 있는 것은 평생 그가 겪었던 우울증 증세와 재일작가로서 정체성의 불안이 작업에 몰두하고 집착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일면들은 다양한 회화적 표현 방법과 실험의 결과물인 엄청난 다작의 작품을 남기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손아유의 작품들은 색의 위치, 형태의 소거 또는 거리의 위치, 공간의 표리의 명제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의식 혹은 무의식 상태에서 점을 찍어나가거나, 색과 선을 그어나가면서, 선하나 점하나에 대한 존재감은 우주적 질서와 조화를 꿈꾸고 있으며, 작가의 정체성과 존재를 확인해 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상이한 작품들을 참으로 많이 제작했다. 선 하나가 주는 긴장감과 이미지, 또는 색채와 색채와의 관계에서 오는 감성들을 평면이라는 공간에 우주적 질서를 부여했으며, 밝고 경쾌하면서 때로는 무게감과 따뜻한 일면들을, 점과 선으로써 존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형태의 소고 또는 흑의 어울림.포항시립미술관 소장.

손아유의 작품은 한마디로 선과 색채의 예술이다. 회화는 깊이가 없는 공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실재감을 부여하기 위해 화가들은 색채(色彩)와 선(線)에 의존한다. 색채와 선이라는 조형 요소들은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주제를 구현하고, 내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진다. 이러한 색채와 선을 이용하여 손아유는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후회 없이 회화 본질의 끝 지점까지 치달아 보았던 작가이다. 1979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하여 경복궁의 돌담과 가을철 농촌에 마당에 멍석을 깔고 널어놓은 고추의 형태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선보인 ‘색의 위치’와 ‘자립하는 색’ 시리즈에서 손아유의 깊이 있는 색채 연구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재일작가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수많은 색점에 비유하고 색의 본성을 뿌리 깊게 연구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는 심리가 내포돼 있지 않았을까?

일본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손아유의 작품에 보여지는 모더니즘을 구현한 추상회화작품이 주목을 끌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의 손아유의 존재감은 무게를 갖는다. 아쉽게도 그의 활동 영역이 해외까지 알려지고 펼칠 시점에 안타깝게도 55세 나이에 대장암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예술적 열정은 꺾어져 버렸다. 20세기 새로운 예술적 방법 정신을 치열하게 추구했던 손아유의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가 심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오늘날, 포항미술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지역출신 장두건과 장석수의 존재는 우리지역 현대미술사의 큰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도 양적인 팽창만큼 지역미술사의 여백을 채울만한 질적인 성과를 거둘만한 미술가들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일면에서 하정웅이 기증한 손아유의 2000여점의 기증 작품은 포항 미술의 깊이를 더하고 맥을 형성하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 즉, 제일교포인 손아유의 존재를 더한다면 우리지역의 현대 미술문화도 넓이와 깊이를 갖게 되는 셈이다. 특히 구상작가 위주의 지역 화단 분위기에서 20세기 모더니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손아유의 추상작품들과 활동들은 지역 미술의 다양성과 신선함을 구축하는데 그 의미가 크며, 지역미술사를 일구어 가는데 큰 문화적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이러한 보석을 어떻게 일구어 내고 또한 가꾸어가야 하는지 현재의 우리에게 달려 있다.

박경숙 큐레이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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