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엘론 머스크처럼 사람들 삶 바꿀 제품 상용화 꿈"

김동현 하나옵트로닉스 CTO의 집무실 모습.
김동현 하나옵트로닉스 CTO의 집무실 모습.

 

‘과학 기술’은 국가산업 경쟁력이자 국력 원천이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경북일보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과학 정신’을 정립하고 기초 과학이 국부 창출 원천이 되도록 각 분야 권위 있는 과학 인재와 대담을 통해 한국 과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번 주인공은 포항 소재 경북과학고등학교 5기 졸업생인 김동현(39) 하나옵트로닉스 CTO(공동 대표)다.

김 대표는 경북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학사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석사·박사를 마쳤다. 이후 삼성전자 S.LSI 책임연구원를 거쳐 현재 하나마이크론 전무 및 하나옵트로닉스 CTO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나노 반도체 기술’과 ‘반도체 패키징 기술’ 및 ‘반도체 센서 기술’이다.

다음은 반도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김 대표와의 1문 1답이다.

△경북 또는 포항과의 인연은.

-한국에서는 대구에서 출생하고 고등학교까지 경북도에서 쭉 성장했다. 가족을 따라 잠시 미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포항에서 초등학교 6개월을 잠시 보낸 적이 있다. 학급 친구들보다 늦게 한글을 배우고 교과 과정을 따라가느라 쉽지는 않았지만, 학교가 해변 모래사장 바로 옆에 위치한 덕분에 조개도 잡고, 게도 잡았던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근접한 태풍 때문에 성난 바다를 보며, 자연의 거대한 힘에 매료돼 그 이후에도 물리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 이후에 경북과학고에 진학하면서 다시 포항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2년간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좋아하는 물리와 수학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학교도서관에 있는 서적들을 통해 고전 역학·전자기학·양자역학·미분방정식을 접하면서 말 그대로 한 분야에 미친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지금도 나태해지거나 초심을 잃을 때면, 경북과학고에서 물리와 수학에 미쳤던 순수했던 때를 회상하며 마음을 다시 잡고 있다.
 

하나마이크론 집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 이력이 스탠퍼드 박사 후 삼성전자 연구원을 거쳐 현재 반도체 제조 회사 대표로 조금 특이한 거 같다. 계기는.

-고교 졸업학기 겨울 방학 때 읽은 빌 게이츠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자기가 상상하는 미래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업가 모습에 반해,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가장 모험적인 기술 창업이 활발한 실리콘밸리를 동경하게 됐다.

카이스트 입학 시에 상위 7명을 선별해서 UC 버클리대학으로 여름학기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운 좋게도 선발돼 UC 버클리대학에서 여름 학기 수업을 듣는 중, 주말에 기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탠퍼드대를 처음으로 방문해 보았다. 실리콘밸리 중심에서 수많은 사업적 그리고 학문적 성공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스탠퍼드대에 매료돼 미국 유학의 꿈을 키우게 됐다.

스탠퍼드에는 기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교수들도 많다 보니, 창업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교수들은 압박감을 느낄 정도였다. 저도 박사 논문 디펜스 이후, 연구하던 기술을 바탕으로 지도교수님과 창업을 준비했으나, 공교롭게도 미국에 초유의 금융위기 사태가 불어닥치며, 벤처 투자 자금들이 다 얼어붙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일단 병역을 먼저 마무리 짓고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전문 기업. 반도체 설계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을 의미) 사업부에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해 다행히 병역을 마칠 수 있었다.

삼성전자에서는 비메모리 반도체 공정과 소자를 개발하고, 고객인 팹리스(반도체 칩을 구현하는 하드웨어 소자 설계와 판매를 전문화한 회사) 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설계 모델을 개발했다. 제 전공과 잘 맞는 분야였기 때문에 근무 시간은 길었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학생활에서 익힌 영어 덕분에, 직접 해외 팹리스 고객들에게 기술 영업을 하고, 협업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도 겸할 수 있었다. 완성품을 파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과는 달리 비메모리 파운드리 사업은 서비스업에 더 가깝다. 20년 이상 파운드리 업체를 요리해온 까다롭고 노련한 해외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핵심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을 판매하는 방법과 기술적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병역을 완료한 이후에 삼성전자에 남았다면, 반도체 전문가로 커리어가 정해져야 했다. 이미 반도체 제조 분야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미 과점 상태로 나아가는 성숙한 시장이었다. 아직 제 미래가 하나의 방향으로 결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 당시 아이폰을 필두로 세계 전자업계를 선도하는 애플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아이폰 설계 관련 잡오퍼를 받은 후, 실리콘 밸리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도중에 장인어른의 반대에 부딪혔다.

장인께서는 하나마이크론과 하나머티리얼즈 등 여러 중견기업을 이끌고 계시면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으시는 등 한국의 산업발전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시다. 사위가 그 당시 한국의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관련 법정 소송을 벌이며, 사생결단 경쟁하는 애플로 이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그 대안으로 하나마이크론에 입사해 경영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하나마이크론은 반도체 후공정 전문 업체다. 팹(Fab)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공장에서 전자회로가 형성된 둥근 원형의 웨이퍼가 만들어진다. 이 웨이퍼를 우리가 흔히 보는 검정색의 반도체 칩으로 바꾸어주는 공정이 반도체 후공정이다. 그동안 일명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던 반도체 미세화 공정은 한계에 다다르면서, 모어댄무어 (More than Moore)의 일환으로 반도체 후공정에서의 혁신이 강조되는 시기가 도달했기에 더욱더 흥미로워진 분야다.

하나마이크론의 연구소 소장으로 입사해 신규 기술을 개발하고, 세계 곳곳에 출장 영업을 하면서, 여러 신규 사업들의 성공과 부침을 경험했다. 다양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신규사업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었고, 여러 성공한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창업에 대한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 연구소 소장으로 여러 신규 기술 분야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2년 전에 신규 하나옵트로닉스 법인을 설립하고, 벤처투자금을 유치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설명과 특별한 성과·성취가 있다면.

-삼성전자에 재직 시에 32나노 로직공정에서 14나노 로직공정까지 개발에 참여하고 고객과 소통을 하면서, 애플의 AP(Application Processor) 위탁 생산 계약을 계속 지킬 수 있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나마이크론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 3차원 플렉서블 반도체 패키징 기술은 중앙일보에서 선정한 2018년 한국 과학계 10대 뉴스에도 선정됐다. 이 기술은 Si 기반 반도체를 2층으로 쌓은 3차원 구조에서도 10mm 곡률 반경으로 굽혔다 폈다를 1만 번 반복해도 신뢰성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주는 반도체 패키징 (후공정) 기술이다. 이미 의료장비 양산에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 전자약·메디컬 패치·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응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하나마이크론 연구소에서 개발한 반도체 범핑 기술인 Thick RDL (Redistributed Layer) 기술은 효용성과 획기성이 학계에서 인정받아 반도체 설계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회인 ISSCC 에 초청 연사로 초대받아 관련 기술을 발표했다.
 

하나마이크론 정문에서 회사 중역들과 해외 고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대표 산업 먹거리 반도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반도체 사업은 천문학적인 투자와 오랜 인내심이 필요한 분야다. 삼성전자의 고 이건희 회장님의 결단과 과감한 투자, 정부의 오랜 지원, 그리고 우수한 과학 인재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산물이다.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선전과 과점으로 한숨 돌린 것 같았으나, 현재 중국의 정부 차원 천문학적인 반도체 제조 투자, 한일간의 외교마찰로 인한 반도체 소재·장비 수급 문제, 미국의 반도체 제조 리쇼어링(re-shoring) 압박 등으로 다시금 위기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런 위기에서의 민간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다시금 정부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미 소재/부품/장비 관련 정부 차원의 지원책, 그리고 반도체 설계 분야 육성에 대한 지원 등 좋은 방향으로 지원해주고 계십니다만, 업계에서 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80년대와 90년대에 정부에서는 매년 삼성, LG, 현대에 엄청난 규모의 연구 지원비를 지원했다. 이미 대기업이 된 삼성·SK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은 정부에서의 부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중견기업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소/부/장 관련 업계와 반도체 설계 분야에는 더욱더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패키징 분야는 오랫동안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아 정부지원에서 소외돼 있었다. 모어댄무어의 시대에 반도체 분야의 혁신은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 많은 부분 이루어집니다만 한국의 중견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

△ 4차 산업혁명시대에 AI, 로봇 등 대세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의 역할은?

-현재 AI의 주류를 이루는 딥러닝이나 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은 모두 몇십 년 전에 이미 이론적 정립이 시작된 분야다. 제대로 된 응용은 획기적인 반도체 GPU 성능 향상이 있었던 2000년 이후에 이루어져서 현재에 이르렀다. 새로운 응용처와 능력들이 개발되고 보고되고 있지만, 최신 AI의 수준은 아직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기에는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이 한계점도 결국에는 AI 이론적인 한계가 아닌 현재 AI 계산을 하는 반도체 회로의 구조한계에 기인한다. 현재 2차원적으로 배열돼 있는 반도체로는 3차원 배열로 복잡한 연결을 가진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기에는 수준이 많이 미흡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인간의 두뇌를 모방할 수준이 되는 3차원 배열과 복잡한 연결을 가진 반도체 제조 공정이 개발된다면, 다시 한차례 충격적인 수준의 AI의 수준 향상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마이크론 브라질 공장 직원 사진(2018년)

△ 코로나19 여파가 반도체 산업에 끼친 영향은?

-초기에는 미국과 유럽의 락다운으로 소비자 전자제품의 급격한 수요 하락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곧 비대면 교육과 재택근무 확산으로 강력한 반도체 수요가 2020년 하반기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술 개발과 산업 발전은 비대면으로 진행하기에는 아직 기술적 한계가 있다.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에는 산업 발전이 둔화가 될 것이고, 후발 업체나 후발국가( 중국)의 추격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규 의학 관련 연구 과제들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진행 중이던 기존 국가 연구과제의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코로나가 반도체 산업 던진 숙제는?

-비대면 사회에서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과 자율 주행 관련 기술들(AR디스플레이, 3차원 인식 센서) 개발에 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 전반적인 매디컬 관련 기술에 대한 환기가 이뤄져서, 개인용 바이러스 감염 확진 테스터기, 전자약, 자택 격리 중인 환자 상태 체크를 위한 메디컬 패치 등에 응용되는 반도체 기술들의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지금의 일을 계속하면서 이루고 싶은 업적이 있다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처럼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상용화하고 싶다.

△포항과 경북에는 포스텍, 방사광가속기 등 풍부한 R&D 인프라가 있다.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포스텍에는 우수한 교수진들과 학생들이 있어서, 몇 차례 포항에 방문해 학생들에게 강연도 했고, 교수님들과 여러 협업 분야에 대해 논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포스텍 출신의 우수 인재를 모셔오고 싶지만, 포스텍 정도면 대기업에서 다 싹쓸이 하다시피 졸업생을 모셔가는 상황이기에 많이 아쉽다.

결국에는 개인적인 친분과 믿음으로 설득을 해야 하는데, 거리적인 문제로 교류를 자주 하기가 쉽지가 않다.

획기적인 기술개발을 하고 꼭 기술이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 협업이나 공동개발의 경우에도 결국에는 거리 문제로 수도권 및 충남권 학교들과의 협업이 더 진행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DGIST는 거리는 더 가까우나 아직 친분이 있는 교수님들이 없다.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와 산업화가 어떻게 협업해야 할까?

-산업계와 학계와의 교류가 중요해 보인다. 국내 학회들은 학회 행사에서 발생한 수입금으로 운영되기에 고액의 참가비를 낸 업체나 학교만 참여할 수 있다. 더 신규 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중소·중견 업체에서 활발히 국내학회에 참여할 수 있는 지원금을 마련하고 복잡한 행정절차 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더욱 더 교류가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초과학, 그리고 응용과학에서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하려면?

-당장 2~5년 내에 달성 가능한 연구 과제를 과학기술부에서 공모하기보다는 여러 문샷(Moon Shot·혁신적인 신규사업) 프로젝트들을 시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연구 성과 평가는 공평성을 위해 철저히 블라인드로 진행하고, 상호 피드백을 통해 성과 평가자들의 공평성도 잘 유지를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과학자를 꿈꾸는 과학고 등 이공계 후배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항상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맞춰 행동을 하라고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1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해야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10년 이상의 소중한 기간을 투자하려면, 당연히 인생 계획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꼭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모든 최신 정보와 연구결과들은 영어로 발표되고, 모든 국제간 소통은 영어로 진행됩니다. 아무리 변역기 기술이 발전되더라도, 자유롭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고, 빠른 영어 속독이 가능한 사람들보다는 나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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