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디딤돌은 내 유년에 집안을 출입했던 들머리다. 살면서 수많은 디딤돌을 오르내렸던 고향집 디딤돌이 유독 기억에 떠오른 것은 왜일까. 산골아이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서 다짐했던 결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과 마당의 경계에 놓인 디딤돌에서서 나는 맹세를 했다. 대를 이어 내려온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성공을 해 돌아오겠다고. 그 결기를 묻어 놓았던 디딤돌이요, 힘찬 출발을 외쳤던 디딤돌이다.

디딤돌은 낮은데서 높은 곳으로 발을 딛고서야 올라갈 수 있는 물상이다. 발을 디디고 오르내리도록 마루 아래나 뜰에 놓은 돌이나, 디디고 다닐 수 있도록 드문드문 놓아둔 평평한 돌도 디딤돌에 속한다. 한옥의 경우 디딤돌을 딛고 올라서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건축물의 계단에 놓는 바닥돌이나, 마루 아래에 놓인 섬돌도 디딤돌이다. 또 딛고 서서 올라타기 편하게 하는 노둣돌도, 마루에 올라서기 편하게 한 선돌도 디딤돌에 포함된다. 사람의 입신출세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발판을 디딤돌이라 부른다. 반백년 넘게 살면서 내가 딛고 올라선 크고 작은 발판이 모두다 디딤돌이다. 디딤돌은 자연석을 다듬어 쓰고, 화강석을 다듬은 장대석을 쓰지만 내 안의 디딤돌은 노력과 강한 의지로 만들었다.

절집의 디딤돌마다 부처의 상징성을 내포하기 위해 연꽃이나 연잎을 조각한다. 오니에 뿌리를 내려 향기를 피우는 연꽃처럼 청정한 세계로 가라는 뜻이지 싶다. 불국사 연화교 연꽃과 법주사의 대웅전 앞 연잎 디딤돌이 대표적이다. 궁궐의 디딤돌에 새겨져 있는 용은 백성들을 풍족하게 다스리라는 상징이다 그러나 가난한 우리 집 디딤돌은 허술하고 장식이 없어 밋밋해 여인의 민낯 같이 수수해 좋다.

고향집 마루를 오르내리든 디딤돌이 향수를 타고 훈훈하게 풍겨 온다. 돌아봄과 되새김의 경계를 지우며 디딤돌에 추억이 덧칠을 한다. 고향집 디딤돌 위에는 아직도 옛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끼가 끼고 세월에 닳은 디딤돌도 소멸을 비껴가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에 닳아도 탓하지 않는다. 비바람에 쓸려도,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도 불평하지 않고 무료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바닥 인생의 산증인인 디딤돌이 그 애환을 이야기 하듯 여기저기 흠 자국을 생각나게 한다. 침묵하는 디딤돌은 말하지 않았지만 쌓인 스토리를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처럼 들려 줄 것 같다.

디딤돌 위에 얽힌 기억 속 풍경화가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디딤돌을 밟을 때마다 신전에 들어가듯 마음이 엄숙해진다. 집밖에서 일어났던 안 좋은 일들은 내려놓고, 정갈한 마음으로 안에 들어갔다. 넓적한 자연석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만든 디딤돌은 토테미즘을 풍겼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고, 나쁜 기운을 우려낸다는 주술적 의미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누름돌과 같은 단순 돌덩이가 아니다. 초자연적 힘의 지배력이 일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고향을 등지면서 비장한 각오로 디딤돌을 딛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나는 그 디딤돌에서 결심했던 대로 주경야독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는 일에 전념했다. 디딤돌에 신발을 벗을 때 고개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가난을 극복했다. 그렇게 내 뒷모습이 디딤돌에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온기가 새겨져 있다.

가난한 고향집 디딤돌은 나에게 출세하고 싶은 욕구와 결기를 부추겨 주었다. 기억을 되살리면 그 당당했던 표정들이 보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함성들이 들려온다. 너덜너덜한 나의 세상출정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들려올 것 같다.

고향 집 디딤돌은 자식들의 무사와 금의환향을 비손했던 어머니의 소원이 담겨져 있다. 어머니는 디딤돌에 정화수 한 사발을 떠놓고 가족들이 병치레를 하지 말고 무사하게 해달라고 어머니 방식대로 신에게 기도했다. 타지로 떠난 어린 자식들의 무사를 기원했던 애절한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가 정성으로 비손했던 신전이었던 디딤돌. 그래서인지 곁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가짐도 경건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머니의 간절한 비손이 내게 심리적인 결기와 용기를 주었다. 인생의 전환점마다 빼놓지 않고 첫발을 내딛으며 고향집 디딤돌과 어머니의 기도를 접목시켰다.

고향 집 디딤돌은 가마를 탄 신부였던 어머니가 밟고 집 안에 첫발을 들여놓은 뒤로 평생 오르내리다 꽃상여 타고 저승에 간 애잔한 삶이 서려있는 곳이다. 어머니는 힘든 시집살이 속울음을 디딤돌에 내려놓고 몇 번이고 계단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디딤돌은 삶의 무게에 신음하는 어머니의 고난을 거두어 달빛으로 씻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은 도외시한 채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다 가신 어머니의 삶을 디딤돌은 꿰고 있었다. 그 디딤돌이 어머니의 애잔한 바닥인생을 차근차근 들려줄 것만 같다.

인생의 전환점 마다 디딤돌은 없어서는 안 되는 마중물이 되었다. 그래서 디딤돌은 내가 살아온 자서전을 담고 있다. 처음에 잘 놓은 디딤돌은 다음 단계의 발판이 되었다.

대를 이어 물려온 가난은 진학의 걸림돌이었다. 아버지의 소장사로 번 돈은 상급학교 진학의 디딤돌이 되었다. 중학교 은사님의 은혜를 디딤돌로 어렵사리 국립공고에 진학해 조국근대화의기수가 되었고, 졸업 후 대기업 취직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런 다음 주경야독의 결과는 내가 대기업 간부로 퇴직하는 디딤돌로 작용했다. 결혼 후에는 아내의 알뜰한 저축을 디딤돌로 재테크에 성공하는 등 인생을 통틀어 디딤돌은 내 자서전이 되었다. 결국 연결되고 발판이 된 든든한 디딤돌로 내 인생은 쉽게 일어설 수 있었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인생의 많은 디딤돌 중에서 가장 으뜸은 긴 직장생활을 무사히 마치게 해준 가족의 힘이다. 지금도 가족이란 디딤돌은 고향 집 디딤돌처럼 여생의 소중한 보배가 되고 있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며 어떤 디딤돌을 만들어 낼까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 제1기 경험을 발판으로 나로 사는 인생의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그 디딤돌을 바다처럼 낮은 곳에 위치시켜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든든한 디딤돌로 내 나이를 지우고, 광포한 포용력으로 인생을 영위 할 것이다. 신발을 신고 벗을 때마다 자세를 낮추어 자아를 돌아볼 수 있는 디딤돌을 내 안에도 만들어 디디고 싶다.

배재록(남·60)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로◇약력울산문협,?수필가협회,?울산사랑문학회,?곰솔문학회?회원목포문학상?수필본상?수상(2017)머니투데이?경제신춘문예?수필?당선(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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