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뱃사람들의 술추렴은 닻을 내리자마자 이어진다. 오촌 아제도 고등어 한 손 들고 돼지국밥집에 앉았다. 주인 아지매 인심 한번 후하다. 해삼 두 토막 덤으로 내주며 긴 의자를 닦아준다. 아제는 오늘도 순정(純情) 맡기고 막걸리 두 병 외상 긋는다. 선창에 앉아 그물코를 꿰매던 아버지도 술을 마셨다. 아버지의 노래는 한이 서린 듯했고, 뜻도 모르는 가사는 눈물이 나게 했다.

항구는 청춘을 저당 잡힌 어부들의 전당포였다. 어류 작황이 예전만 못하다며 곳곳이 생인손 앓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 속에서 사라진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선원마저 열에 여덟은 외국인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나라 바다에 익숙한 듯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낸다. 안면 튼 사람들과 혀 짧은 우리말로 곧잘 인사도 나눈다. 바다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희망과 행복을 풍어(?漁)로 채우고 돌아왔다. 까만 얼굴에 하얀 이빨이 물비늘처럼 반짝거린다. 티 없이 맑다.

이 나라 청년들이 앉은자리 직업을 찾느라 머리 싸맬 때, 타국의 젊은이들은 우리네 항구에다 인생을 통째로 저당 잡혔다. 피부와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지만 굳건하게 견뎌낸다. 입술이 부르트고 손바닥이 벗겨지도록 지난한 투망질에 매달렸다. 거친 파도와 대적하면서도 돛대에 꿈의 걸개를 걸어두었다. 그것만이 가난한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짠물 묻은 손으로 은행 창구에서 환전하고, 그 돈을 받아들고 기뻐할 부모님 얼굴을 떠올린다.

그 모습이 해묵은 일기장을 들추게 만든다. 원양어선을 타고 라스팔마스 사모아 기지로 떠났던 오빠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바다를 가까이 두었으니 배운 건 뱃일뿐이었다. 남의 나라 바다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다 스페인 어느 항구에서 엽서를 보내왔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했던 나폴레옹의 말을 타고 달리는 그림 배경이었다. 글씨체가 흔들린 듯 엽서에 얼룩이 져 있었다. 그게 눈물 자국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이미 다른 해역을 유랑하고 있었다.

새벽의 공동어시장은 생동감이 넘쳐나서 좋다. 모든 게 바다로 인해 분주해진다. 중개인의 호각소리에 숫자가 표기된 모자를 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그때만큼은 사활이 걸린 승부수를 띄운다. 점퍼 속에 숨긴 손가락으로 어가를 제시한다. 밀리면 안 되는 치열한 삶들이 흥정으로 들고난다. 삶이 무기력해지고 따분해지면 그곳으로 나가보시길 권하고 싶다. 매 순간 항구를 전당포로 갯가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고 있다. 아직은 살아볼 만한 세상이기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 바로 현재란 걸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는 게 힘들어서 놓고 싶은 밧줄도 그곳에 가면 다시금 움켜잡게 할 것이다.

그물망 벼리가 여인의 옷고름처럼 풀어진다. 코발트 색깔의 바다 물빛이 밴 고등어가 뭉텅 거리로 쏟아진다. 투명하고 맑은 눈알이 샛별처럼 반짝거린다. 까막까막한 눈동자를 굴리며 두레 밥상에 모여들었던 어린 시절의 형제를 보는 것 같다. 짜디짠 자반고등어 한 토막을 입에 물고 각기 다른 꿈을 내걸었다. 오빠는 양돈과 양계장을 하는 게 꿈이었다. 돼지를 키우고 닭을 백 마리쯤 기르고 싶다고 했다. 장리쌀은 떨어졌고, 우릿간은 비어있었다. 나는 삶은 달걀을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꿈은 거지반 우물물로 채우고 헛배를 두드리며 끝이 났다.

고무장갑을 낀 인부들이 선별작업에 들어간다. 굵기와 크기에 따라 상자마다 나뉘어 등급이 매겨진다. 사람 사는 세상도 가끔은 그렇다. 살이 올라 몸피 굵은 건 뭍으로 나가 간잡이 손끝에서 염장에 재워진다. 덜 자란 고도리는 정어리와 뒤섞여 양식장으로 간다. 고기가 고기의 먹잇감이 되어 광어가 되고 우럭으로 살찐다.



부둣가 한 귀퉁이에 함바식당이 있다. 일흔이 너머 보이는 할머니도 경매받은 고기 상자를 통째로 바닥에 쏟아붓는다. 칼갈이 할아버지가 갈아준 무쇠 칼로 고등어 배를 척척 가른다. 이태 묵혀 간수를 뺀 천일염을 뿌린다. 눈대중만으로도 밑간의 깊이를 가늠하는 듯하다.

할머니가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고등어를 굽는다. 그 일을 어지간히도 오래 한 듯 이력이 붙었다. 곁에서 구경만 하여도 가스 냄새가 콧속을 파고든다. 머리가 아프지 않으세요? 라고 물어보았다. 삶을 밝혀준 등댓불이었기에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노릿하게 구워진 고등어에 기름기가 자르르 흐른다. 쫄깃하니 맛있게 보인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맞춤 맞다. 한 생애에 저렇게 노릇노릇하게 삶을 구워본 적이 있었을까. 못다 한 생애였다면 타인의 삶을 대신 구워주는 일에 적선하는 듯하다. 무탈하게 항구로 되돌아온 어부에게 어머니를 대신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다.

선창을 맴돌던 사람들이 하나둘 함바식당으로 모여든다. 저렴한 가격에 바다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단골이 된 듯하다. 막걸리 주전자를 내놓는 할머니 얼굴이 프란체스카 여사를 닮았다. 그녀가 평생을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보냈다면, 함바식당 할머니는 바다 사람들과 함께했다. 해풍 맞은 주름살을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 그들의 주름은 값비싼 프라다 핸드백도, 샤넬 향수도 아닌 명품주름이었다.

등댓불이 발맞춘 사관생도처럼 각도 있게 돌고 있다. 밤낚시꾼들이 있는 모양이다. 선라이트 불빛이 반딧불처럼 반짝거린다. 고등어는 밝은 곳을 좋아하니 유인책으로 적당하다. 고기야 어떻게든 요리조리 야라서 잡을 수 있지만, 인생살이 수심은 가늠치 못한다. 파고를 헤치고 물 이랑을 넘다 보면 삶의 깊이도 바다만큼 깊어질 것이다.

밑천이 쪼들려 꿈을 보류했던 오빠는 십 년 너머 터울 지던 여동생을 데리고 낚시하러 다녔다. 바다는 유일한 나의 놀이터였다. 갯지렁이를 파내거나 바위에 붙은 따개비를 따며 놀았다. 오빠는 낚시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게 취미로 보였다. 물고기보다 세월을 낚는다는 말이 가슴에 닿을 만큼 여유로웠다. 그 속에는 풀지 못한 꿈이 응어리 맺힌 듯했다. 입질이 없으면 ‘노인과 바다’를 쓴 톨스토이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용은 생소했지만 노인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던 장면은 흥미로웠다. 뼈만 앙상하게 남겨졌다던 물고기에 오빠는 어떤 꿈의 살을 붙이고 싶었을까.

노인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닥쳐진 상황에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싸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 부분에서 특별히 감명을 받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도 아닌 여동생에게 무슨 말로 유익한 고언(苦言)을 해주고 싶었을까. 집안은 지지리도 가난했고, 나는 상급학교로 진학마저 포기했다.

오빠가 선원이 된 뒤로는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다. 초가집을 버리고 양철지붕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적산 땅을 찾아 더는 헤매지 않았다. 아버지 명의로 다섯 마지기 천수답도 생겼다. 항구에다 청춘을 맡겼던 오빠를 효자로 만들어주었다. 오빠가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 집 가난은 겨울 해만큼 짧았다. 그도 잠시, 타국의 어느 바닷속에다 닻을 내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바다로 인해 꿈꾸었던 날들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제목은 박형권 시인의 “전당포는 항구다”에서 착안한 것임을 밝힙니다.
 

김임순(여·69) 경남 거제시 마전3길 창신대 문예창작, 방송대 국어국문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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