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참, 얼척 없네!

사내가 문을 열자마자 탄식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여자와 내가 저녁을 먹고 있는 광경이 사내에게 가관인 모양이었다. 여자는 거실 바닥에 앉아서 밥을 퍼먹고 있고 나는 목에 손수건까지 두르고 떡하니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내는 기가막히는지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여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자는 입가에 온통 밥풀이며 양념을 묻힌 채 사내를 향해 헤벌쭉이 웃고 있었다.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꽝 닫았다. 그때부터 사내는 나를 얼척이라 불렀다.

나는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되는 포메라니안 털북숭이 품종이다. 작은 몸집에 비해 특유의 빵빵한 털을 자랑하며 솜뭉치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콧잔등이 움푹 들어간 게 흠이지만 그런대로 얼굴도 준수한 편이다. 또한 눈 주위에 까만 털이 스모키 화장법처럼 자라있어 나름 같은 품종 중에서도 출중한 외모를 지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졸지에 잡종견보다도 못한 천한 신분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게 여자 탓이었다. 내가 덜 떨어진 이름으로 불리게 될 줄은 입양되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

여자를 처음 대면한 날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여자는 지금 아프다. 아니, 아파야 한다. 지금 몸 안에 고름 덩어리가 가득 차 있다. 여자는 아직 통증을 못 느낄 뿐이다. 후각이 월등히 발달 된 강아지들은 먼 곳에서 풍겨오는 냄새도 단번에 맡는데, 고작 얇은 살가죽 속에 든 인간의 부패한 냄새를 맡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머지않아 여자는 고통을 호소할 것이다.

새로 입양된 집에서 며칠을 지내고 보니 나를 데려온 의도가 여자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어딘가 좀 모자란 데다 감정이 들쭉날쭉하고 히스테리가 심했다. 사내가 일하러 나가면 여자는 뒹굴뒹굴 놀다가 배고프면 밥 차려 먹고 졸리면 자고 집안일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세상에 개 팔자가 상팔자라지만 여자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거기다 집에 혼자 있는 꼴이란 가관이었다. 방바닥에 큰대자로 뻗어서는 하릴없이 중얼거리기 일쑤였다. 약간 톤이 높은 목소리는 어떤 때는 꼭 누구하고 싸우는 소리로 들리거나, 누구를 훈계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게는 종일 시끄러울 뿐이었다. 어느 날은 너무 시끄러워서 쫑긋 선 귓바퀴를 바짝 접어서 막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소음은 귓속을 뚫고 들어와서 괴롭혔다. 그런 날이면 아무리 개 졸음이지만 졸지도 못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게다가 여자는 어찌나 게으른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몸을 옮기는 것도 귀찮아서 탁자에 가서 엎드려 잠들거나, 그것도 싫증나면 소파로 가서 고개를 처박고 잠들었다.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방이건 거실이건 뒹굴며 잠들었다. 낮잠 자는 모양새를 볼작시면, 통돼지 한 마리가 남산 만한 배를 드러내놓고 코를 드르릉 골며 자는 꼬락서니라니. 한번은 방바닥에서 나른하게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방바닥을 쿵쿵 울리며 탱크가 굴러오는 듯했다. 살짝 눈을 떠 보니 앗! 커다란 바윗돌이 요란하게 코를 골며 나를 향해 돌진해오는 중이었다. 헉!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좌로 굴러 동작으로 아슬아슬하게 위험지역을 벗어났다. 정말이지 나의 탁월한 순발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향불 냄새 맡으며 똥개들 문상받고 있을 터였다. 나를 뭉개기 위해 굴러온 바윗돌은 다름 아닌 늙은 호박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여자의 살덩이였다. 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여자를 매섭게 째려봤다. 생긴 모양이 저러다 보니 여자는 집안일을 하면서 종종 실수를 저질렀다. 그럴 때마다 사내는 여자를 향해 얼척 없네, 란 말을 입가에 달고 살았다. 사내는 앞니 두 개가 달아나서 발음이 종종 새어나갔다.

여자 집에 입양되던 날 아침이었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가 윙윙대며 돌아가는 물류회사의 한쪽에 묶여있었다. 사내들이 한 번씩 나를 힐끗 쳐다보고 지나갔다. 모두가 고단한 표정들이었다. 어떤 사내는 예쁘다며 내 등을 쓰다듬기도 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낯선 장소에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한 사내가 다가와서 쭈그리고 앉더니 손을 쑥 내밀었다. 투박하고 거친 손이었다. 나는 예의상 손을 잠시 핥아주었다. 사내는 그게 좋았던지 한 발짝 가까이 옮기더니 내 머리를 만지고는 긴 털을 등 쪽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그렇게 묶인 채 반나절이 지날 때쯤 그 사내가 다가오더니 기둥에 묶인 목줄을 풀고는 차에 태웠다.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차에 올라타고는 얌전히 앉아있었다.

사내가 나를 조수석에 태운 채 묵묵히 운전하는 동안 유심히 그를 살폈다. 작달막한 체구에 매부리코의 쭈글쭈글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자라목에 등이 약간 굽은 곱사등이 사내였다. 나는 최대한 긴장의 경계를 풀지 않고 사내의 옆 모습을 지켜봤다. 사내는 곁눈질로 힐끔힐끔 돌아보며 나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창밖으로는 들판이 늙은 호박처럼 누렇게 펼쳐져 있었다.

사내가 핸들을 꺾자 낡고 오래된 동네가 보였다. 좁은 골목을 한참 들어가더니 허름한 빌라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나를 덥석 안더니 빌라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아마도 사내의 집인 듯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여자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약간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던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브왈라! 하고 외쳤다. 브왈라? 어느 나라 말이지? 환영한다는 뜻인가. 어쨌든 표정으로 봐서는 나쁜 말은 아닌 듯했다. 나는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그것들 사는 꼬락서니를 한눈에 스캔을 했다. 결론은 억수로 고달프겠구나, 였다. 사내는 아무런 대꾸 없이 나를 여자 품에 털썩 안겨주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내 친구야? 앞으로는 심심치 않겠네, 여자는 혼잣말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간혹 사내가 나를 끌고 산책이라도 하는 중에 얼척아! 하고 부르면 혹여 다른 애견들이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컹컹!(제발 얼척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쪽팔려 죽겠어요.)짖었다. 그럴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내에 비하면 여자는 더 가관이었다. 사내가 출근하고 나면 여자는 나를 앞에 앉혀놓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물론 내가 개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인간이라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삿대질하며 끊임없이 지껄였다. 그럴 때면 아무리 개라지만 자존심이 팍팍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배가 고파서 낑낑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쥐어박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나마 끼니라도 제때 얻어먹으려면 더럽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웃기는 집구석이었다.

여자는 말끝마다 종종 브왈라(Voila) !하고 감탄하듯 내뱉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다가도 스스로 대견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마치 감성 풍부한 연기자처럼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브왈라! 하고 외쳤다. 그럴 때 보면 연극배우가 따로 없었다. 무슨 의미로 외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상황에서 오로지 여자만 아는 감정이었다. 그 소리만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졸다가 고개를 들고는 콧등으로 주름을 모았다. 하여튼 여자를 볼 때마다 한심해서 내가 다 브왈라! 외치고 싶었다.

하루는 뭣도 모르고 잠자는 여자 엉덩이 쪽에 코를 처박고 잠들었다가 하마터면 홀로코스트가 될 뻔했다. 여자가 뿜어대는 방귀 때문이었다. 여자의 방귀는 앙증맞게 뽕~, 하고 뀌는 애기 방귀가 아니라 바이크가 출발 직전에 부릉부릉하며 고막을 때릴 정도의 데시벨이었다. 냄새 또한 못지않았다. 뱃속에서 얼마나 삭혔는지 홍어 삭힌 냄새는 냄새도 아니었다. 그런 지독한 냄새를 직방으로 맡았으니 내 코가 오죽했겠는가. 나는 그 충격으로 골이 띵, 하고 눈물 콧물을 다 쏟을 지경이었다. 너무나 분해서 여자를 뚫어지게 꼬나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코를 드르릉 대면서 태평하게 뻗어있었다.

여자는 축농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팽! 하고 풀었다. 밥 먹다가도 팽!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팽!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도 팽! 나는 코 푸는 소리만 들어도 여자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챘다. 저렇게 코를 풀다가는 콧등이 얼얼하겠다. 듣고 있으면 뭉툭한 내 코가 다 얼얼해지는 듯했다. 내가 처음 온 날에도 여자는 휴지를 한 움큼 쥐고 코를 팽팽 풀어댔다. 방 한구석에는 코를 푼 휴지가 쓰레기통에 가득 차 있었다.

뭐하나 성이 차지 않은 여자의 이미지에 무척 실망했다. 나처럼 기품 있고 고귀한 애견을 앞에 두고 보란 듯이 코를 팽팽 풀어대다니, 저런 몰상식하고 천박한 여자가 나의 주인이라 생각하니 앞날이 암울했다. 밤에는 한술 더 떴다. 만성 축농증 때문에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코를 드르릉대며 별의별 동물 소리를 냈다. 어떤 날은 멧돼지 울음소리. 다음 날은 호랑이 울음소리 늑대 울음소리 등 온갖 동물 소리를 밤마다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내는 통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놀라서 깬 적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여간 동물농장이 따로 없었다. 최소한 나 정도의 애견을 키우려면 그에 걸맞게 우아하고 세련된 여자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기대와는 달리 무례하고 품격 떨어지는 여자를 보는 순간 나의 바람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운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강아지구나, 싶었다.

사내와 여자가 함께 있는 시간에 나의 재주를 보여주리라 작정했다. 나는 앞발을 들고 두 발로 서는 재롱을 부렸다. 사내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햐, 얼척이가 두발로 섰다! 여자도 브왈라! 외치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재롱의 대가로 여자가 주는 맛있는 구운 오징어를 받아먹었다. 나는 흔히 강아지들이 먹는 사료는 먹지 않았다. 주로 통조림이나 햄 등 고급음식만 먹었다. 전 주인이 그렇게 입맛을 길들여 놓은 탓이었다. 여자는 내가 두 발로 서서 재롱을 부릴 때면 오징어구이를 조금씩 떼서 줬다. 오징어구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구운 오징어의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할 때면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나름대로 최대한 선하고 맑은 눈을 하고는 말똥말똥 쳐다봤다. 그러면 사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오징어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었다. 다 먹고 나면 이번엔 여자 쪽으로 가서 같은 행동을 했다. 그러면 여자도 역시 한 조각을 찢어서 주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배도 부르고 행복감이 스르르 밀려들었다.

오늘은 뭐 하며 놀지? 사내가 복권 놀이하는 화투패를 가지고 놀까, 아니면 여자가 시시때때로 코를 풀어대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갖고 놀까? 고민하며 집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구석에 세워놓은 거울이 눈에 띠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들여다봤다. 나만큼 잘생긴 녀석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컹컹 짖었다. 그러자 거울 속의 녀석도 똑같이 컹컹 짖었다. 한번 해보자는 거야! 다시 한 번 컹컹 짖자 녀석도 지지 않고 짖었다. 어라! 요 녀석 봐라. 안 그래도 요즘 여자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아주 잘 걸렸어! 나는 혼쭐을 내주리라 벼르고는 거울 뒤쪽으로 돌아갔다. 응? 아무도 없다. 어찌 된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녀석이 도망갔나.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니 도망은커녕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약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용변이 마려웠다. 그런데 어디에 실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방구석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침 컴컴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나는 시원하게 용변을 봤다. 여자가 낮잠을 자다 깨어서는 코를 큼큼거렸다. 그러다 내가 실례를 한 덩어리를 보고는 오, 브왈라! 하고 외쳤다. 얼척아! 여기다 똥을 싸면 어떡해. 여자는 휴지를 들고 투덜거리며 변을 닦았다. 이봐요 아줌마! 새 가족이 들어왔으면 용변 보는 곳부터 가르쳐 줘야지. 어휴, 무식하긴. 나라고 아무데나 똥 싸고 싶은 줄 아냐고요. 나름대로 적당한 곳을 찾아서 거기다 똥을 눈 거라고요. 칫! 알지도 못하면서 화부터 내고 난리야.

사내가 웬일로 내 몸집에 딱 맞는 앙증맞은 소파를 들고 왔다. 어느 집에서 내놓은 아기용 푸른색 소파였다. 나는 소파를 베고 푸른 꿈을 꾸고 싶었다. 내 전용 소파는 욕실 변기 옆에 놓였다. 사내가 용변을 보러 변기에 앉으면 나는 무릎에 놓인 손등을 자연스레 핥았다. 사내는 혓바닥의 감촉이 좋은지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열심히 핥고 나면 사내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는 앞발과 뒷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나는 몸을 온전히 내맡긴 채 눈을 슬며시 감았다. 사내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뼈 마디마디가 사르르 풀어지며 편안한 기분이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럴 때면 개 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실감 나기도 했다.

한번은 나의 출중한 외모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여자 손에 이끌려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우아하고 눈부신 털에 반한 잡종 개들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통에 산책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같은 품종의 강아지라도 길에서 나와 마주치면 벌써 겉으로 드러난 우월한 비주얼에 압도당해서 기를 못 펴고 설설 꼬리를 내렸다. 그중에 주인 없는 떠돌이 강아지가 섞여있었는데, 같은 수컷인데도 집 앞까지 줄곧 따라오는 바람에 여자가 진땀을 흘린 적이 있었다. 여자는 나를 안고 떠돌이 강아지를 저리 가라며 발로 차는 시늉을 하면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한편으로는 여자가 눈꼴시러웠다. 구박할 때는 언제고 이제야 나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는군, 하며 속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덩달아 나도 의기양양해졌다.

여자는 어디가 안 좋은지 저녁마다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무슨 약이기에 저렇게 매일 먹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여자는 무언가를 먹을 때면 칠칠하지 못하게 부스러기를 입가에 덕지덕지 붙이고 게걸스럽게 먹었다. 치킨이나 떡을 먹을 때는 나보다 더 지저분하게 먹었다.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인간씩이나 되어서는 그걸 하나 깨끗이 못 먹나. 쯧쯧.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여자는 앉은뱅이처럼 엉덩이를 죽죽 밀고 다녔다. 항문낭액증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맨날 저렇게 엉덩이로 밀면서 이방 저방 다니는 걸 보면 게으름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엉덩이에 걸레만 대면 영락없는 인간 청소기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여자는 콧속에다 새끼손가락을 쑤셔 넣고 코딱지를 후벼파면서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거기다 여자는 주둥이에 무얼 처넣기만 하면 사레들려서 딸꾹질을 해댔다. 사내는 밥 먹다 말고 여자의 등짝을 오지게 두들겨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참, 가지가지 한다,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어디서 저런 물건을 데려와서 살림을 차렸을까 싶었다. 천생연분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여자는 환각 증세라도 있는지 공원에라도 갔다 오는 날이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너, 얼척이 아니지? 하고는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하도 기가 막혀서 얼척이 맞아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여자가 한심해 보여서 콧등에 주름을 한껏 몰아 쥐고는 콧김을 쉭쉭 뿜어댔다.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나를 바짝 끌어당겨서 대가리를 요리조리 흔들어보는가 하면, 입을 쩍 벌려서 이빨을 살펴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빳빳한 고추와 탱글탱글한 불알까지 만지작거렸다. 살살 만져요! 아파욧! 아무리 강아지라지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여자는 그렇게 나를 샅샅이 훑어본 다음에야 안심이 됐는지 빙그레 웃으며 브왈라! 얼척이가 맞구나! 하고 소리쳤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맨날 보는 자기 애완견도 몰라보고 헷갈릴 건 또 뭐람. 어휴, 정말!

그럴 때면 들떴던 기분이 싹 가시며 언짢아졌지만 그나마 산책을 시켜준 고마움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가 강아지로 태어났을 뿐이지 모로 잠든 여자의 모양새를 보면 꼬리가 없는 것 말고는 딱히 나와 수준 차이를 못 느끼겠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우월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어떤 때는 내가 여자를 산책시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암튼 집에 돌아오면 누가 누구를 산책시키고 왔는지 당최 헷갈렸다.

사내는 여자가 못마땅할 때마다 대뜸, 개 같은 새끼!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다고 딱히 미워해서도 아니다. 그냥 마뜩찮을 때 저절로 튀어나오는 사내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개껌을 갖고 놀다가 욕설이 들려오면 난데없이 날아온 탁구공에 맞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내를 매섭게 째려봤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동물 중에 나 같이 멋지고 우아한 강아지를 콕 집어서 가뜩이나 게을러터지고 곰탱이 같은 여자에게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암튼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개껌이나 씹고 있는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여자는 사내가 욕을 하거나 말거나 일상적으로 듣는 욕이어선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사내가 실수로 개 같은 년, 하고 제대로 된 욕설을 하면 여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는 왜, 내가 개 같은 년이야! 눈을 부릅뜨고 성깔을 부렸다. 그러면 사내는 깨갱, 하고 꼬리를 내렸다. 참 이상했다. 내가 듣기에는 개 같은 새끼나, 개 같은 년이나, 한 끗 차인데 여자는 년, 자만 들어가면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는 대들었다. 개 같은 새끼라,하면 보통 나를 포함해서 다수에게 욕하는 걸로 들리겠지만, 개 같은 년,이라 욕하면 집안에 여자는 자신뿐이라, 딱 자기에게만 욕하는 걸로 듣기 때문이리라. 암튼 웃기는 개껌들이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사내가 술에 취해서 들어온 날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운 오징어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는 욕실에 묶어둔 나를 풀어주고는 구운 오징어를 뜯어줬다. 그걸 받아먹는데 곱사등이에 매부리코인지라 사내의 코와 내 코가 금방이라도 부딪힐 것 같았다. 사내의 구부러진 코를 경계하며 구운 오징어를 천천히 입에 넣고 먹었다. 언제 먹어도 달콤하고 쫄깃했다. 비로소 사내가 나의 진면목을 알아보는구나, 싶었다. 사내는 구운 오징어를 절반쯤 먹이고는 화투패를 꺼냈다. 화투패는 사내의 유일한 취미였다. 송학 매조 벚꽃 흑싸리 난초 모란 홍싸리 공산 국화 단풍 오동 비가 그려진 열두 장의 화투패를 바닥에 깔아놓고는 내게 한 장씩 물어오라고 시켰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아무거나 한 장씩 물어다 줬다. 그러면 사내는 구운 오징어를 한 조각씩 입에 넣어줬다. 내가 물어다 준 화투패를 사내는 요리조리 꿰맞추고는 복권 용지에 작대기 모양의 표시를 했다. 사내의 몰골로 봐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혹여 있다면 오직 복권 당첨밖에 없겠구나, 하고 뇌까렸다. 나는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쳇! 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진즉에 부자됐을 텐데, 라며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어느 날부터 모두가 잠든 시간이면 욕실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흔히 보는 것들보다 냇가에 사는 물방개만큼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긴 수염에 등딱지가 갈색인 놈은 내 앞을 알짱거리며 깐족댔다.

뺀질뺀질하게 생긴 넌 누구냐?

뭐? 쬐끄만게 얻다 대고 막말이야!

뻔뻔한 녀석아! 여긴 오래전부터 내 영역이라고, 어디서 굴러들어온 주제에 터줏대감도 몰라보고 까불어!

그럼 넌, 이 집에 산 지 얼마나 됐니?

우리 조상은 저 먼바다를 건너와서 대대손손 이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잔뼈가 굵었거든.

그래? 너는 많은 것을 알고 있겠구나?

그야 당연하지. 흠! 이 집에 대해서 나만큼 아는 놈은 없을 거야. 내가 이곳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산 지가 얼마인 줄 아느냐.

그렇구나! 여자는 좀 모자란 편이라 걱정이 안 되는데. 사내는 어떤 인간이야?

옹졸하기가 간장 종지만하고 속은 밴댕이 소갈딱지에다가 변덕이 죽 끓듯 하니까 너도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는 졸려서 깜빡 낮잠에 들었는데, 느닷없이 귓청 떨어질 뻔한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 왔다. 개 같은 새끼들이 누군 뭐 물 퍼서 차 굴리는 줄 아나. 엉! 실컷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돈 줄 때는 차일피일 미루는 심보는 무슨 경우야. 엉! 배송료도 제때 주지 않는 놈의 회사를 확, 엎어버릴까.

사내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욕설을 해대고 있었다. 사내는 물류회사에서 배송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달 배송료를 제때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막이야 어쨌든 나는 사내의 전화 통화를 듣다가 개 같은 새끼들, 이란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왜 인간들은 말끝마다 개 같은 새끼니 뭐니, 하며 착하디착한 우리 강아지들을 들먹이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꼭 나쁜 의미로만 써먹었다. 아니, 우리 강아지들이 무에 그리 잘못을 했냐구요. 이 땅에 개로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인간들을 위해 발바닥까지 핥아주는 강아지들을 까딱하면 무시, 괄시, 천시하는 인간들의 심보를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내가 욕실에서 샤워할 때 알몸을 종종 보았다. 사내가 움직일 때마다 기분 나쁘게 생긴 물건이 눈앞에서 덜렁거렸다. 성질 같으면 대번에 콱 물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인간들아! 앞으로는 강아지들 앞에서 개 같은 새끼라 욕하지 마라. 자세히 보니 네 물건이나 내 물건이나 오십 보 백 보 등만 듣는 강아지 굉장히 기분 나쁘다.

일례로 우리가 간혹 대낮에 흘레붙는다고 돌멩이를 던지는 인간들이 있다. 왜 그리 생각이 깊지를 못하느냐. 밤에는 도둑놈을 지켜야 하니까 집을 비울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연모하는 이웃집 갑순이랑 대낮에 짬 내서 번식 활동을 하는 건데, 속 창시 없는 인간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대낮부터 흘레붙는다고 돌팔매질을 해댄다. 강아지만도 못한 인간들을 볼 때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기분이 더러워져서 아까 먹다 만 개껌을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어느 날부터 사내는 온 집안에 개털이 날린다며 투덜댔다. 그러더니 나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는 멋지고 긴 털을 홀라당 밀어버렸다.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긴 털이 배불뚝이 수의사의 바리깡에 싹뚝 잘려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자존심이 일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을 훌러덩 벗어버린 듯 뭔가 허전했다. 겨울도 아닌데 추웠다. 다리를 내려다봤다. 앙상한 뼈다귀만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등 쪽을 보니 멋지고 긴 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엉덩이 쪽을 봐도 역시 윤기 나는 긴 털은 말끔히 잘려져 나가고 비루한 몸뚱이만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 내 모습이란 말인가. 너무나 속상하고 창피해서 얼굴이 다 빨개졌다. 나는 너무 슬퍼서 동물병원 구석에 쭈그리고 있었다, 몸도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사내가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음흉스럽게 웃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

사내가 몹시 미워졌다. 내가 받은 모욕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앙갚음하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그 기회가 찾아왔다. 사내가 산책 중에 잠깐 목줄을 풀어주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아이들과 장난하는 척하며 매우 거칠게 날뛰었다. 그중 여자아이가 나의 행동에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 엄마는 잔뜩 화가 나서는 이 개새끼 주인 어딨어! 하며 소리를 빽 질렀다. 부리나케 달려온 사내는 느닷없는 나의 돌발 행동에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는 아이들 틈에서 컹컹 짖으며 날뛰고 있는 나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사내를 더욱 골탕 먹일 셈으로 잡힐 듯 말 듯 하며 아이들 주변을 빙빙 돌았다. 사내는 내가 좀처럼 잡히지 않자 더욱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한쪽에서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다가 사내의 하는 짓거리를 보고는 있는 대로 화가 뻗쳐서는 사내의 등짝에 날카로운 목소리를 다시금 꽂았다. 지금 장난하는 거예욧! 나를 끌고 집에 돌아온 사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욕실의 수건걸이에 나를 묶은 뒤 슬리퍼 짝으로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요놈의 개새끼가 오냐오냐 했더니 주인 알기를 씹다만 개껌으로 알아. 오늘 내 손에 작살날 줄 알어! 나는 깨갱, 깨갱 비명을 지르며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다. 곤죽이 되도록 맞고 나서 그날 저녁에 꿈을 꿨다. 사내가 개로 나타났다. 나는 사내의 목을 있는 힘껏 졸랐다. 감히 나의 멋진 털을 깎아버리다니. 사내는 아니, 개는 숨이 턱턱 막히는지 발버둥을 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댔다. 그리고는 내 팔뚝을 물어뜯어려 했다. 인간들은 아니, 개들은 다 죽어야 해! 나는 안간힘을 다해서 사내의 목을 조르다 잠에서 깼다. 휴! 악몽이었다.

다음 날부터 사내는 내게 평소에 주었던 맛있는 통조림 햄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싸구려 사료를 주었다. 나는 사료에 일체 입을 대지 않았다. 사내가 새벽에 용변을 보러와도 나는 등을 돌리고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사내의 손을 핥지 않았으며, 사내도 더 이상 나를 무릎에 올려놓지 않았다. 사내와 나는 무언의 신경전을 벌였다. 사흘 정도가 지나자 사내는 사료마저 치워버리고는 아예 먹이를 주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배고픔을 참았다. 나는 굶어 죽을지언정 미천한 강아지들이나 허겁지겁 먹어대는 값싼 사료 따위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로 사내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어지고 여자는 평소처럼 내게 먹이를 넣어주곤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를 귀여워하거나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반지하 쪽 창으로 비춰드는 달빛을 쳐다보며 한숨 쉬는 날이 많아졌다. 창밖으로 술에 취한 젊은 것들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잠이 든 인간들을 모조리 깨워서 새벽녘에 노래를 경청하라는 심보인 듯했다. 나는 사내가 술에 떡이 되면 꼭 저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노랫소리가 멀어지자 낡고 부스러진 격자 나무문 틈에서 사각사각 긁는 소리가 났다. 귀를 쫑긋하고 들여다보니 예의 늙수그레한 바퀴벌레가 긴 수염을 끄덕거리며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내 앞을 얼쩡대면서 슬그머니 약을 올렸다.

말라깽이! 웬일로 서리 맞은 배추마냥 축 처져 있느냐?

내 멋진 털을 깎아버려서 사내에게 복수를 해줬거든.

허! 그래서 지금 비루먹은 강아지 꼴을 하고 있구나. 쯧쯧. 고매하신 할머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자고로 털 달린 짐승들은 털 없는 인간들에게 길러지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인간들은 믿을 만한 족속들이 못 돼,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굳이 네 녀석이 아니라도 신의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머지않아 인간들에게 벌을 내릴 테니까.

그 벌이란 게 뭔데?

인간들은 이기적이며 위선과 거짓말에 능수능란하고 툭하면 서로 헐뜯고 싸우는 미개한 족속들이거든. 그래서 신들은 인간들의 아귀다툼 소리가 지긋지긋해서 입을 죄다 틀어막고 싶어 하지.

쉿! 목소리 낮춰. 누가 들을라.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되었다. 계절은 바야흐로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입양된 지도 어느덧 꽤 되었다. 내 몸집도 많이 불어서 여자가 나를 안을 때면 브왈라! 외치며 버거워했다.

나와 신경전을 벌인 후로 사내는 집에 별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일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화물 차주여서 부르는 곳이 있으면 지방 어디든 달려갔다. 길게는 한 달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다. 평소에도 사내는 여자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 사내는 일찍 집을 나서서 밤늦게 들어왔다. 사내가 퇴근하면 여자는 잠들어 있거나 해서 사내가 밥 차려 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여자의 코골이가 심해서 사내는 늘 거실에서 잠을 잤다. 여자는 나름대로 혼자 지내는 데는 이골이 났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달인급이었다. 조용하다가도 한번 말문이 터지면 몇 시간이고 마치 모노드라마 주인공 마냥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입양된 후로 딱 한 번 관리실에서 나온 전기 기사 말고는 방문객이라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지냈다.

개나리가 슬슬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에 사내는 집을 한 달가량 비우게 됐다. 뜬금없이 낯선 방문객이 여자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중년의 두 여성은 어느 교단에서 나왔는지 전단지를 들고 여자의 집에 종종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딱 한 번 외출한 뒤부터 여자는 더욱 무기력해졌다. 인간들이 입을 하얗게 가리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거리는 한산해지고 산책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공원에는 저마다 입을 하얗게 막고 애견들을 끄는 모습이 늘어갔다. 심지어 애견의 주둥이까지 입마개를 하고 끌고 다니는 견주도 있었다.

사내가 가끔 집에 들어오면 여자는 몸이 아프다고 호소를 했다. 사내는 여자가 어떻게 아픈 지도 모른 채 엉뚱한 약만 지어다 먹였다. 여자는 날이 갈수록 고통이 심해졌다. 언제 산책을 다녀왔는지도 희미해졌다. 종일 집안에만 있으려니 갑갑해서 죽을 맛이었다. 얼른 여자가 나아서 예전처럼 신나게 산책을 했으면 좋겠다, 는 소원뿐이었다.

사내가 집을 비운 사이 여자는 옆구리가 결리고 숨쉬기도 힘들다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는지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곧이어 119구급차가 오고 하얀 방역복을 입은 대원들이 여자를 들것에 싣고 신속히 집을 떠났다. 저녁쯤에 얼굴이 상기된 채 집으로 돌아온 사내는 한동안 정신이 나간 듯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병실에서 필요한 뭔가를 가지러 왔을 터인데 빈집에 들어선 듯 공허한 눈빛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내게는 관심도 없는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는 것 같았지만 사내는 내게 밥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밥을 달라고 보채거나 칭얼대지 않았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듯한 사내는 장롱과 서랍을 열기도 하며 이것저것 부랴부랴 끄집어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내는 짐을 싸 들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곱사등이 사내의 등짝이 마른 낙엽처럼 바짝 야위어 보였다. 사내는 짐을 싸서 현관문을 막 나서려던 찰나에 나를 발견한 듯 경멸하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저놈의 개새끼를 얻다가 버리든지 해야지. 개새끼를 집에 들이고부터 재수 없는 일만 생기는구나, 하고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애써 사내의 눈길을 피하며 못 들은 척했다. 아니, 왜? 여자 아픈 것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있다고 나를 증오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말 못하는 강아지라지만 그런 심보를 가지면 못 써요. 그러다 천벌을 받는다고요. 나는 화가 나고 우울해져서 앞에 놓인 개밥그릇을 발로 냅다 걷어찼다. 개밥그릇이 저만큼 굴러가더니 빙그르르 돌다가 멈췄다. 정말이지 내가 개밥그릇처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사내는 미운 놈 떡 하나 주는 셈으로 먹이를 주고는 사라졌다. 그리고는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집에 들렀다. 여자는 구급차에 실려간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사내가 술에 잔뜩 취한 채 들어와서는 나를 덥석 안아서 차에 태웠다. 이런 밤에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 왠지 불안했다. 산책은 항상 낮에만 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내에게서 술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왔다. 어지간히 마신 모양이었다. 필시 나를 어디엔가 버리기로 작정한 듯했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덮쳐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시트에 오줌을 갈기고 말았다. 긴장한 탓인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도 모르게 오줌이 나왔다. 자동차 시트가 축축하게 젖었다. 사내는 시트가 젖어있는 줄도 모르는 눈치였다. 사내는 지금 나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 사내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동물적 감각으로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신이 동물에게 내린 재능이라면 후각 촉각과 더불어 바로 이 예감이란 재능이었다.

사내는 입을 꾹 다물고 왼손으로만 차를 비틀비틀 몰고 달렸다. 나는 서먹한 공기를 환기하고자 무릎에 올려놓은 사내의 오른손에 살며시 혓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손등을 부드럽게 핥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히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핥는 다음에 다시 사내의 손등을 툭툭 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는 혀가 아프도록 손바닥을 구석구석 핥기 시작했다. 나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아니 버려지더라도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게 나을 듯싶어 사내의 손을 정성껏 핥았다. 사내는 줄곧 왼손으로만 운전하며 넋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겁지겁 차에 탄 뒤로 사내는 한 번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내는 길을 잘 못 들어섰는지 힐끔힐끔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다. 한 번쯤은 지나갔었던 길 같은데 어디쯤인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는 듯했다. 나도 조금은 불안한 마음에 혹여 길을 잘 못 들어섰나 싶어 앞발로 핸들을 짚은 채 고개를 돌려서 걱정스레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겪은 바로는 사내는 약간 길치였다. 훤한 대낮에도 한번 가본 길을 다음에 다시 갈 일이 생길 때면 으레 길을 잘못 들기 일쑤였다. 그런 둔한 감각으로 배송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유리창으로 빗줄기가 가느다랗게 부딪히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가로등 불빛들이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사내는 운전하며 밤길이 어두운지 매번 두리번거리며 길을 확인하는 듯했다. 나도 한 번쯤은 봤을 법한 풍경이 언뜻 스쳐 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내는 굳은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대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빗줄기는 점차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어디쯤에 버려질 것인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소일까. 아니면 전혀 예상 밖의 장소일까. 혹시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 버려져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사내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아니면 그냥 그대로 떠돌이 개로 살아갈까. 그러다 마음씨 좋은 누군가를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어차피 개 팔자야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사내가 속도를 줄이며 차를 세웠다. 희미하게 낯익은 풀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오래전에 한 번 와 본 듯한 곳이었다. 귓속으로 잔물결 일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던 저수지였다. 인적이 끊긴 주변은 고요했다. 저수지 위를 지나는 열차 교각의 보안등이 수면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내는 차를 저수지 방죽에 최대한 가까이 댔다. 그리고는 잠시 주위를 살펴보더니 차 문을 열고는 방죽 아래로 나를 세차게 밀쳐냈다. 내 몸이 붕 뜨더니 방죽 풀더미 속으로 벌러덩 굴렀다. 비에 젖은 풀더미는 차갑고 축축했다. 다시 기어오르려 해도 가파른 방죽에다 풀더미가 미끄러워서 주르륵 도로 내려갈 뿐이었다. 사내가 시동을 걸며 차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위쪽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차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갑자기 기우뚱거리더니 순식간에 방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사내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핸들을 반대로 꺾은 모양이었다. 차는 그대로 저수지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가까스로 방죽을 기어 올라와서 저수지를 내려다봤다. 차가 빠진 곳에서 거센 물살이 소용돌이치더니 이윽고 잠잠해졌다. 수면 위로 사내는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저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 차를 삼키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면은 빗줄기를 머금고 있었다. 문득 어디선가 브왈라! 하며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수지 쪽으로 고개를 빼들었다. 차가 빠진 물속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눈에 띠었다. 자세히 보니 교각 불빛 아래서 여자가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여자를 향해 곧장 뛰어내렸다.
 

박도열1966년 전남 장성. 1998년 자유문학 등단. 2006년 제27회 근로문화예술제?소설 수상2020년 제5회 나혜석 문학상 소설 수상
박도열1966년 전남 장성.
1998년 자유문학 등단.
2006년 제27회 근로문화예술제 소설 수상
2020년 제5회 나혜석 문학상 소설 수상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