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말은 씨앗이 되어 어디론지 날아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고 뱉었던 당사자들에게 돌아가 독이 되기도 하고 달콤한 과즙이 되기도 한다.

지금 세상에 험악한 말이 너무 많이 날아다닌다. 어떨 때는 지겨워진다. 덕담은 날개가 없고 악담이나 험담만 날아다니는 것 같다. 해마다 입시 정보를 보면 법대에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 이런 수재들이 법을 공부하여 판사도 되고, 검사도 되고, 변호사가 된다. 정치계에 투신하여 활동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희한하다. 오히려 법질서는 어지러운 것 같으니 말이다. 법이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나거나 줄기도 하고, 구미호처럼 둔갑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속담에 ‘귀한 자식 매 한 번 더 주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법의 잣대도 남의 편이나 미운 놈보다는 내 편이나 귀한 놈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물론 만인에게 공평한 법 적용이어야 하지만 내 편부터 엄격하게 다스리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남의 흠집은 금도금 속에 숨어 있어도 긁어서 밝혀내고, 내 편의 흠집은 두세 겹 금도금으로 감추어주는 풍토인 것 같다. 바로 국회청문회의 실상이다.

구약성서에 ‘삼손’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힘의 비밀을 사랑하는 여인 ‘데릴라’에게 누설하여 파탄을 맞게 되고, 다시 찾은 힘으로 많은 사람과 함께 몰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입조심을 하지 않은 탓에 일어난 비극이다. 마태복음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했다. 말이 자신을 망치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말의 힘은 더욱 막강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종횡무진이다.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마구 휘둘러 대고 있다.

신이 입을 닫을 수 있게 설계했고 귀는 닫을 수 없게 설계했다. 남의 말이나 의견은 경청하고 쓸데없는 말은 만들어 내지 마라는 뜻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부득부득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무슨 심보인가. 말의 비수를 날려놓고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모습에 쾌감을 느끼는 악취미를 버려야 한다. 아껴서 좋은 것이 돈이 아니라 생각 없이 뱉는 말이다. 소문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남의 이야기라고 함부로 하지 말자.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시(詩)가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口是禍之門)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舌是斬身刀)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裝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安身處處宇).” 처세술에 밝은 풍도(憑道)라는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십국시대에 활약한 정치가가 남긴 말이다.

풍도(馮道)라는 사람의 인간됨은 논외로 하고 인생살이에 있어서 입이 화근임을 깨닫고 입조심을 처세의 근본으로 삼아 영달을 거듭한 사람이다.

사람의 얼굴에 인중(人中)이란 곳이 있다. 사람의 가운데란 뜻이다. 인중의 위로는 콧구멍, 눈, 귀가 둘씩 있다. 냄새를 잘 맡고, 열심히 살펴보고, 귀담아 잘 들어서 올바로 판단해야 하고, 인중 아래에는 입, 배꼽, 항문, 요도가 한 개씩 있다. 아껴 쓰고 조심해서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하는 이치라고 한다.

귀한 자식에게 매 한 번,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사회, 남에 대한 평가보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엄격하게 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탄핵하는 자성(自省)의 정치풍토가 되었으면 싶다. 코와 눈과 귀는 열어서 정확하게 알고, 입으로는 적게 말하고, 아름다운 말로 세상을 품격 있게 만들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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