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와 몽돌이 만든 감미로운 멜로디에 스트레스 훌훌

원통형 타워로 지어진 주상절리전망대 모습.

절기상 우수(雨水)가 지난 2월 마지막 날, 봄 마중 나들이를 갔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해파랑길’(부산 오륙도공원~강원 통일전망대 간 50구간 770㎞)중 경북 첫 구간(제10구간)에 위치한 경주 양남의 ‘파도소리길’을 걷기 위해 포항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양남 읍천항(邑川港)으로 차를 몰았다. 며칠 동안 날씨가 흐렸지만 대체로 맑겠다는 예보로 이름난 명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읍천항 부근에 차를 대고 걸었다. 조그마한 어항인 읍천항은 아담하고 조용하다.

파도소리길 출발점으로 가는 어촌마을에 이색적인 벽화가 길손을 반긴다.

채색한 지가 한참 된 낡은 벽화 위로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문구가 정겹다.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안내판이 주상절리에 대한 설명을 한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안내도’가 세워진 주차장에 제법 차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탐방객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코로나 역병으로 집에서만 지내기가 너무 힘들어 바닷가로 나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삼삼오오 걸음을 재촉한다.

읍천항 소공원에 갖가지 조형물과 하얀등대와 빨간등대가 대조를 이루며 서 있고 ‘아름다운 자연의 읍천항’이라고 쓴 간판이 뽐내고 있는 공원에 아직은 겨울이 다 가지 않아 누렇게 마른 잔디와 잎이 나지 않은 나뭇가지가 썰렁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리 차갑지 않다.

등대가 있는 공원에서 본 에메럴드빛 바다에 철썩이는 파도가 봄이 가까이 있음을 알리며 탁 트인 수평선과 함께 봄기운이 길손의 가슴 깊이 스며들게 한다. ‘파도소리길’이라는 이름이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님을 안다.

읍천항에서 시작하여 하서항(율포진리항)까지 3.16㎞ 구간에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1.7㎞가 포함되어 있어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탐방로는 긴 해안을 끼고 걷는 트레일로써 이미 명소로 알려진 탓에 사계절 탐방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날씨가 점차 좋아지고 햇살이 나면서 탐방로에 웃음꽃이 묻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출렁다리가 나온다.

주상절리전망대로 가는 출렁다리 모습.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봄소식이 묻어나고 아래로 일렁이는 파도소리가 봄을 실어 나른다.

출렁다리를 지나 지척에 있는 ‘주상절리 전망대’의 높은 타워형 건물이 눈에 띄고 탐방로에 들어선 카페와 펜션들이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 안내판에 눈길이 간다.

약 2,000만 년 전(신생대 마이오세) 이 지역 일대에 현무암질의 용암이 흐르고 식으면서 다양한 모양과 방향의 주상절리로 발달한 암석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하며 대부분의 주상절리들이 수직 또는 경사된 방향으로 발달한 것과 달리 이곳에는 수평방향의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부채꼴 형태나 위로 솟은 주상절리, 기울어진 형태 또는 누워 있는 주상절리 등 국내의 다른 지역과는 달라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 ‘주상절리 야외박물관’이라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다. 또한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이 천연기념물 제536호(2012년)로 지정되었음도 알 수 있다.

주상절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파도소리길에 봄이 찾아들고 있다.

전망대를 지나 해안 탐방로를 따라 조금 가면 ‘부채꼴 주상절리’가 눈 아래 바닷가에 펼쳐진다. 신기하기도 하고 변화무상한 지구의 오랜 역사 속 신비로움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감탄하고 가지런히 펼쳐진 돌기둥 모양에 놀란다. 철썩이며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더욱 운치를 더해 주고 세상의 쓸모없는 소음들을 삼켜 버린다. 깨끗하고 맑은소리로 봄바람을 타고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파도소리가 상쾌한 발걸음을 만든다.

주상절리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부채꼴주상절리가 신비롭다.
누워 있는 주상절리 모습이 차곡차곡 쌓아 논 장작더미 같다.

지나는 길에 보이는 ‘양산할배바위’라 부르는 바위위에 자라난 조그마한 소나무 두 그루가 듬성한 노인네 머리칼처럼 솟아 있고 지난해 태풍으로 탐방로가 허물어져 내린 몽돌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몽돌로 탑을 쌓는 청춘남녀가 애틋해 보인다. 몽돌해변을 지나면 ‘솟아오른 주상절리’가 나오고 언덕배기 갈대밭 옆으로 쉼터가 있다. 정자에 한 가족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시름을 잊는 듯 평화로운 모습들이다. 쉼터를 지나 조금을 더 가면 ‘누워있는 주상절리’전망대가 나온다. 아래로 크게 늘려 있는 육각 돌기둥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형상을 볼 수 있다. 장작더미를 차곡차곡 쌓은 듯 가지런히 누워 있는 모습이 자연의 신비를 더욱 느끼게 만든다.

탐방로 주변이 너무 어지럽다. 몇 해 전만 해도 지저분하지 않았는데 곳곳이 쓰레기투성이고 태풍으로 망가진 탐방로며 빛바랜 이정표들이 아름다운 해안과 신비로운 주상절리군 명소가 무색할 정도로 낡고 관리가 소홀한 듯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다. 행정당국의 관리와 개선이 시급한 것 같다. 또한 탐방객들도 조금은 주의를 기울여 자연유산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가꿀 줄 아는 선진의식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주상절리군의 끝 부분인 ‘기울어진 주상절리’에 파도가 밀려 하얗게 부셔 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유산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주상절리구간을 지나 하서항(율포진리항)으로 들어선다.

테트라포드로 쌓은 방파제에 세워진 안내판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사랑海’라는 재미난 글이 길손을 웃게 한다. 방파제 끝머리에 ‘사랑의 열쇠’를 상징하는 빨간 큰 자물쇠 조형물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너른 해변에는 캠핑을 온 가족들이 여럿 보이고 주차장에 들어찬 캠핑카들이 이곳이 야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적지임을 알리는 듯하다. 조용한 정자를 차지하고 마음의 점을 찍는 도시락으로 봄 내음을 맡으며 허기를 달랜다.

읍천항 마을어귀에 그려진 이색적인 벽화가 길손을 반긴다.

양남 쪽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하천에 놓인 다리에 하얀 돔 형태의 조형물이 있고 그 속을 지나면 하서해안공원이 있다. 하서해안에도 몽돌해변이 길게 나 있고 하얀 포말을 그리며 밀려드는 파도와 몽돌의 조화로운 하모니가 봄볕에 부셔 지는 햇살처럼 싱그러운 선율을 만들어 선사한다. 하서해안공원에도 캠핑카들이 늘어서 있고 오토캠핑장에는 야영객들이 빼곡하다.

공원에서 울산 정자항이 지척에 보이는 이곳이 경북 경주시와 울산시 경계지점이다. 하서해안공원에서 발길을 되돌린다. 조금 전에 지나온 다리가 ‘물빛사랑교’이며 하서항에서 해안공원까지의 길을 ‘물빛파도소리길’이라고 부른다. 되돌아가는 길에 지나쳐 미쳐 못 본 곳도 본다. 해안가에서 미역을 채취하여 손질하는 여인네들의 부지런한 손끝에도 봄이 묻어나오고 주상절리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먼바다와 해안가에 힘껏 부딪히는 파도 모습에도 봄이 온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더욱 신비롭다.

오전보다 탐방객이 더욱 많아져 정체가 생기기도 하지만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몽돌이 만들어내는 감미로운 소리가 새봄맞이에 어울리는 멜로디로 암울한 일상이 훌훌 털어질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하다.

워킹 마지막 부분에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다. 끝마무리를 위해 탐방로 벤치에 앉았다가 카메라를 놓고 그냥 차로 돌아와 허겁지겁 되돌아갔다. 다행히 앉은자리에 그대로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마터면 이번 글도 쓰지 못 할 뻔했다. 그래도 세상은 믿을만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힐링 앤 트레킹’의 스물네 번째 이야기는 봄이 오는 해안에서 파도소리 들으며 ‘걸어서 자연 속으로’ 다녀온 것으로 끝맺음한다.

글·사진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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