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미시시피강은 미국의 중부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하천이다. 무려 31개 주가 포함될 정도로 유역이 광대한 미합중국 최대의 강이자 세계 네 번째로 길다. 중국의 황허강이 그러하듯이 북미 대륙의 젖줄로 불린다.

고유 명사 ‘Mississippi’는 특이한 철자를 가졌다. 시적인 조합 같은 반복은 원어민도 헷갈려 실수가 잦다는 낱말. 우연히 두 차례나 그런 경우를 보았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은 흑백 갈등과 정의파 수사관 활약을 다룬 작품으로, “i가 네 개인데 못 보는 것은 뭐냐”는 물음에 “미시시피”라고 답변하는 대사가 나온다. 나를 뜻하는 대문자 ‘I’가 없다는 사실을 빗댄 문제였다.

선킴이 진행하는 EBS 라디오 방송에도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미국인 보조자 캐머런에게 미시시피 철자를 말해 보라고 짓궂은 멘트를 날린다. 한데 단번에 맞히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신기했다. 겨우 임무를 완수한 그는 민망한 말투로 덧붙인다. 학생들 시험에도 자주 출제된다고.

지금 통용 중인 영어 알파벳은 기원전 1000년 무렵 레반트 연안 페니키아어에서 유래한다. 물론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자를 거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스 알파벳이 고안된 것은 비시 8세기쯤이다. 문자가 생기며 기록도 늘었다. 기원전 776년 제1회 올림픽 경기 우승자도 수록됐으니 말이다.

소설 ‘꺼삐딴 리’는 의사인 주인공이 외국어 실력으로 평생을 호강하는 얘기.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 유학으로 일어를 익혔고, 광복이 되면서 소련이 진주하자 러시아어를 배웠다. 한국 전쟁으로 월남한 이후엔 영어를 구사해 살아간다.

언어 하나로 풍진 세상을 견디는 허구적 인물의 수완이 부럽다. 유명인 중에는 외국어 감각이 뛰어난 재능도 보인다. 로마 제국의 유력자를 좌지우지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7개 국어에 능통한 지성인이고, 중국 당나라 멸망의 대란을 일으킨 안녹산은 6개 외어를 사용한 장수였다.

베트남 혁명가 호치민도 다양한 타국어 활용이 가능했다. 상당한 수준의 포르투갈어·체코어·태국어 능력을 지녔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는 영어로, 루쉰은 중국어로, 위고는 프랑스어로 읽었노라 자랑했다.

멜빈 브래그가 지은 책 ‘영어의 힘’은 그 1500년 여정을 서술한다. 당초 영어는 유럽 대륙의 게르만족 중에서 일부 소수 부족이 쓰던 방언. 이들이 잉글랜드로 이주해 켈트족을 몰아내고 영어의 씨앗을 뿌렸다.

오늘날 영어는 7000개 가까운 말들 가운데 20억 명이 이용하는 언어 권력이 됐다. 남들은 해야 하는데 누구는 안 해도 된다면 그게 바로 힘이다. 지구촌 영어화는 불공평 상황이다. 영어 원어민은 모국어 학습이 필요 없다. 미국 대학의 외국어 강좌 등록이 5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는 조사도 나왔다.

어학 공부는 또 다른 여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국적이란 느낌은 풍경과 음식뿐만 아니라 언어에도 진하게 배였다. 티브이 프로 ‘EBS 생활영어’는 매주 주제를 정해 외국인 인터뷰를 소개한다. 언젠가 구직 활동에 관한 미국 젊은이 대화다.

땅이 넓은 나라이기에 차가 필수라면서 뒤쪽에 세워둔 자신의 차를 가리키곤 말했다. “She is beautiful, isnt she?”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보닛이 벌겋게 녹슬고 범퍼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고물 트럭이 아닌가. 무려 21년 된 똥차를 ‘그녀’라 칭하니 일순 문화 충격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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