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 역사의 숨결에 옛 정취 흠뻑…몸·마음 힐링 절로

송천(松川)을 끼고있는 절벽 위에서 본 영해들판과 고래불해수욕장 모습.

봄이 성큼 다가온 3월에 찾아간 천년고찰 장육사(莊陸寺)는 미동도 없는 고요 속에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고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영덕을 지나 영해 송천교차로에서 918번 지방도를 따라 영양 방면으로 접어들어 곧장 가다 장육사 방향 이정표를 따라 20여분을 더 들어가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속에 장육사가 있다.

포항에서 1시간 반이면 충분한 거리라 그리 멀지 않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절집 같다.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 위치한 장육사는 운서산(雲棲山 518m)에 둘러싸인 천년고찰로 고려 공민왕 때 이곳 출생인 나옹왕사가 1355년 창건한 사찰로 조선조에서 여러 차례 소실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북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과 관음전에 주불(主佛)로 모셔져 있는 보물 제993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 등이 유명하다.

경내로 접어들기 전 일주문 부근에 넓은 주차장이 따로 만들어져 있고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절집 풍경보다 휴식공간이 잘 갖춰진 힐링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이곳 출신 나옹선사를 기리는 갖가지 조형물과 나옹선사의 석상이 세워져 있고 공원 옆으로 흐르는 계류와 정자도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하기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으로 영덕군에서 많은 투자를 한 곳이다.

운서산 장육사 일주문 모습.

일주문을 지나 운서교 다리를 건너 장육사의 첫 관문인 흥원루(興遠?) 목조건물이 나온다. 누각 안으로 들어서면 삼층석탑이 보이고 대웅전이 눈앞에 선다. 대웅전 좌우로 템플스테이 공간인 육화당(六和堂)과 심진당(心眞堂)이 대칭으로 가지런히 서 있다. 대웅전에 들러 삼존불에 삼배 드리고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영취산에서 석가여래가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불화)를 둘러본다. 관음전으로 자리를 옮겨 보물 제993호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의 금색 찬란한 형상에 신비로움을 느끼며 문을 나선다.

장육사 대웅전앞에 있는 오래된 목조건물인 흥원루 모습.

대웅전 뒤쪽으로 오르막을 올라가면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홍련암(紅蓮庵)에 닿는다. 장육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홍련암까지는 다녀와야 제격이다. 나옹선사가 처음 수행을 시작한 곳이라 알려진 곳으로 고려 말, 조선 초 3대 화상인 지공대사, 나옹선사, 무학대사 세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육사 절집이 적막에 쌓여 있다.

장육사 경내를 벗어나 좌측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영덕군에서 ‘인문힐링센터 여명’이란 한옥시설이 나온다. 천혜의 자연 속에 힐링과 명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웰니스관광객 유치를 위한 명소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단련하고 명상, 기체조, 건강음식체험 등 마음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마음과 몸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설이다. 한옥시설이 잘 만들어져 있고 유목민들의 거처인 ‘게르’도 있어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나옹왕사 선수행길 안내도와 나옹왕사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있다.
인문힐링센터 여명의 입간판 뒤로 한옥시설이 보인다.
인문힐링센터로 들어서는 주출입구.

시설 주변에는 ‘명상길’이라는 산책로가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청산계곡이 있어 수행하기에 그지없이 좋은 곳이다. 템플스테이 연수원인 여명과 장육사 일대를 탐방하는 ‘나옹선사 선(禪)수행길’이 두 갈래로 조성되어 장육사 절집의 고즈넉함과 운서산 기슭의 자연 풍광을 벗 삼아 걸어가는 힐링로드가 3㎞(1길 0.95㎞, 2길 2.15㎞)정도 이어져 있어 산속 트레킹이 가능한 청정 휴양지다. 세 시간 정도의 여정으로 둘러볼 수 있는 장육사와 선수행길 워킹 등으로 마음을 수련하고 자연을 품을 수 있는 좋을 곳이다. 고려 공민왕과 우왕의 왕사로 일생을 마친 나옹선사의 모든 것을 둘러보고 역사문화체험지구도 볼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이 그곳에 있어 그저 고맙다. 뒤돌아 나오며 읽은 나옹선사의 시(詩) 청산가(靑山歌)를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나옹왕사체험지구에 있는 청산가 벽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숲사이로 길이 끝없이 나있다.

장육사를 떠나 영해 쪽으로 나오며 볼만한 곳이 여럿 있다.

창수면 인량리와 영해면 원구리 한옥마을과 영해면 벌영리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숲길’이 그곳이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은 최근 전국 언택트 관광지 100선에 선정될 만큼 이름이 알려진 곳으로 개인소유로 20년 가까이 조성한 아담하고 아름다운 숲이다. 918번 지방도로변에 안내판이 있고 얼마 가지 않은 곳에 숲이 나온다. 질서정연하게 들어선 숲 속으로 길이 나 있고 미끈한 다리를 한 젊은 여인네처럼 늘씬하게 자란 나무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군데군데 앉아 쉴 수 있는 탁자가 놓여있고 500여m는 족히 될 만한 곧은 숲길이 들어서는 길손을 압도한다. 몇 해 전 잎이 무성할 때 와보고 감탄한 바 있었는데 늦겨울이 막 지나는 시기(2월 초)에 보는 숲은 또 다른 경관을 만들어 새삼스럽다. 잔가지 하나 없고 나무 끝자락에 피어나는 가지가 모여 숲을 만든다. 하늘로 향한 나무를 쳐다보니 아찔한 현기증이 난다. 20m는 넘는 키를 자랑하는 메타세콰이어가 푸른 하늘에 아우성을 치는 듯 바람에 나부낀다. 개인이 이렇게 좋은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숲 속에서 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하늘을 향해 아우성을 치는듯 길게 뻗어나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모습.

메타세콰이어숲 사이로 키 낮은 편백과 측백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자라고 있어 머지않은 장래 또 하나의 ‘치유의 숲’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여름 몰아친 태풍으로 허리가 부러져 나간 채 서 있는 나무가 여럿 보여 길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보기에도 아련할 뿐만 아니라 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끼게 한다. 빠른 복구를 기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숲을 빠져나와 긴 계단으로 오르는 전망대가 있어 한참을 오르면 영해 쪽 들판과 동해바다가 보이고 숲 전체도 조망할 수 있다. 요즈음은 사람이 북적이는 유명관광지보다 인적이 드문 이런 언택트 관광지에서 코로나로 잃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을 돌아보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상대산 정상에 세워진 관어대 모습.
관어대에서 보는 푸른바다와 명사이십리해변이 멋진 절경을 만든다.

시간이 나면 영해 괴시리에 있는 ‘관어대(觀魚臺)’에 올라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덕블루로드에 있는 관어대는 영해에서 대진 쪽으로 가다 왼쪽 송천(松川)을 끼고 도는 깎아지른 절벽 위 야트막한 산(상대산 183m) 정상에서 보는 풍광이 동해안 명승절경(名勝絶景)으로 ‘앞바다에 뛰노는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불리며 그 옛날 목은 이색 등 조선조 유명한 시인, 묵객들이 찾아 푸른 바다와 명사 이십리, 금솔을 즐겼다는 곳이다. 초입부터 짙은 솔 향(香)이 폐부를 찌르는 솔숲 사이로 길이 나 있고 누대로 지은 전망대에서는 사위가 탁 트인 조망이 시원스럽다. 주차장에서 700m 정도이니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가볍게 다녀올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자주 접하지 못하는 영덕군내의 몇 곳의 소개로 ‘힐링 앤 트레킹’ 스물다섯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슬픔의 시인’이라 불리는 정호승의 시(詩) ‘봄길’이 생각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하략)

글·사진 =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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