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며칠 전 3월 하순에 청도교육지원청에 잠시 들린 적이 있었다. 정문 옆 정원의 큰 돌에 ‘道不拾遺淸道敎育支援廳’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청도교육지원청을 새 청사로 옮긴 기념으로 세운 자연석 비였다. 색깔도 깨끗하고 모양새가 그럴듯한 암석에 왜 이 문구를 새겼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라가 잘 다스려져 태평하고 살림이 넉넉함을 뜻하기도 한다. 진나라 효공이 위나라 출신 공손앙(상앙)을 등용. 두 차례에 걸쳐 변법을 실시하여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된다. 법가에 속했던 상앙은 가혹하리만큼 엄함 법의 기준을 세워 백성들을 꼼짝 못 하게 하였다. 왕족의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고 엄격히 적용하였다. 이렇게 엄격하게 법을 시행한 지 10년이 지나자 백성들의 형편이 넉넉해졌다. 전쟁에도 매번 승리를 거두어 나라가 부강해졌다. 그 공으로 상(商) 땅을 받아 상앙 또는 상군으로 불렸다. 백성들의 삶이 넉넉하여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것도 줍는 사람이 없었고, 산에는 산적이 사라졌다고 한다.

도불습유와 연관되어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말도 있다. “민가는 열 집, 또는 다섯 집을 묶어 감시하게 하고 죄지은 것을 서로 고발하게 했다. 고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혀를 자르는 벌을 주고, 고변하는 사람에게는 큰상을 주었다. 연대책임제도이다. 군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공의 많고 적음에 따라 벼슬을 올려주고, 사사로이 싸움을 하는 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엄격히 벌을 준다. 본업에 힘써 밭을 갈고 길쌈을 하여 곡식이나 비단을 많이 바치면 부역과 부세를 면제해 준다. 군주의 친척이라도 싸워 공을 세우지 못하면 왕족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없게 하고, 상공업에 종사하여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게을러서 가난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등의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법으로 다스리려 했다. 백성들이 법령을 믿고 따르게 하려고 남문에 나무 장대를 세워두고 이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금 열 냥을 준다고 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번에 50냥을 준다고 방을 붙였다. 누가 남문의 나무기둥을 반신반의 북문으로 옮겼다. 정말로 금 오십 냥을 주었다. 백성들이 나라에서 하는 일을 믿게 만들었다. 바로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청도교육청에서 도불습유를 새긴 의도는 ‘길가에 흘려놓은 물건을 주워 가지 않는 정직한 사람을 기른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는데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가혹할 정도의 법을 만들고, 그 법의 엄격한 적용으로 길가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주워가지 않는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 온당한 방법일까? 단순히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풍속이 아름다워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지 않는다는 뜻으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가는 느낌이었다. 상앙은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신임했던 왕이 죽자 새 왕에 의해 쫓기다 자신이 제정한 법에 의해 자신이 거열형(車裂刑)으로 사지가 찢겨 죽었다.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들의 살림이 풍족하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형벌이 무시무시하여 법을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도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까지 규제한다면 모든 것이 위축되어 진정한 태평세월이 올 수 없을 것 아닌가.

요즘 우리나라의 택배기사가 물건들을 현관문 앞에 두고 가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인이 놀라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서로 믿고 산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말의 유래로 볼 때 ‘도불습유’는 검찰청이나 경찰서 같은 관청에 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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