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칠 한국문협 국제문학교류위원·문학평론가
서영칠 한국문협 국제문학교류위원·문학평론가

춘분의 햇살이 출렁대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날아왔다. “저… 서영칠 씨 맞죠!” 연로한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하고 되물었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저 극단 신협에 93세 장재원입니다”라고 하셨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 왔다. 젊은 날, 가부키를 지도해주셨던 신협(옛 국립극장)의 고설봉 선생님과 함께 하셨던 최고령의 극작가이신 장재원 선생님이었다. 얼마 전 한국문협에서 발간하는 『한국문학인』 봄호에 실린 필자의 졸고 「동해별신굿」을 보시고, 생면부지의 후배에게 연락처를 알아 내어 전화를 하신 것이다.

동해별신굿이 희곡을 통해 중앙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세계적인 미래학연구소장인 롤프 엔션은 ‘정보화 시장 이후, 꿈과 감성을 파는 이야기 시장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포항시민의 바람 또한, 해양문화도시를 꿈꾼다는 사실이 오래전 설문조사로 규명되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시대 흐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동해별신굿의 현주소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른 지역에는 있는 동해별신굿 보존회조차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 동해별신굿은 공동체적이고 주술적이어서 가히 절대적이었다. 또한, 시간과 공간 속에 녹아있는 잘 갖추어진 종합예술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해별신굿은 고 김석출 옹(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을 거론하지 않고는 말할 수가 없다. 고 김석출 옹은 포항시 흥해읍 환호동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남긴 발자취는 곧 동해별신굿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영덕, 구룡포, 부산 등, 가족 구성원의 대부분이 동해안에 산재하여 무업에 종사했다. 특히 몇 해 전 작고하신 조카, 고 김용택(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선생 또한, 거주지가 포항시 남구 해도동이었으며, 생전에 필자와 수차례 만나 동해별신굿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포항은 동해별신굿의 주체이며, 세습무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번 전국적인 문학지를 통해, 지역에 산재한 이야기를 희곡 작품으로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많은 사람들, 특히 서울 예술인들의 관심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예술의 살아있는 전설, 장재원 선생님께서 한 시간이 넘도록 해주신 격한 칭찬과 따뜻한 격려는, 필자의 예술 입문 44년을 녹이는 전율 그 자체였다. 선생님께서는 나아가서 이제는 타 지역의 ‘씻김굿’이나, ‘오구굿’처럼 중앙무대 입성을 통해 대중화를 이루고, 문화브랜드가 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다. 희곡 「동해별신굿」은 오랜 시간에 절차탁마한 필자의 붓칼이다. 여기에다 정교한 연출의 미학이 덧씌워진다면 포항의 예술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자리한 파도 위에 오늘도 정겨운 푸너리 춤을 춘다. 중앙무대에서 예술의 심장이 뜨겁게 달구어지는 날, 비로소 글로벌 로컬리즘이 실현될 것이다. 관계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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