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바다와 아름다운 솔숲 품은 마음의 안식처

월송정 전경.울진군

사이다 같은 바다와 사계절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로이 살아가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넓은 월송뜰에서 자란 벼는 적절한 해풍과 태양을 맞으며 건강하게 자라 농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곳간과 같다.

풍요로운 바다와 논은 수천 년 세월을 지내온 이곳 마을 주민들에게는 삶의 원천이며, 행복을 안겨주는 쉼터와 다름없다.
 

월송정 전경.울진군

△월송정, 달돋이를 감상하다.

월송정(越松亭)은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월송정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네 화랑인 영랑·술랑·남석랑·안상랑이 빼어난 소나무 숲의 경치를 모르고 지나쳤다고 혹은 중국 월나라 산의 소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애초의 월송정은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가 아니라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는 망루로 활용됐다.

조선 중기 관찰사인 박원종이 지었다 낡고 오래돼 황만영이 새로 지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주둔한 군이 적기의 목표가 된다 해 철거되는 등 아픔의 역사도 갖고 있다.

관동팔경 월송정 현판이 걸린 입구 전경.울진군

시간이 흘러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가 철근 콘크리트 정자를 지었으나, 옛 모습이 아니라 헐었고 고려 시대 양식을 본떠 지금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비 온 다음날 소나무 숲에서 감상하는 월출(달이 수평선 위로 떠오름)은 일출과 다른 황홀함을 안겨준다.

월송정에서 바라보는 송림 숲.울진군

은은한 잿빛 달빛은 복잡했던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고 소나무 그늘에 비친 달빛은 오묘함을 느낀다.

월송정은 가사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에도 소개됐다.

관동별곡은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지은 가사인데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관 8곳 중 월송정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

월송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솔숲 위로 멀리 바닷물이 넘실거리는데 이러한 월송정의 빼어난 풍광을 겸재 정선은 화폭에 아름답게 묘사했다.

정자 앞의 금빛 모래밭과 쪽빛 바다 그리고 울창한 소나무 숲을 화폭에 담았다.

이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월송정은 역사의 슬픔과 기쁨을 모두 간직한 채 모든 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부모의 인자한 미소와 닮았다.



△독립운동가 황만영 선생.

월송정 초입에 들어서면 황만영 선생의 기념비가 조성돼 있다.

황만영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울진에 주둔하고 있던 성익현(成益鉉) 의병대에 군자금 800냥(지금으로의 가치 약 3~4억 원 상당)을 지원했다.

황 선생은 1912년(37세) 만주로 넘어가 세상을 떠나가 전 1939년(64세)까지 항일 운동에 참여했으며, 이시영 등과 함께 신흥학교를 세우고 재정을 담당했다.

만주로 넘어가기 전인 1907년에는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대흥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 황만영 선생은 의병들에게 군자금을 지원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학교를 세우는 등 자신을 태워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전부를 바친 인물로 통한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연해주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에 참가했고, 9월 주진수(朱鎭洙) 등과 함께 만주로 파견돼 순회강연을 개최하면서 항일 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1925년에는 정의부(正義府) 독판(督辦) 이상룡(李相龍)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하기 위해 길림에서 상해로 갈 때 함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또한 같은 해 8월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들어왔으며, 1927년 신간회(新幹會·좌우익 세력이 결속해 만든 항일단체)가 성립되자 신간회 울진지회 회장에 선임돼 민족협동 전선 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황 선생은 충절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역사적 인물 중 하나로 지역 주민은 물론 울진인의 정신적 지주로 칭송받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평해사구습지 생태 공원 전경.울진군

△평해 사구 습지 생태공원과 월송포진성터.

평해 사구 습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해안에서부터 차례로 3개의 해안사구열이 잘 보존된 곳이다.

평해 남대천과 바다를 잇는 하류 수역에 위치해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매를 비롯해 삵, 말똥가리, 새흘리기, 가시고기 등 다양한 종이 서식하고 있다.

평해 사구 습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울진군

해안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구 습지는 규모 면에선 중규모지만, 해안사구열의 형성으로 볼 때 학술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훼손 없이 보존 상태가 높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춰 훌륭한 볼거리로 손색이 없다.
 

평해 사구습지 생태공원 데크 길.울진군

생태공원 주변에는 습지와 해안을 잇는 산책로가 조성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느끼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공원 중앙에는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대를 비롯해 새들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할 수 있는 조류관찰대 등 살아있는 생태환경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생태공원에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해안 숲길.울진군

겨울철이면 러시아에서 날아온 큰고니를 비롯해 청둥오리 등 다양한 철새를 볼 수 있다.

옛 7번 국도에서 사구 습지 생태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월송포진 터가 남아있다.

월송포진은 명종 10년(1550년) 돌로 성을 쌓았으며, 만호 1인과 수군 400명이 주둔해 동해안 경비를 담당했다. 조선시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삼척포영과 교대로 수색하고 왜구를 토벌했으며, 현재 삼척포영은 개발로 흔적이 사라진 바람에 월송포진만 남아 있는 상태다.

월송포진은 우리나라가 오랜 세월 동안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다는 역사적 근거는 물론 고고학적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형소 기자
김형소 기자 khs@kyongbuk.com

울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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