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국민들은 다른 나라의 백신 접종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마스크 하나로 버티고 있고 젊은이들은 급등하는 전·월세에 밤잠을 설치는 상황이 엄중한 시점에 여야 정치권은 당권 다툼에 빠져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다. 대통령은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다방면의 노력과 대비책으로 백신 수급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보고를 받고 이런 말을 하는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백신 자화자찬이 아닌가 싶다. 세계가 백신접종을 시작한 지 45일째인 지난 12일 현재 우리나라의 백신접종률(2.3%)이 일주일 늦게 시작한 아프리카의 르완다(접종률 3.5%)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르완다는 1994년 종족 간 갈등으로 대학살이 일어나 50만 명이 숨진 인구 1300만 명에 GDP 세계 141위의 최빈국이다. 세계 GDP 12위의 부국인 우리가 세계 접종 순위 111위로 평가받는 현실을 맞아 “르완다보다 못할 수 있느냐”는 자조가 국민들 입에서 나올 수 있게 됐나. 어저께까지 K-방역을 국내외에 자화자찬했던 나라가 어째서 국제적으로 이런 참담한 망신을 당하는 현실에 이르게 되었는가.

전문가들은 “현재의 백신 접종 속도로는 정부가 밝힌 11월 집단면역 도달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하루 115만 명까지 접종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현실은 접종할 백신이 없어 매일 4만 명 정도의 찔끔 접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코로나 확진자수가 600~700명대를 넘나들어 관련 의학계는 ‘4차 대유행’의 위기가 턱 앞에 와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올 상반기 우리나라 주력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는 혈전 등 안전성 문제로 30세 미만은 접종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상황이다. 2분기 중에 600만 명분을 도입할 예정인 얀센 백신도 혈전 부작용 문제로 미국 정부가 접종을 중단한 상태로 국내 제때 도입도 불확실하게 됐다. 이 때문에 질병관리청에서도 연말까지는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조치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달부터 노바백스 백신이 국내 생산이 시작되고 상반기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도 확보했다”며 “3분기까지 2000만 회분이 공급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바백스 백신은 아직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허가를 받지 못하고 영국과 유럽의 규제기관으로부터 사전심사, 롤링 리뷰(순차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영국과 유럽의약품청(EMA)은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7월께 사용허가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5월 중에 2000만명분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공언해 우리가 기대를 모은 모더나 백신도 최근 미국에 2억 회분을 우선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당초 올 2분기에 들어오기로 한 모더나 백신이 언제 얼마가 들어 올지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현재 이스라엘, 영국, 미국, 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들은 집단면역 형성에 가깝게 백신 접종에 속도를 높여 예년의 일상에 근접해 가고 있다. 우리 국민은 도대체 누굴 믿고 이 엄중한 현실을 헤쳐나가야 되나. 하루가 시급하게 국민에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정부 측과 긴밀한 협의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여야 양당 모두 4·7 재보선으로 공석이 된 당 대표 자리를 두고 의원 개인의 사익과 ‘끼리끼리’ 간의 권력 확보에 정신줄을 놓고 있을 뿐 국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입에 마스크를 하고 있으나 왜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조차 잊은 듯이 보인다. 이런 정치인에게 국민의 안위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우리의 처지가 르완다보다 앞날이 더 참담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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