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기독교가 가장 무겁게 여기는 죄는 우상 숭배다. 여호와 이외의 신을 숭배하는 행위다. 여호와를 잘못 정의해 믿는 행위 역시 우상 숭배로 간주된다. 여호와를 여호와 아닌 다른 신으로 바꾸어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질투하는 신’으로 정의한다. 우상 숭배에는 가차 없는 징벌이 기다린다.

교만 역시 우상 숭배에 버금가는 큰 죄다. 교만은 한마디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교만한 자란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택한 수단을 더 신뢰하는 자’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 상당수가 늘 그랬다.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목이 곧은 민족’이라고 꾸짖은 이유다. 잠언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경고한다.

교만한 자는 말이 많다.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자는 대개 지혜롭다. 침묵이 자신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아는 자다. 침묵하는 자들은 안다. 발화(發火)하는 순간, 그 발화로 인해 이익을 잃은 자, 자존심을 다친 자, 시샘하는 자들이 일제히 박해하려 달려든다는 사실을.

현인들은 그래서 뜻을 알아줄 사람을 기다리며 자신의 관점을 텍스트 어딘가에 침묵의 형태로, 혹은 모호한 표현으로 숨겨놓는다. 공자 역시 그랬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이 물었다. “말씀을 안 하시면 저희들은 무엇을 배워 말한단 말인가요?”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한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논어(論語) 양화(陽貨)편>』

중국 주(周)나라 선왕(宣王)은 투계(鬪鷄)를 좋아했다. 기성자(記?子)란 투계 훈련사를 불러 싸움닭 한 마리를 주며 최고의 투계로 만들라고 명했다. 열흘이 지난 뒤 선왕이 물었다.

“충분히 훈련시켰는가?”

“아직 멀었습니다. 허황되고 교만하여 자신이 최고인 줄 압니다.”

다시 열흘 뒤 선왕이 또 물었다. 기성자가 대답한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 소리만 들어도 짖고, 그림자만 봐도 뛰어오릅니다.”

또 열흘 뒤 선왕이 다시 묻자 기성자는 대답한다.

“아직 멀었습니다. 여전히 상대방을 보자마자 달려듭니다.”

마지막 열흘이 지난 뒤 선왕이 묻자 기성자는 대답한다.

“대략 된 듯합니다. 상대방이 소리 질러도 반응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합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木鷄)처럼 됐습니다.”

장자(壯者)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고사에서 ‘목계지덕(木鷄之德)’이란 말이 나왔다. 침묵할 줄 알고, 매서운 눈초리를 보여 주지 않아도 상대방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경지다.

목계가 주는 메시지는 3가지다. 첫째, 교만한 자는 하수다. 둘째, 상대의 도발에 쉽게 화를 내면 하수다. 셋째, 싸우고 경쟁하려는 모습을 과다하게 드러내면 하수다.

최근 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완승, 압승했다. 그렇다고 교만하면 하수 된다. 잘 나고 예뻐서 시민들이 표를 준 게 아니다. 상대방을 혼내주려고 밀어줬을 뿐이다. 이 점을 명확하게 알고 침묵으로 깊이를 더하고 겸허로 섬기면 반사적 지지를 내재적 지지로 바꿀 수 있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반성하는 척만 하고, 다시 교만해지면 내년에는 기둥이 뿌리까지 뽑힐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매눈임을 잊지 말자. 교만하면 하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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