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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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사람에게는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한껏 추켜세우다가 떨어뜨려라. 부자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난을 자랑하라. 가능한 한 자세하고 구체적이며 아주 주관적이어야 한다.” 혐한(嫌韓)·혐중(嫌中) 독설가로 유명한 일본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北野 武)의 ‘독설의 기술’에 나오는 독설 구사법이다.

다케시는 “독설은 타이밍이다”라고도 했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된다. 두 발 앞서면 그저 튀기만 하는 존재가 되고, 반발 앞서 말하는 것이 딱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시각으로 남들의 허를 찌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절묘한 타이밍에 잇따라 독설을 구사하고 있다. 81살 망구(望九) 노정객의 발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험구(險口)다. 그런 점에서 다케시의 ‘독설의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는 고수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중진들이 벌이는 무질서한 당권 경쟁에 대해 깽판이 된 노름판에나 사용하는 단어인 “아사리판”이라는 독설을 내뱉었다. ‘아사리판’은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해서도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축하하며 ‘야권의 승리’를 운운했는데 건방진 소리다”라고 했다. 재보궐 선거에서 적극 지원 유세를 한 안 대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을 모욕적인 독설이다.

김 전위원장의 ‘독설의 정치학’에는 자신이 차기 대선에서 또 한 번 ‘킹 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주관적 의도가 깔려 있어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의 독설에 대해 ‘노욕’이라는 등 온갖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공고해진다. 김 전 위원장은 스스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월 중순 의사표시가 있을 것”이라 전망한 것처럼 5월께 대권 지지도 1위인 윤석열을 등에 업고 ‘제3지대’ 신당의 후견인으로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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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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