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7년 전, 온 국민이 단원고 아이들을 포함한 304명이 죽어가는 모습에 깊은 비탄에 빠졌다. 갑작스런 참사에 해경과 당국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슬픔은 곧 분노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14년 4월 16일 시작된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분노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꼭 이래야만 했을까? 애초에 일어나지 않아야 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이상 모두가 슬퍼하고 아파하게 된 것이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나도록 그 생채기를 다시 뜯어내고 있는 오늘의 모습이 과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인류가 끊이지 않는 비극과 부조리를 겪으며 쌓아온 나눔의 지혜를 저버린 것이 화근이다. 그날 이후 며칠, 몇 달, 혹은 1년 만이라도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진정한 애도와 위로와 공감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그 슬픔을 더 잘 나누어 짊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첫 단추부터 문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정부, 여당은 사태의 정당한 수습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썼다. 힘없는 말단 관리들을 징계하고 유가족과의 만남을 거부했으며 성난 민심의 물음에는 침묵했다. 당시 여당은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에 이 위원회의 설립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을 위원으로 추천했고, 조사기간 내내 방해로 일관했다. (그들은 지금도 그러고 있다.)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세월호 진상 규명의 노력은 여전히 더디고 험난하다.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되던 날, 그 당의 주호영 의원은 세월호 참사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고 말했다. 선박이 항해 중 침몰했으니 교통사고가 맞고, 그도 그렇게 말한 맥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발언이 공분을 자아낸 이유는, 남에게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보여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인 연민을 결여했기 때문이다. 자식과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이들의 호소와 작은 단서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진 태도가 문제였다. 그런 태도가 이후의 수습과정과 진상조사에 대한 불신과 냉소, 그리고 수많은 음모이론과 의심으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냉혈한들의 모진 언사는 금방 전염되었다. 일단의 젊은이들은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들의 텐트 앞에서 이른바 폭식투쟁을 했다. 자식의 시체 장사를 하느냐고 말하는 인면수심을 가진 자들뿐 아니라 점잖게 “이젠 좀 그만하지” 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많다. 졸지에 자식을 잃고 원치 않는 투사가 되어야 했던 장삼이사들에게 과연 무엇이 더 험한 말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돈을 바라고 자식을 죽였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아무 이유 없이 애도의 시간에 투쟁을 한단 말인가.

기레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참사 당시의 부실하고도 악의적인 보도로 유행하게 된 말이 이제는 상용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땅의 대다수 언론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부끄러움을 잃었다. 이제 우리 언론은 진영을 떠나 권력과 자본에 굴종하고 사실 왜곡과 편향적 보도를 서슴지 않으며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것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나 종국에 누구를 탓할 것인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세월호 배지를 달고 다녔지만 결국 몰지각한 정치인, 모질어진 동료 시민들, 그리고 기레기까지 바꾸지 못한 것은 모두의 과오요 수치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이 불행해진다고 더 크게 외치지 못한 죄가 크다. 그렇게 7년이 지나도록 진정한 애도가 시작되지 못한 채 아직도 이 땅에는 슬픔과 분노의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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