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양설(兩舌)은 한입으로 두 말하는 이간질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며 서로 다른 말로 사이를 갈라놓음으로써 오해와 다툼이 일어나게 하는 나쁜 말이다.

이간질하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간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뒤늦게라도 이간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나마 서로 오해가 풀려 다행이다. 그렇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를 안은 채 관계가 영영 단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간의 상처는 평생 마음의 주름이 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이간책은 병법(兵法)으로까지 자주 활용된다. 삼국지에는 문경지우 간인 이각과 곽사를 이간질해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한 양표의 이간책이 유명하다. 동탁이 죽고 나자 이각과 곽사가 조정을 쥐락펴락하며 전횡을 일삼자 양표는 두 사람을 이간질해 싸우게 한 뒤 둘을 한꺼번에 제거하려는 이간계(離間計)를 도모했다.

양표는 아내를 시켜 곽사가 이각의 아내와 놀아난다고 꾸며 곽사 아내에게 계속 일렀다. 결국 이간질에 속은 곽사와 이각은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이간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다.

일상에서 이간질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일까? 가만히 보면 유형이 있다. 하나는 주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유독 관심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남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또 한 부류는 열등감을 자존심인 양 감추면서 시샘과 질투가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대화의 소재로 자주 올린다. 괜히 없는 사람의 이름을 들먹여 그에 관해 뭔가 듣고 싶어 하고 때론 궁금한 것을 집요하게 캐묻기도 한다. 새로운 사실을 하나라도 들으면 자신의 상상력까지 동원해 들은 이야기를 옮기고 싶어 안달한다. 이런 사람들이 이간질을 할 위험군이다. 말을 섞으면 안 될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는 한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이간질 또한 있기 마련이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저마다 이간하는 상황에 빠져들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원인부터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즉, 자리에 없는 사람에 관해서는 말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그런 자리는 어떻게든 피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말이 말을 부른다는 말처럼 남 말도 여러 번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남 말도 하게 된다. 또, 그런 자리가 잦아지면 자연히 자신의 말을 옮기는 사람도 나오고 흉보고 험담하는 남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결국 이간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이라 하여 ‘예가 아니면 들으려고 하지도 말고 말조차 건네지 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역시 열린 마음이다. 자신이나 상대에 관한 예상치 못한 안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혼자 마음에만 두지 말고 어떻게든 말하고 알아보아야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그런 말까지 할 수는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는 특히,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그때는 다소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말을 전하는 사람이나 상대방과 직접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차분히 그 말의 진위나 경위를 확인해 보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이다. 말이 사실이더라도 괜찮다. 그때는 충분한 설명이나 해명의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 이렇게 했을 때 비로소 더 이상의 오해와 곡해도 없고 후환 또한 따르지 않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양설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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