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봄비가 밤새 내립니다.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기 젖은 봄바람이 싱그럽습니다. 과연 훈풍(薰風)이군요. 봄비에 젖어 촉촉한 바람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도 참 오래간만의 일입니다. 4월의 봄바람이 생명을 살려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한편으로는 흔들려는 것과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들의 긴장도 느껴집니다. 아마 봄을 맞이하는 제 심사가 그런 모양입니다. 그런 양가적인 봄비 내리는 밤의 정서를 위로할 양으로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습니다. ‘머리말’을 읽는데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대목이 있어 화들짝 놀랍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작가가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던 상태에서 몇 해 동안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글쓰기에 몰두해서 생산해낸 필생의 역작입니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의 일입니다(출간은 마흔한 살 때입니다). 스물네 살 때 쓴, 작가로서 쓴 맛을 본, 『스티븐 케어리의 예술가적 기질』(미출간본)을 다시 보충해서 쓴 작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머리말’은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의 창작 동기를 설명하고 있는 동시에, 작가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일반론적인 해명도 겸하고 있는 글입니다. 오늘 제가 보는 봄비 오는 날의 풍경처럼, 싱그러운 훈풍의 향기가 그득한 글이어서 따로 옮겨서 보관합니다.


“그렇게 퇴짜를 맞고 나는 원고를 치워버렸다. 나는 다른 소설을 써서 출판했고 희곡들도 썼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극작가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남은 생을 드라마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그 결심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린 내 안의 어떤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했고, 수입이 좋았으며, 바빴다. 내 머릿속은 쓰고 싶은 희곡의 소재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성공이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다 가져다주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반발 본능 때문이었는지, 나는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자마자 다시 한 번 과거의 삶에 대한 무수한 기억들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 기억들은 어디든지 나를 쫓아다녔다. 잠을 잘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리허설을 할 때나, 파티장에서나, 얼마나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니는지 이윽고 그것들이 엄청난 짐으로 여겨져 마침내 나는 그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죄다 종이 위에 적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몇 해 동안 쫓기듯이 드라마만을 써왔기 때문에 나는 소설의 폭넓은 자유가 그리웠다. 나는 내 마음속의 책이 긴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글을 쓰는 동안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니저들이 계약을 하자고 열심히 제안하였지만 다 뿌리치고 일시적으로 무대를 떠났다. 서른일곱 살 때였다.”[서머싯 몸(송무), 『인간의 굴레에서』 머리말 중에서]


『인간의 굴레에서』는 출간된 직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몇 년 뒤, 미국의 저명 작가들의 주목을 끌게 됨으로써 다시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름 있는 작가들이 이 작품을 신문과 잡지에 계속적으로 언급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됩니다. 대중들이 놓친 것을 작가들이 다시 불러 세워서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무척 낙담했지만, 어디에선가 내 작품을 받아주었더라면 내가 너무 젊어 적절히 다룰 줄 몰랐던 하나의 주제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몸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봄바람의 따스함을 기다리지 못하고 섣불리 잎을 피워낸 가지는 생명의 열락을 충분하게 누리지 못합니다. 자기 안의 것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봄비의 애무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즐기거나, 아니면 봄비의 유혹에 끝까지 저항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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