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배우 윤여정 씨가 화제다. 신문, 방송, 케이블, 유투브 가릴 것 없이 윤여정 특집을 꾸미느라 법석이다. 일부 영화관은 윤여정의 데뷔작 ‘화녀(1971)’를 다시 스크린에 걸었다. 그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고(故) 김기영 감독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도 다음달 7일부터 서울 시네마테크 KOFA에서 ‘윤여정 특별전: 도전의 여정을 걷다’를 연다. 김기영 감독 작품 ‘충녀’를 비롯해 ‘바람난 가족’ ‘여배우들’ ‘하녀’ 그리고 ‘미나리’까지 윤여정의 출연작 17편을 상영한다. KBS도 29일 다큐멘터리 ‘다큐 인사이드’를 통해 윤여정의 55년 배우 인생을 조명했다. 모교인 이화여고는 그에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 수상을 결정했다.

윤여정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66만 건의 트윗을 기록했다. 오스카 작품상을 능가하는 횟수다. 이쯤 되면 ‘윤여정 신드롬’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한국인 최초의 오스카’에 열광하는 건 아니다. 오스카가 기폭제가 된 건 맞지만 ‘윤여정 신드롬’의 진짜 배경은 따로 있다. 영화 ‘미나리’의 묵직한 감동을 홀로 담아낸 연기, 그리고 시크하고 재치 있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내는 ‘진심 화법’에 매료됐다.

수상 소감 가운데 호응이 가장 뜨거웠던 대목은 두 아들 얘기다. 오스카를 받게 된 건 나가서 일하라고 등 떠민 두 아들 덕분이라고, 그래서 두 아들을 향해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이 상을 탔다”고 외치는 부분에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가 달렸다. 가족을 일해 열심히 일하고, 그 열매를 가족과 나누는 소박한 즐거움, 이게 영화 ‘미나리’의 또 다른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윤여정 같은 분이 바로 ‘달인(達人)’이다. 과거 ‘달인’이란 제목을 단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각 분야에서 나름의 경지를 개척한 사람들을 모셨다.

달인은 예로부터 선창(宣暢)된 개념이다. 사리에 두루 통한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다. 『춘추(春秋) 좌전(左傳)』에 “성인은 밝은 덕을 지닌 자다. 만일 현세에 없다면 언젠가 반드시 달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한다.

활달하고 도량이 크다는 의미도 있다. 한(漢) 가이(賈誼)는 『붕조부(鵬鳥賦)』에서 “달인은 넓고 크게 본다.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공자(孔子)의 달인은 좀 다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은 “어진 자는 자기를 일으키기 전에 남을 먼저 세우며, 자기가 깨닫기 전에 남을 먼저 깨닫게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고 말한다. “평생 몸에 지니고 실천해야 할 말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자공(子貢)의 질문에 공자는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답한 뒤에 한 말이다. 앞에서 ‘소극적 삼가 혹은 회피’를 말했다면 뒷 답변은 ‘적극적 도움’을 강조한 셈이다. 공자는 달(達)을 형용사 아닌 동사로, 그래서 인(人)을 꾸밈 받는 말이 아닌 목적어로 썼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를 통해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우고 깨닫게 하는, ‘공자의 달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내년 초 치러질 대선과 지방선거가 벌써부터 우리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강호의 고수들이 총출동할 태세다.

선거에 나설 분들에게 고(告)한다. 그냥 달인은 사절이다. 능력 있는 자가 우리를 망치는 걸 무수히 봤으니까. 국민들은 ‘공자의 달인’을 원한다. ‘미나리’를 품을 자, 국민 앞에 서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