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조선 영조 때 호조 아전 김수팽이란 청백리가 있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호조의 서리로 청렴결백하게 살아서 많은 일화를 남긴 분이다.

그의 아우도 혜민서의 아전이었는데, 부인이 살림에 보태려고 부업으로 염색하는 일을 했다. 김수팽이 아우의 집에 들렀다가 뜰의 항아리마다 가득 담긴 물감과 줄에 늘려있는 천들을 보고 물었다. “저게 무엇에 쓰는 것이냐?” “집사람이 물감 들이는 일을 합니다.” 김수팽이 항아리를 발로 차며 아우를 꾸짖었다. “우리 형제가 모두 녹봉을 받아 구차하지 않게 사는데 이런 일까지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장차 무슨 일을 하란 말이냐?” 남의 것을 빼앗은 것도 아니요, 자신의 노력으로 더 잘 살기 위해 벌인 부업인데도 남을 배려하지 않았다고 나무란 것이다.

한 번은 업무 처리 중 판서에게 결재를 받을 일이 있었다. 판서대감이 자택에서 쉬고 있을 때라 집으로 찾아갔더니 판서는 마침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결재를 청했지만 판서는 머리만 끄덕이고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루로 뛰어 올라가 바둑판을 쓸어버리고 뜰로 내려와 아뢰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급한 업무이니 결재해 주시고 나를 파면시키고 다른 아전을 임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하직하고 나와 버리니 판서가 내려와 그를 붙들고 사과하며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괘심죄는 묻지 않았다.

하루는 김수팽이 지키던 호조의 창고에 대감마님이 점검을 나왔다. 여러 가지 포목과 중요한 물품들을 점고하다가 은으로 된 바둑알을 보고 한통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곧 시집가는 딸에게 노리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때 김수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 바둑돌을 다섯 통이나 주머니에 넣으려 하니 대감이 깜짝 놀라며 “뭐하는 짓이냐?”하고 물으니 “대감은 딸이 한 분이지만 저는 딸이 다섯이나 되니 다섯 통이 필요합니다.”라고 답하여 대감 스스로 바둑알을 도로 내놓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임금의 명령도 거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임금이 급한 일이 있었는지 밤에 내시에게 명해 호조에 가서 돈 십만 냥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고 마침 김수팽이 숙직이었다. 궁궐 문이 닫히면 금전이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것이 법이었기에 내시의 말을 듣지 않자 내시가 화를 내며 대들었다. 아무리 어명이라지만 일개 서리가 호조의 돈을 마음대로 내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임금이 보낸 내시와 싸울 수 없어 참판과 판서에게 결재를 받아 돈을 지출하겠다며 절차를 다 거친 뒤 아침에야 돈을 내주었다. 임금이 내시로부터 사연을 듣고 나무라지 않고 기특하게 여겨 남다른 은총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청렴도의 기준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사불은 재임 중에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으며,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삼거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거절,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거절, 경조사가 있을 때 부조 거절이다. 풍기 군수 윤석보는 아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비단을 팔아 채소밭을 산 것을 알고는 사표를 냈다고 한다. 한동안 인사청문회에서 하나같이 위장 전입, 세금탈루, 병역 면제, 논문 표절이 불거지는 것을 보았다. LH와 연관된 땅 투기에 LH 직원들, 청와대,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등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귀가 따가웠다. 내 마음부터 비워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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