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명품은 글자 그대로 뛰어난 물건을 뜻한다. 요컨대 향수를 간직한 스토리와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 그리고 은연중 발산하는 사회적 지위가 존재의 가치다. 내공이 쌓이듯 오랜 세월 각별한 이미지가 축적돼 그 반열에 오른다.

이는 신분 제도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위 권력과 재력을 지닌 특정인이 사용한 물품이 일종의 럭셔리. 그 역사가 유구하다. 기원전 800년 무렵 아시리아 제국 기록에도 나온다. 호랑이 모피 8000장을 인도에서 수입했다는 내용. 오늘날 버버리 외투 무역에 비견된다.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에 전래된 중국의 비단도 당대 귀물이다.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유력자 카이사르는 비단옷 차림으로 극장에 가서 이목을 끌었고, 다른 귀족들도 그를 따랐다. 주단 수요가 급증하고 사치 풍조가 만연하자 티베리우스 황제는 이를 금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비단 제조법 유출을 엄중히 단속했다. 요즘으로 치면 산업 기밀에 대한 철저한 보안 조치를 취했다. 이것이 로마에 알려진 것은 600년이 지난 때였다. 인도 어디쯤 있는 ‘세린다’에서 신부가 지팡이 속에 누에알을 가져왔다. 지금 생각해도 대국의 걸물 간수 열정이 돋보인다.

명품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고 말한다. 이를 베블런 효과라 부른다. 우월감과 허영심이 사치품 소비를 증가시키는 셈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이란 책에서 주장한 과시적 소비는 유명한 경제 용어가 됐다. 남들과 차별화한 상류층 욕망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이른다.

명품이 고가로 거래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최고급 재료를 엄선해 제작한다. 예컨대 루이비통은 북유럽산 가죽을 선호한다. 서늘한 날씨로 해충이 적고 벌레에 물려 상처가 생길 확률이 줄어 가죽의 질이 높은 탓이다.

또한 최상의 애프터서비스에다가 최고의 품질을 추구한다. 장인 정신을 중시하면서 디테일이 섬세하다. 다큐멘터리 ‘시네 샤넬’에서 보듯이, 브랜드 샤넬 옷의 맵시에 쏟는 정성은 명품의 값어치를 일깨운다. 낱낱이 장인의 손길이 스몄다.

중국 황제는 황실의 하사품으로 신하들 마음을 잡았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한나라 시대 칠기 술잔을 보면 까다로운 검사 공정이 실감난다. 아래쪽 굽에는 67자의 한자가 나열됐다. 그 생산에 관여한 기술자 여섯과 감독관 일곱의 실명이 적혔다. 샤넬 못잖은 품질 관리가 놀랍다.

영화 ‘로마의 휴일’은 완전 무명인 오드리 헵번을 일약 신데렐라로 만든 작품. 공주 역할을 맡은 그녀는 발레 슈즈 모양 플랫 구두를 신었다. 바로 페라가모가 특별 제조한 신발. 사람들이 추억하는 이런 비화가 걸물의 매력이기도 하다.

헵번은 여전히 패션계 아이콘. ‘헵번스타일’은 아직도 통용된다. 미국의 보석 브랜드 티파니가 유럽 제품과 경쟁이 가능했던 점도 그녀의 공로가 크다. 현재는 루이비통을 가진 프랑스 소유가 됐지만 말이다. 링컨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목걸이와 팔찌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티파니에서 구입한 것이다.

지난 서울과 부산의 재보궐 선거는 젠더 문제로 불거졌다. 한데 어느 후보의 페라가모 구두로 이슈가 변질되는 정치적 속성의 민낯을 보였다. 상호 간의 공방은 진실 확인이 어려우나 어쨌든 명품은 잘못이 없다. 그냥 찬연히 빛날 뿐이다. 경계할 것은 인간의 탐욕이 아닐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