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언여기인(言如其人)이라고 했다.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이다. 말에는 사람의 성격이나 경험, 학식이나 가치관, 관심사는 물론 습관이나 나이까지도 담겨져 있다.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몇 마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에 대해 상당 부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뽑고 택할 때는 직접 말을 나눠보는 절차가 꼭 있다. 아무리 복잡한 시험이나 검증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결국 면접을 통해서 한다. 말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의 모습이고 마음의 모양이다. 말은 또한 생각과 마음이 소리로 나타난 것(言爲心聲)이어서 말을 나눠보면 그 사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속을 감추고 겉모습을 꾸며도 말은 결국 실체를 말한다.

나쁜 마음과 이기심 가득한 사람의 말이 끝까지 고울 수 없고 매사 원망과 질시,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의 말은 험담과 냉소와 남 탓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양과 덕을 쌓은 사람의 말은 언제 들어도 거칠 거나 험하지 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의 말은 어디서든 부드럽다.

물론 말이 마음이나 생각과 다르고 서로 틀릴 때도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속이고 감추기 때문이다. 이것이 악의적일 때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하고 이런 사람을 위선자 또는 이중인격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길지 않다. 어떻게든 드러나고 만다. 말이란 마음의 거울과 같아서 감추려고 해도 진면목이 고스란히 비춰지기 마련이다.

어디서든 나서기 좋아하고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 때문에 자주 낭패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외모를 꾸미고 치장을 해도 말은 꾸미기가 어려워 한두 마디 말로 금방 내면의 무지나 천박함이 고개를 내밀면서 결국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노자가 말한 ‘피갈회옥’(被褐懷玉)처럼 사람의 품격이나 교양, 학식도 마찬가지로 말속에는 그 빛이 묻어있다. ‘덕망 있는 선비는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아 허름한 겉옷을 입고 있어도 가슴에 옥을 품고 있음’이 말 속에는 드러난다. 때론 남루한 모습을 한 사람도 한두 마디 말 속에 강한 기품이나 내공이 느껴질 때가 바로 그것이다.

말이란 이렇듯 더 없이 신묘하다. 논어의 마지막 구절도 바로 말이다. ‘부지언 무이지인야’(不知言 無以知人也)라고 하여 ‘말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입신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이 ‘군자는 말을 알아야 사람을 바로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말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말의 중요성을 뜻함이다. 즉, 삶에 있어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과 무게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막중한 것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신중해야 하고 또한 경청을 통해 상대방의 깊은 속내와 내면까지도 정확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말을 통해 사람을 간파할 수 있는 통찰력까지 길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말이 곧 사람을 규정하고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세계관, 가치관 등 모든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귀중하다.

얼굴이나 겉모습을 치장할 것이 아니라 말을 더 풍성하게 하고 말을 더 깊게 채우는 것이 먼저다! 말을 더 맑게 하고 말을 더 정갈하게 다듬는 것이 훨씬 더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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