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줄어 불안감 커진 가정…정신건강 '비틀'

월별 정신과 환자 수 증감율 및 연령대별 정신질환 환자 수 증감률. 보험연구원 제공

<글 싣는 순서>
△프롤로그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사랑이 꽃피는 착한 바이러스
△집콕 부작용…사회의 뿌리 흔들
△'보이지 않는 불편'  더 가혹한 세상
△요행·사행성 쫓는 불확실성 사회
△일상회복 ‘희망 꿈’은 계속 된다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A씨는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호소했다. 행사업계 종사자인 그는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지방행사를 다니며 가족을 보살피는 가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동안 생활고와 함께 가정불화를 겪을 정도로 극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A씨는 “하루는 TV 방송을 보는데, 갑자기 서글퍼졌다”며 “우리는 작은 행사조차 없어 생활고를 겪는데, 방송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5명 이상 모여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하니 방역수칙이나 대책이라는 이름 아래 시들어가는 우리의 상황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고 한탄했다. 또 “가정을 보살피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아 노력하고 있지만, 아내와 다투는 일도 잦아졌고 아이랑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있다”며 “우울한 기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우울감, 스트레스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비대면 문화 확산과 함께 외출을 자제하는 ‘집콕’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정불화나 폭력, 도박 등과 같은 부작용마저 나타난다.

5일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상담 가운데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으로 억압·통제하는 가정폭력 행위가 ‘성폭력’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초기상담 1143건 가운데서도 가정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41.6%로 절반에 달했고,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전년 대비 약 1000건 증가했다.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는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이 어려운 문제, 코로나19 장기화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 등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연계성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현재 피해자들이 상담 이후 쉼터에 입소하는 과정에서 하루 동안 잠시 머물 곳이 없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가정폭력은 코로나19 발생 전부터 사회적 문제였고, 펜데믹 이후 향후 어떤 현상을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안전 가옥과 같은 보금자리를 지자체에서 마련해주는 등 각종 방안을 논의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외활동이 위축되면서 도박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 또한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2019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대구센터에서 이뤄진 상담 건수는 740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106건으로 49.4% 증가했다. 올해 들어 이뤄진 상담 건수는 940건으로, 2019년 전체 실적을 불과 1분기 만에 넘어섰다.

도박문제관리센터의 치유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2030 세대’다. 지난해 전국 치유서비스 이용자 1만5766명 가운데 20대가 5462명(34.6%)으로 가장 많았고, 30대도 5199명(32.9%) 비슷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어 40대 2420명(15.3%), 10대 1424명(9.0%), 50대 890명(5.6%), 60대 이상 371명(2.3%)으로 뒤를 이었다. 도박 치유서비스 이용자 10명 중 8명 이상이 경제활동 주축인 20∼40대인 셈이다.

대구센터 관계자는 “10대 아이들의 경우 코로나19로 학교와 학원을 가는 기간이 줄면서 도박에 대한 1차 접촉이 줄은 부분도 있고, 교실에서 도박 행위를 목격한 학교 측에서 치유서비스 의뢰를 하기도 하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이 같은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대면 속에서도 도박을 접하는 사례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완화되면 숨어 있던 치료 대상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한 지난해 대구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접수된 상담전화는 5만4180건이다. 2019년 이뤄진 상담 3만6141건보다 1만8000건 이상 급증했다. 올해는 4개월 동안 1만2612건이 접수됐는데, 일부 지역은 지난 4월 한 달 사이 상담이 급증하기도 했다.

동구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난 1월 817건, 2월 862건, 3월 748건의 상담이 진행됐으나 4월에는 1714건으로 집계됐다. 평소 접수되는 상담 수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다만, 전문가는 코로나19 사태로 급증했던 상담 건수는 다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분위기라며 일부 통계가 증가한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대구에서 심리치료를 맡았던 박연주 전문상담사는 “지난해만큼 상담이 증가하는 현상은 최근에 없었다”며 “오히려 경제적으로 위축되다 보니 긴축 차원에서 상담비를 아끼려고 상담을 받지 않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상담의 초점이 자녀에게서 부부 또는 가족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외부활동 위축으로 가정에 쌓였던 문제들이 최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박연주 상담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교우 관계나 행동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에게 상담을 권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020년도에는 학교를 가지 않으니까 부모들이 자녀가 어떤 문제를 가진지 잘 몰라 상담을 많이 했다”며 “최근에는 부부나 가족 관계에 대한 상담이 늘고 있는데, 가족 안에서 역동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혼자 견디기 힘들어 마지막으로 상담실을 찾는 사례가 많은데, 상담을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상담사를 만나 문제만이라도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며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 내담자의 용기가 많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는데, 상담실은 정신과가 아니어서 기록이 남지 않은 이점이 있는 곳이다. 치료사를 믿고 찾아 자신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