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버들(편집기자)

핀란드의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은 한 해 동안 발생하는 자살이 살인사건의 15배인 1천500여 건에 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우울한 나라,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책 내용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죽어야만 하는, 혹은 죽을 수밖에 없는 각각의 이유를 가진 33명의 핀란드인이 자살여행을 감행한다. 그들의 모임명은 '죽음을 향한 무명 인사들의 모임'. 이 죽도록 죽고 싶은 무명 인사들의 생애 마지막 소원은 '멋진 곳에서 외롭지 않게 죽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격론 끝에 33명이 버스를 탄 채로 계곡 아래로 추락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명당'을 찾아 떠난다.

적당한 장소를 찾았던 사람들은 자살의 순간에 머뭇거린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여기가 아니야'. 그렇게 유럽 각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서 몇몇은 도중에 생각을 바꾸어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몇몇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스페인의 한 곶(串)에 다다른다. 유럽의 북쪽에서 남쪽 끄트머리까지 온 자살희망자들은 그 곳에서 '죽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죽음을 향한 무명 인사들의 모임'은 '삶을 향해서' 해산하게 된다.

파실린나는 이 작품을 통해 2004년 '유럽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책의 영향으로 유럽 전역에 즐거운 자살 희망자들의 모임들이 생겨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8일 정선에서 남녀 4명이 함께 목숨을 끊은 것을 시작으로 강원도 일대에서 4월 한 달 간 21명이 동반자살을 시도해 총 14명이 사망했다. 강원도 동반자살은 신드롬적 성격이 짙다.

그들은 왜 마지막 장소로 강원도를, 그리고 동반자살이란 방법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생애 마지막에 '멋진 곳에서, 두렵지 않게 죽고 싶다'라는 열망이 파실린나 소설의 인물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혼자 죽는 것이 두려워 동반자를 만들고 강원도까지 가서 죽음을 공모했다는 것은 뒤집어 해석해 보면 또 그만큼 죽음 앞에서 망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인 한일장신대 김충렬 박사는 강원도 동반자살을 운명론적 자살로 본다. 운명론적 자살이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때 자살을 분출구로 생각하는 현상이다. 더욱이 개인의 심리가 심각하게 약화된 상태에서 극도의 무력감을 깨닫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의 힘든 상황을 도저히 바꿔낼 수 없다는 무력감은 자기 자신을 연속적으로 지키거나 보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보통의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무력감의 강도가 심해진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희망자들은 고통의 근원이 된 번잡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찾다 강원도라는 국토의 가장 청정지역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여행을 꿈꾸듯이, 어쩌면 그들도 각박한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희망한다. 파실린나의 '자살여행'이 우리 현실에서도 일어나길. 꽃 같은 목숨들이 여행을 통해서 '살자'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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