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버들(편집기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곤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1964년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비무장 지대를 순찰하던 25살의 젊은 장교가 우거진 잡초 속에서 이끼가 검푸르게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했다. 그 돌무덤 위에는 십자가 목비가 비바람에 쓸려 쓰러질 듯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무덤 주인의 생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녹슨 철모가 뒹굴고 있었다. 장교는 제대 후 동양방송 PD로 일하게 되고, 어느 날 한 작곡가의 부탁으로 돌무덤을 발견한 당시를 회상하며 작사를 하게 된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국민가곡 '비목'은 1968년에 이렇게 탄생했다.

'비목'은 6월이 되면 전국 곳곳의 6·25전사자 추모위령제에서 울려 퍼지지만, 이름 모를 골짜기에 비목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사한 영령은 13만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분명 역사 속에 있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2000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호국용사 3천여 명의 유해가 발견됐다. 남은 유해는 12만7천여 명.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군다나 유해발굴 작업이 대부분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에 의존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은 더욱 촉박하다. 전쟁이 발발된 지 59년. 전사자 매장지를 기억하는 이들의 남은 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

6·25전쟁 호국 영령들을 기려야 하는 당위성은 단순히 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회적·애국적 이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하지도 않았던 전쟁에, 앞날이 구만리인 청춘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불행한 운명에 대한 연민에도 있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란 악마가 나를 비껴갔기 때문에, 지금을 살고 있다는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러한 인간적인 양심과 예의가 호국영령들에 감사하고 기억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을 만인이 적인 시대라고 한다. 나 아니면 모두가 적인 험한 시절이다. 진보와 보수, 기업과 노동자가 자신들의 이기만 관철시키려한다. 말뿐인 화합, 구호뿐인 소통이 넘친다. 우리 민족에 각골지통(刻骨之痛)의 상처를 남겼던 좌우 대립의 어리석은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적지에 나가 싸운 호국영령들이 결코 이런 훗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죽어 그들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6·25전쟁 59주년인 오늘. 가슴 속에 영원히 썩지 않을 비목, 슬픔의 나무 비목(悲木) 하나씩을 세우자. 13만 고혼들이, 현재를 살고 있는 5천만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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