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나라에 화자(華子)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중년에 건망증이 생겨 아침에 얻은 것을 저녁에 잊고 저녁에 준 것을 아침이면 잊고 말았다. 길에 나서면 가는 곳을 잊었고 방에서는 앉는 것을 잊기도 했다. 조금 후에는 조금전의 일을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온 집안이 이를 걱정해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쳐보아도 점괘가 나오지 않았다. 무당을 찾아가 빌어도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고 의사를 찾아가 고쳐보려고도 했으나 허사였다.
이때 노(魯)나라의 한 선비가 자청해서 이병을 고치겠다고 나섰다. “병은 나을 수 있습니다. 환자와 내가 독방에서 일주일만 살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에 과연 화자는 병이 모두 나았다. 그러나 기억을 되살린 화자는 느닷없이 아내를 내쫓고 자식들에게 벌을 주었다. 심지어 창을 들고 선비를 내몰았다. 송나라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이랬다. “전에 내가 모든 것을 잊고 있을 때는 하늘과 땅이 있는지 없는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갑자기 모든 것을 알게되니 수십년 동안 쌓여온 것은 물론이고 얻은 것과 잃은 것, 슬픈 일과 즐거운 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모두 실타래처럼 줄줄이 생각납니다. 앞으로도 존재와 사라짐, 얻음과 잃음, 슬픔과 즐거움, 좋아함과 싫어함의 문제 때문에 나의 마음이 이처럼 어지럽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잠깐 사이의 망각이라도 다시 얻을 수는 없을까요?”
이처럼 기억에서 모든 행복과 즐거움이 나오지만 증오와 원한도 역시 기억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기억해야할 일을 잊고, 잊어야 할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항상 괴롭고 기억해야할 일을 기억하고, 잊어야 할 일을 잊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다. 망각은 선녀처럼 부드럽다고 한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심지어 증오조차도 사랑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 망각이라고 했다. 누가 미워질 때나 불행하다고 느낄 때 망각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싶다.
대구지하철 참사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을 당시는 모두가 법석을 떨었다. 공통된 감정에 휩싸였다. (시민들은 기억을)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이 사실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다. 당국도 이 사건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도 그랬다. 잊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는 이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렇다’고 법석을 떨었다. 심지어 일부 시민들은 “그만하지”라는 말도 한다. “지겹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구시 당국까지 이 사건의 조기종결을 서두르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현수막을 내거는 등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하철 참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다. 차라리 유가족들은 하루빨리 슬픔을 잊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잊어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기 싫은 것을 하루라도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 좋다. 사랑하는 가족을 졸지에 잃어버린 원통함을 참기는 어렵다. 세월이 흐를수록 당국이 원망스럽고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글프기 짝이없다. 그러나 삶을 여기에 묻어 버릴수는 없다. (유족들은 망각을) 반면에 우리시민들은 물론이고 당국은 오히려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사건을 잊어버릴 때 오는 또다른 위험요소를 상기하자. 더욱이 이 사건의 진실이 덮어져서도 결코 안된다. 기억해야할 일을 잊고, 잊어야 할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항상 괴롭고, 기억해야할 일을 기억하고 잊어야 할 일을 잊는 사람은 항상 행복하다는 진리를 이 기회에 터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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