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벼른 가위가 귀를 벤다목을 감아 내린 천에 뚝뚝 떨어지는 시간들삭 삭 규칙적으로 귀 베는 소리남자의 시간을 쓸어 모아 쓰레기통에 넣는 이발사 물조리질을 하며 털어낸 값싼 스킨 냄새가그의 베인 상처를 소독할 때왜인지 모르게 쏟아지는 더 깊은 졸음골목을 배회하던 시간이 덩달아 같이 잠든다 거꾸로 가는 거울 속 달력을 보면서다시 이발소에 올 날을 택일하고베인 귀의 값을 기록하려는데2월 29일이 없다 귀 속에서 워낭소리 들리면 화개장이 서고길 끝에 잇대어 난 또 다른 길 끝에서플라타너스의 수다가 옹기 위로 하르르 내려앉을 때계산에 둔감
저 붉은 눈물 안고 말없이 지는 낙엽한 치도 후회 없는 희열의 살점으로한 보름 다 벗은 채로 지며 울다 울며 지다억새가 흔들려도 별들이 쏟아져도아침서 저녁까지 이우는 눈빛으로속의 말 바람에 섞어 그 세월이 고인 눈물누구나 벗을 길이 어딘지를 알면서도모난 돌 틈에 서서 그 한 생 빌려주고가을 산?잠시 비우는 그 이유가 있었구나말없이 앉은 채로 벗은 몸을?썩혀가며가진 것 다 내리다 허허롭게 지워보다외로움 길들이면서?살 끝 지진 바람 운다
뒤란, 항아리에 고인 빗물이 댓잎을 담고 더 파래진다납작해진 굽이 몇 번의 쌓인 눈을 맞고도발효된 둥긂을 지탱하고 있다구실이 사라졌어도 침샘을 자극하는 웅크린 존재가짭조름한 오래된 잔상이 점점 더 차갑게 번져온다금방이라도 조물조물한 한 끼가 차려질 듯시간의 각도가 바람을 덧대고 발자국 소리를 여 닫는다쉼 없던 너덧 자식 조잘대는 온기를 기다리는 걸까애물의 시간이 까치발을 들고그림자 진 거리를 자꾸만 허락 없이 훑어본다한세월, 살점 떨어져나간 귀퉁이에허연 초승달이 감쪽같이 대신 담긴다발 길 멈춘 지 오래대숲, 그늘진 어둠속에서무덤 같
살얼음 얇게 덮인 실개천 틈 사이로세상 밖 염탐하는 물소리 흘러갈 때때 이른 실버들 잎이멍울멍울 터뜨린다그 옆에 민들레 가족 홀씨를 퍼트리고멀거니 그 상황을 바라보는 중년 사내마침표 찍지 못하고들어앉힌 생의 무게환복한 그 사내가 목련 꽃그늘 아래각질로 덕지덕지 쌓인 욕심 털어내는모든 게 빗나간 오후눈물 같은 봄이 간다
뒷굽이 닳은 구두의 안색이 편안합니다그가 떠난 후 오롯이 현관 구석에서 남은 열기와따스했던 순간을 추억한 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번쩍번쩍한 구두는 사내의 두텁고 갈라진 뒤꿈치와 데면데면합니다그저 낡았지만 가볍고편안하게 감싸주는 수더분한 그가 좋습니다하이든의 종달새 마냥총총총상쾌한 아침이 반갑습니다거리로 나서면 우측으로 통通합니다만나는 사람들의 말이 말馬이 되어 또각또각 사라지지 않을 지층을 형성하는데 그 끝이 페가수스*로 내달립니다길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의 눈길을 피해지난, 지지난 계절에 뿌려진 씨앗이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
바다로부터 추방된 물고기들이사형선고를 받고 구속 중인 수족관불특정 순서에 따라하루에도 몇 번씩도마에서 참수형이 집행되는 곳뜰채에 포획된 감성돔 한 마리가휘둥그레 눈을 뜬 채허공 속을 파닥인다쓱쓱 횟집 주인이 칼 가는 소리에억울한 누명을 호소하듯입을 뻐끔거리는 항변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이 채 끝나기 전칼등으로 내리꽂힌 정수리에서턱- 하는둔탁한 소리가 난다횟감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비늘로 무장한 가죽을 벗길 때마다소스라치게 전율하는저 몸짓!시퍼런 칼날이 회백색 배를 갈라 내장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니자신은 무고인 양좌우로 꼬리치는 지
진한 커피로 식곤증을 몰아낸다. 아이들이 하품하고 졸음에 겨워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무라고 다그친다고 해서 눈동자가 말똥해지는 시간이 아니다. 나른한 오후 2시 타임,“쾅”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포 소리 같이 우렁차지만 짧은,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다 정면으로 부딪칠 때, 몇백 년 된 나무가 한순간에 쓰러질 때나 나는 소리였다. 덜덜덜 책상이 마구 흔들렸다.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지진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움직이지 마”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책상을 붙들었다. 꽉 잡은 손에도 아랑곳없이 책상은
디딤돌은 내 유년에 집안을 출입했던 들머리다. 살면서 수많은 디딤돌을 오르내렸던 고향집 디딤돌이 유독 기억에 떠오른 것은 왜일까. 산골아이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서 다짐했던 결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과 마당의 경계에 놓인 디딤돌에서서 나는 맹세를 했다. 대를 이어 내려온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성공을 해 돌아오겠다고. 그 결기를 묻어 놓았던 디딤돌이요, 힘찬 출발을 외쳤던 디딤돌이다.디딤돌은 낮은데서 높은 곳으로 발을 딛고서야 올라갈 수 있는 물상이다. 발을 디디고 오르내리도록 마루 아래나 뜰에 놓은 돌이나, 디디고 다닐 수 있도
“언니 담배 꽃 본적 있어요? 너무 예뻐요.”휴대폰 속의 사진을 보여주며 s가 묻는다. 그 속에는 부케를 연상시키는 한 다발의 소보록한 분홍색 꽃이 화면가득 피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꽃이다. 행운과 축복의 상징인 부케로는 결코 쓰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아는 내 몸이 부르르 떨린다. 내가 휘두른 무딘 낫 끝에서도 맥없이 스러지던 단아한 꽃송이가 눈앞을 스쳐갔기 때문이다.“꽃이야 다 이쁘지.”심드렁한 내 대답에 무안한지 그녀는 딴 것으로 화재를 돌렸지만 나는 이미 한 쪽으로 밀쳐 두었던 과거를 내 앞에 당겨 놓았다.내가 갓
늘 뭔가가, 어떤 것 하나가 부족해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매일 새벽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빗자루를 들고 갔던 뒤안이 그런 공간이었다. 엄마의 낡은 냄새가 나는 그곳.눈만 뜨면 뒤안을 쓸어야 했다. 엄마는 잠이 덜 깬 우리에게 빗자루를 쥐어 주며 마당을 쓸라고 했다. 동생은 앞마당을, 나는 뒷마당을 쓸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앞마당만 쓸면 될텐데 굳이 뒤안을 왜 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투덜대면서도 엄마의 말을 거역하지는 않았다.뒤안은 대체로 깔끔했다. 내가 부지런히 쓸기도 했지만 서까래가 담장 바로 앞까지 이어져
똥을 뺀 멸치의 배가 홀쭉하다. 잘 건조된 듯하지만 바다에서 한 생을 보낸 몸에서는 채 마르지 않은 비릿한 바다의 흔적이 묻어난다.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바삭하게 습기를 날린 멸치와 표고, 무, 다시마와 함께 대파는 뿌리 채 한 솥에 넣고 푸욱 우려낸다. 하얀 김서리에 묻어나는 멸치 다시물냄새에 굳게 닫혔던 마음이 빗장을 연다.남해 통영에서 멸치 두 박스가 택배로 왔다. 육수용과 죽방멸치다. 뒤죽박죽 서로 엉켜서 담긴 육수용 멸치와는 달리 죽방멸치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이 질서 정연하다. 마치 반듯한 선비의 자세를 보는 듯하다
큰 딸이 만들어 온 청첩장에 남편의 이름이 없었다. 양친의 이름 뒤에 소롯이 달린 사위와는 달리 홀어미 뒤에 달랑거리는 이름. 순간 아이가 조금 추워 보였다. 내가 오랜 시간 부여잡고 버틴 분투에서 명백하게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간 부서진 틀의 모서리를 붙들고 휘청거릴 때마다 때론 불안하게, 때론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하는, “이제 그만 손을 떼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이었다. 비로소, 불안했으나 고집스럽게 이어 붙여 놓은 틀이 완전히 부서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자꾸 부서지고 틀어지는 아귀를 맞추고
자동차가 지중해 모텔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남자는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남자가 조수석에 여자를 안아 일으켰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수미는 떼쓰는 아이처럼 남자 품을 파고들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주차장 뒷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왔다. 출입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하이힐 소리가 로비를 지나 2층 계단으로 이어지다 멀어졌다. 시골집에 다녀온다던 수미가 아들 벌 되는 남자와 부둥켜안고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혼자된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남자를 만나
소설을 왜 쓰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매번 떨어지면서 놓지 않는 것은 집착이라고 했다. 나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정말 나는 왜 쓰는 걸까. 유려한 문장을 향한 갈망에 갇혀 힘겨워하면서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인정받지 못해 절망하면서도 자판을 두드렸다. 나는 소설 말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새벽의 긴 시간 동안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 것도 쓰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터득한 것이 하나 있다. 소설과 만나는 지난한 시간들이 나를 용서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얽힌 상처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지금 내가 눈을 찌르는 LED 실내등을 꺼 두고 드러누운 이곳은 내 집이다. 이곳에는 안전장치가 허술해 위험이 상존한다. 미심쩍은 화재경보기는 있으나 스프링클러가 없는 식이다. 한날은 어느 방에선가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해 줄기차게 울어 댔다. 간혹 벌어지는 일인데 덜컥 겁이 났다. 이곳에서는 화마가 덮쳐 현관 출입구 쪽이 막히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생명과 직결된 재난 상황에선 훨씬 더 민감하고 실효적이다. 그날 나는 매캐하고 뜨거운 연기에 질식당하는 고통을 가늠해 보았다. 불길에 휩쓸려 기도가 타들어가며 울부짖는
‘한국소설’에서 지난해 이맘때쯤 당선 소식을 주셔서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한 해가 흘렀습니다. 그간엔 미진한 구석이 너무나 빤하게 보여 습작에 치중했습니다. ‘경북일보 문학대전’에 응모할 때도 아직 아니다 싶어 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한날은 술에 잔뜩 취해 노트북 앞에 앉았죠. 이메일에 이번 응모작 깔아 두고 한참 망설였습니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하고 질러 버린 겁니다.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 크게 어긋날 상황에서 선택한 은신처가 소설 쓰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소설 쓰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하지만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으로 이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질문을 애써 부여잡고서 이야기로 만들어보았습니다.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을 떠올리며 인간으로서의 오만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짧은 소설 안에 제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저와 함께 같은 질문으로 고민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등단 삼 년 차지만 습작 기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왜 쓰는가, 보다는 왜 사는가, 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깨어나십시오.누구냐고, 여긴 어디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지 못했다. 그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둠이 물러가는 동안 그는 눈꺼풀만 껌벅거렸다. 애써 내뱉은 말은 속에서부터 일그러져 신음이 되고 말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는 숨을 토해내며 몸에서 힘을 뺐다. 눈꺼풀이 힘없이 내려갔다. 빛이 그의 감은 눈꺼풀을 통과해 안구에 닿았다.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렸다.“깨어나십시오.”그는 다시 눈을 떴다. 시야를 가로막는 막이 있었다. 그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데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희미하게
동트기까지는 아직 이른 시각, 모래톱은 포화가 끝난 전장처럼 높고 낮은 무덤이 즐비하다. 그 사이로 물줄기가 흐르고 군데군데 웅덩이가 널찍하다. 흐릿한 물속에는 수많은 치어와 미처 바다로 나가지 못한 숭어 한 마리가 지친 지느러미로 제 몸을 지탱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기에 갇혀 만조 시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사주 사이의 웅덩이에 갇힌 바닷물은 모래톱으로 밀려났다가 쓸려 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때로는 높이, 때로는 낮게 오르내린다. 발등이 젖을까 봐 뒤로 물러섰다가 숭어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뼈들이 흐지부지하게 널려있다. 정의라고 신념 했던 가치나 사실들이 제대로 열려지는 일들이 없었다. 살아가는 일들이 내 생각과는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사불여의. 뼈대 있는 가문이니, 뼈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집성촌의 고택과 같이 거대한 가문에서나 있을 수 있는 먼 일이었다. 나를 세울 수 없었다.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어도 적당히 얼버무려 버리고 만다.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아버지의 뼈에 많은 억압을 가했다. 특히 외삼촌들과의 다툼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만 나무랐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외삼촌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작은 외삼촌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