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혼자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막 바뀐 신호에 경계의 눈초리로 잰걸음이다. 이팝나무 하얀 꽃을 명지바람이 슬며시 몰고 와 흩뿌려 놓은 봄빛 찬 건널목. 얼룩말 무늬 같은 건널목 빗금을 세며 가는지 골똘하다. 다소 커 보이는 재킷 속에 감춰진 왜소한 체형에 짊어진 책가방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휘두르듯 내젓는 두 팔이 못내 짠하다.언제부턴가. 저 사내아이를 이 건널목에서 자주 보게 되었다. 아침 운동가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아이들의 등교 시간과 맞물리면서였다. 그저 스쳐 가는 길 위의 아이를 내 시야가 붙든 건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무 맛을 알았다. 아무 맛 없다고 타박했던 그 맛을 이순을 넘어서야 알았다. 땅심 먹고 자란 식물 중 가장 자연적인 그 맛을 내 입이 알기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편안하게 입안 가득 수분을 채워주다 천천히 제 몸 우려내 주재료에 어울려 드는 맛. 누구나 만나지 못해도 늘 마음 언저리를 채우는 사람이 있듯, 어떤 맛에서도 일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어련무던한 맛.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조용히 베풀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 같은 무 맛을 안다는 건, 인생의 오감을 느낌으로 마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증거리라.땔감 준비와
당신은 꽃 한 송이 건네듯, 누군가 내밀던 정갈한 손에서 온기 느껴 본 적 있나요. 땀에 젖은 듯 촉촉한 그 손 잡고 초록 행복이 시작된 적 있나요. 그로 인해 맑고 깊은 숲속에 핀 한 송이 연영초 같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이 찾아든 적 있는가요.봄이 부산스러워 길을 나섰다. 자꾸만 틀어지는 삶의 바퀴를 조율하고, 일상의 분주함에서 눈을 뗀 뒤,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보려던 참이었다. 들숨에 봄 내음 깊숙이 들이고 날숨에 내 밖의 탐색으로 지친 탁기(濁氣)를 내놓으며 걸었다. 곧 과속으로 화르르 피어날 봄꽃들의 기지개에 흐뭇한 시선
이유 없이도 희망할 수 있는 계절, 봄이다.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살에 폴폴 꽃향기 난다. 순도 높은 희망을 싹 틔우라는 하늘의 뜻에 충실한 자연이 순응 중이다. 봄은 지상의 모든 꽃을 피우려 겨우내 땅속 근심을 오롯이 품은 뒤, 분주하게 초록의 움을 틔우고 있다. 봄에 느끼는 자연의 섭리가 오달진 이유다. 마침내 꽃을 피우려는 봄의 간절함은 바람의 냄새와 온도를 높여 숨탄것들의 물오름으로 숨이 차다. 곧 잔잔하게 다가와 오래 수런거릴 봄은 기억하지 못할 것을 기억하게 하고, 잃어가는 기억도 찾아오게 할 것이다.지난 설을 저만치 앞두
이른 아침 까치가 운다. 물오름을 시작하는 감나무에 앉아 먹으러 왔노라 알리듯 요란스럽다. 마치 먹이 빚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당당하다. 이제 막 텃밭에서 고개를 내미는 시금치를 먹을지 상추를 먹을지, 아니면 전날 먹다 만 봄동을 마저 먹어 치울지 메뉴 결정이라도 하는지 수다 삼매경이다. 그 옛날 동구 밖에서 오는 손님 반기며 울던 그 까치들이 아니다. 잡종견 강아지 둥이 녀석에겐 공포의 소리고 텃밭의 숨탄것들엔 절체절명의 소리다.한적한 도심 변두리 전원주택으로 이사 간 지인이 날강도 같은 까치를 발고하겠노라 벼르고 있다. 그이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가 짐 진 자들의 심장을 두드린다. 존재는 흔적을 남긴다는데, 물거품처럼 사라진 지난날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쏜살처럼 꿈결처럼 사라져 버린 길고 긴 시간의 끝에서 묻게 되는 의미심장한 물음처럼 들린다.강렬하게 뇌리를 파고드는 노래는 마치 너무 많은 걸 놓아버리고 산 나를 향해 질타하듯 시퍼렇게 날을 세운다. 한 시절, 내 삶의 소중한 일부라고 믿었던 어떤 것과 아끼고 보듬고 선망했던 것조차 아무렇지
처남남매간인 우씨와 남씨. 그들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며 의좋은 인척으로 지낸다. 삶의 방식과 처지는 다르지만, 삶의 의미를 생산적인 일에 두고 개를 좋아하는 공통점은 특별나다. 사 년 전, 분양받아 온 형제 견 어리는 우씨가 버리는 남씨가 키우고 있다. 마치 사이좋게 살 것을 맹세한 서약서와도 같은 견들의 족보도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좋은 일, 사소한 일에도 축하와 감사하는 그들의 대화에 빠짐없이 개도 등장한다.어느 날, 매사에 느긋하고 호탕한 성격인 우씨네 어리가 다쳤다. 미련한 곰 같은 어리도 문제지만
바람 소리를 들으며 겨울의 깊이를 실감했다. 강바람은 된바람까지 보태져 너울을 만들고 마른 갈대를 들쑤셔 와삭거리다, 땅 위를 깡그리 휩쓸 듯 윙윙거렸다. 버석버석 마른 잎 비비는 소리와 얼음 우는 겨울 강의 겹소리들. 그 발아래 조용히 누워 동면에 든 것들엔 소리가 없었다. 봄을 향한 꿈을 꾸기 때문이었다. 외로운 꿈이 이루어지려면 비밀을 간직해야 한다고, 마른 풀과 뿌리만 남은 것들은 미완의 꿈을 꺼내놓으면 쉽게 금이 간다며 침묵했었다. 겨울 한가운데서 삶의 전체를 관조하듯, 꿈을 향한 침묵의 그 시간을 슬픔처럼 가슴에 품고 숨
시샘달(2월)이 붉디붉게 물들고 있다. 혹한 속에서도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동백꽃 진자리에 선홍빛 선혈(鮮血)이 낭자하다. 차디찬 땅바닥에 온전한 송이째 떨어진 꽃망울들이 시리도록 애처롭다. 한밤 영혼의 온기를 머금고 혹한 속에서 새벽 태양처럼 달아올랐던 생명이 아니던가. 눈송이 흩날리는 겨울, 선혈처럼 붉게 태어나 그리움에 사무쳤을까. 겨울꽃으로 환생했다 떨어진 저 꽃의 피 울음에 숨이 멎는다.동백꽃이 하염없이 피고 지고 있다. 칼바람에 맞서 힘겹게 봉우리를 밀어 올려 꽃으로 벙글더니 저렇듯 애잔하게 진다. 시샘달은 알고 있을 것이
석이 할머니가 요양원에 갔다. 재혼한 아들 석이 아빠 때문이었다. 상처가 상처를, 짐이 짐을 알아가는 아들 내외의 중요한 밀착과 고정인 접의 시간에 한 점 티로 남고 싶지 않아서였다.외아들인 석이 아빠가 상처하자, 일생 미역 따고 전복 캐던 석이 할머니가 바닷가에서 석이를 맡으러 달려왔다. 그러나 석이가 돌만 지나면 다시 돌아가리라던 당초 계획은 하세월 흐르기만 했다. 석이 아빠의 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애가 탄 석이 할머니는 급기야 만나는 이마다 붙들고 아들의 재혼 자리를 눈물 찍어가며 부탁하기에 이르렀다.세상에는 보이지
‘미꾸라지 잡는 통발, 참새 잡는 그물, 다슬기 잡는 틀’ 있습니다. ‘후리망’ 전문이라는 글씨는 굵은 고딕체다. 걸리기만 하면 모조리 싹쓸이해 잡고 말겠다는 섬뜩한 결기마저 느껴지는 문구다. 동네 좁은 뒷골목에 다양한 망을 파는 어구점이 있다. 햇살 좋은 날이면 나이 지긋한 주인이 나와 앉아 헤진 그물을 꿰맸다. 어디 한 군데라도 찢어진 곳이 있으면 헛수고라는 듯, 골목 길게 그물을 펼쳐놓고 무딘 칼날 벼리듯 굵은 돋보기 너머 번뜩이는 눈빛으로 꼼꼼히 손질했다.나의 유년은 지금처럼 다양하고 품질 좋은 망이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겨울이다. 늦봄 같은 날씨에 식물들이 헷갈려 꽃을 피웠다. 흐려진 계절의 경계에서 식물의 시간이 뒤엉킨 탓이다. 그러다 북극한파가 주춤하던 극지 찬 공기에 가세하면서 회색빛 하늘에 경고등을 켰다. 바람은 쇳소리를 내며 울고 본연의 색채가 사라진 대지는 쩡쩡 얼어붙었다. 동장군을 앞세운 북방의 냉골 부대가 압록강을 넘었다는 다급한 소식도 들렸다. 기상전문가들은 구식 기마부대를 이끌고 삼일 전쟁에 사 일 쉬던 옛 전술방식(삼한사온)이 아니라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하얀 눈 병사들을 이끌고 인해전술로 나올 거라
봉구네 늙은 감나무에 홍시 하나가 나무와의 이별을 기다리고 있다. 이파리 하나 없이 낙엽으로 날려 보내고 쪼그라진 채 매달려 나약하게 흔들린다. 곧 까치에 무너지거나 막새바람에 부서질 시간 앞에 기도하듯 초연하다. 다시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건 생명이 있는 것들이 지닌 숙명 같은 슬픔이다. 아득하지만 그래도 보내야 하는 감나무와 이별을 준비하는 홍시의 간절한 기도는 언제 필요할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을 때인가. 견뎌서 다시 일어날 힘을 구할 때인가. 아니면 마음이 무너져 내려 붙잡을 것이 없을 때인가. 질정 없는 궁금증에 서성
남자의 문장은 불온한 듯 거칠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처럼,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거침이 없었다. 감정의 온도는 극명했다. 홧홧한 여름 바람처럼 온몸으로 왔다가, 귓전을 때리는 북풍한설 한겨울 바람처럼 몰아치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봄바람이듯 와 뒹구는 낙엽에 담겨 눈앞에 일렁이는 가을바람으로 나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남자와는 두 번의 편지지 여덟 장으로 만났다. 누군지는 모른다. 그는 인근 교도소 수감자였고 어느 문학상에 응모한 이였다. 누구나 대나무 숲이 되어 나의 얘기를 들어줄 이가 필요하듯, 그 역시도 비바람과 눈
못질한다. 부실한 팔로 장도리의 힘을 빌려 벽에다 못을 박는다. 철근콘크리트조 벽은 철옹성이다. 적을 만난 복어 배처럼 부풀린 채 단단한 결기로 낯선 침입자에 저항하듯 결연하다. 무력으로 들어가려는 자와 사수하려는 벽의 팽팽한 대치로 불꽃이 튄다. 어설픈 장도리의 우격다짐에 들어가다 밀린 못은 구부러진 채 튕겨 나와 비명을 지르고, 빗나간 장도리에 맞은 집게손가락은 피멍이 들었다. 불온한 침입자에 대응하는 벽의 저항이 거세다.소설(小雪)이 지나자 꽃진 자리에 뭇 서리 하얗게 앉았다. 떨어진 꽃은 뿌리를 알까. 겨우내 쉼 없이 물을
설핏 든 풋잠이었다. 나뭇잎 배를 띄워놓고 찰방거리던 유년의 그 개울이었다. 사각대는 갈잎 사이로 커다란 은빛 물고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물장구치던 동무들을 다급히 불렀다. 한달음에 달려오리라 여겼던 동무들은 오지 않고 사위(四圍)만 고요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혼자였다. 뒷덜미에 서늘한 한기를 느끼는 순간 눈을 떴다.그때였다. 커다란 옷걸이 봉에서 떨어진 보랏빛 스웨터를 본 것은. 옷으로 빼곡한 삼단 옷걸이 봉 밑 어둑한 그곳을 북녘 창으로 짧은 햇빛이 들면서였다. 지난가을, 꺼내 입었던 스웨터는 먼지로 뽀얗
저물녘, 손님이 왔다. 매년 첫서리가 내릴 때쯤 오는 손님이다. 기품 있고 연세 지긋해 보이는 노신사는 곱게 풀 먹여 다듬질한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쓰고 왔다. 멀리서 온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선뜻 방으로 들지 않고 마당에서 서성였다. 나직한 말소리와 중후한 손님의 흰 중절모 사이로 서녘 놀 빛 품은 잔양이 스며들기도, 물빛 두루마기에 소슬바람이 숨어들기도 했다. 잔득하게 집을 살피는 손님의 허우룩한 눈빛은 처연한 듯 깊고도 고요했다. 설핏 숨겨진 질박한 애틋함도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잘 여문 가을무 하나를 골라왔다. 햇살 좋은 밭에서 엉거주춤 바지를 내리다 가을볕에 들켜 볼기짝이라도 맞았는지 멍든 듯 파르스름하다. 채 썰어 달구어진 냄비에 넣고 들기름에 자작하게 볶는다. 제 몸의 수분을 죄다 내놓은 뒤 달큼하니 가을 하늘을 닮은 듯 맑고 투명하다. 추젓에 가을 마음 한 스푼 첨가해 간을 맞춘다. 자잘한 전복 몇 마리로 죽도 끓인다. 물 깊은 바다에도 가을은 고요히 물들어 작고 연약한 듯하지만 통통한 살이 여간 야물지 않다. 달구어진 냄비에 얄팍하게 썰어 던져 넣고 불인 찹쌀과 함께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 고소한
“이 사람아, 그 배추 맛없다. 저기 있는 시퍼런 게 더 맛있다. ” 철썩 등짝 한 대 호되게 얻어맞은 듯 놀라 돌아본다. 쌉싸름한 듯 달싹하지만 묵직한 질타의 소리다. 겉으로의 말은 부드러운 듯하지만, 속 안의 말은 시퍼렇다. 어쭙잖은 내 자존심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단호한 날카로움도 있다. 순간, 되바라지지 않고 그윽해지려 끌어안을 틈을 찾는다.추석을 앞두고 일찌감치 김치부터 담그기로 했다. 배추의 무게를 고려해 배달이 가능한 마트를 이용했다. 매장엔 푸른 잎 홀라당 벗고 속살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 쐬고 있는 알배기 배추가 눈
봄이를 봤다. 시장 모퉁이 화장품점 앞이다.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볕 바른 자리에 배시시 드러누워 작은 코를 실룩이고 있다. 새어 나오는 향을 음미하는지, 아니면 이곳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제 새끼 냄새를 쫓는지 까무룩하다. 쓰담쓰담 토닥였다. 늘 그랬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반갑게 바라봐 주지 않았다. 되작여도 서운한 척 능청이다. 맹랑하면서 스산스러운 봄이다. 웬일일까. “봄아” 나직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가랑가랑 갇혔던 눈물이 흐른다.봄이는 내 애틋한 멘토다. 상처받거나 지칠 때 하염없이 바라보며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