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경북일보 청송 객주 문학대전’의 수필 분야에서는 693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60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은 면밀한 검토를 거듭했다.검토된 작품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통적인 느낌은 우리 수필이 여전히 개인사와 가족사에 대한 진술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수필이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필이 개인사의 기술을 너머 세계와 인생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을 바꾸면, 수필은 철학과 역사의 경지에 이르러 글쓰기 주체가 자아의 세계화를 이루는 단계
하이고 마, 우짠 일이고. 다 죽었다, 다 죽었어. 클났다.늘 꿀을 대주었던 영선이 벌이 다 죽었다며 올해는 꿀 수확이 힘들 거 같다는 전화를 했다. 뉴스에서 들은 일이 사실이었다. 그 많은 벌이 어떻게 사라진 걸까. 왜 죽었을까. 어떻게 해서든 부탁한 꿀을 구해주겠다는 영선의 전화를 끊고 성애는 들고 간 비닐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기계의 잔액을 확인해 보니 충분해 보였다. 아이가 사라진 후 성애는 빨래방에 가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이는 사라져버린 벌처럼 빨래방에 오지 않았다. 아이가 틀었던 종류의 음악은 들리지 않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이 올해로 아홉 번째가 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공모전을 거쳐 갔을 것이다. 더러는 꿈을 이루었을 테고 더러는 아직 꿈꾸는 중일 테고.심사하는 자리에 서면 늘 무거운 마음이 가슴을 누른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된 판단으로 한 사람의 꿈을 좌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네 명의 심사위원들 생각도 모두 다르지 않아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여러 번의 윤독을 거쳐 엄중히 결정하기로 했다.시 부문 총 1,733편 중 예심을 통과한
낯선 나라의 이름에 얹혀 스티로폼 하나 버들 허리에 걸려 있다갈대 줄기와 강모래가 켜켜이 뒤섞여혼숙하는 강의 하구저렇듯 쓰러져 누운 것들은 무엇을 보듬고 있는 것일까?둥둥 떠내려 가버린 뒤남겨진 것들, 흰 손 같은 우울이 스민다발리 해변가에 사이다 병이 썩고 있고어느 나라엔 화산폭발처럼 플라스틱 산이 솟았다고도 한다가벼운 말이 가벼운 발길이 되고가벼운 발길이 가벼운 칼날 되어돌아가지 못할 몸들을 제련하고 있다뜨거운 도시, 뜨거운 바다이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는, 강가왕버들 가지 위에 흰 새짜부라지고 부서진 사각으로
창문 밖의 은행나무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습니다. 햇빛을 받으며 조금씩 바래지는 잎사귀를 바라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은행잎이 주변 환하게 노란 빛으로 변해있을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나뭇잎이 물들어가는 것조차 이렇게 더딘 시간이 필요하구나, 깨닫게 됩니다. 모두들 수고한다고 저에게 햇빛 같은 한마디씩 건네주는데 그 덕에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된 것 같아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노트를 보면 이야기를 적고 싶은 마음이 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영글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시 흰 모니터 앞에서 또
여름 지나자 찾아온 태풍에 아연실색, 놀라고 말았다. 경북 지역에도 셈할 수 없을 만큼의 피해를 남긴, 태풍 ‘힌남노’. 저주스러웠다. 인명 피해까지 끼치고도 다음날엔 더욱 화창한 날씨를 보여준 그 얄미운 모습. 이름 뜻이 ‘자연보호구역’이라 했다. 이 독특한 태풍의 이름이 무슨 죄일까마는 ‘자연’이라는 이름을 걸고 인간을 치죄하는 것도 아닐진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모습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물에 잠긴 집, 끄집어내 버려지던 가재도구들. 쓰러져 가는 집 앞에서 좌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시 한 줄이 무슨 힘이 될 수
당신 엄마잖아. 남편의 말에 은재는 드립포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내 삶에 그런 존재는 없다고 했지! 은재는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떨리는 손을 진정 시키기 위해 아일랜드 식탁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와우, 그럼 나의 누나는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땅에서 솟았을까? 남편 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 손을 펴 보였다. 난 모르는 사람이니까, 저지른 사람이 책임져. 은재는 환을 노려보며 말했다. 날 선 분위기를 농담으로 눙치려는 태도도 마뜩치 않았다.나도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미팅이 잡힌 거라고 했잖아. 중요한 고객이라 변경할 수 없
꽃피고 나뭇잎은 우거진, 드높은 하늘을 향해 새들이 제멋대로 날개 짓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마음은 소설을 끌어안고 수시로 울었다.초등 5학년쯤일 것이다. 시골 학교 도서관은 교실 한 칸이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쓰다듬으며 작가를 꿈꿨다.“내 쓴 책도 도서관에 꽂힐 거야.”달콤할 줄 알았던 꿈은 무심히 흐르는 시간 앞에 서서히 쪼그라지고 위축되어갔다.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랴 싶었다. 별거 아니라고 위로하다가도 그것도 못하냐고 자책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코로나 19로 만남이 멈춘 시간들은
유리 덮개를 깐 회색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조용한 한낮입니다. 책상엔 쓰고 남은 A4용지와 읽지 않은 자기계발서, 날짜를 넘긴 달력과 유행 지난 캐릭터 티슈, 물수건으로 채 닦이지 않은 먼지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 첫눈처럼, 빈 모니터가 하얗습니다. 워드프로세서 화면에 커서가 깜박입니다. 뭐라도 적고 싶지만, 적절한 첫문장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ㅏ’자와 ‘ㅣ’자를 썼다 지워 봅니다. 형광등 불빛이 시리게 내리쬡니다. 충혈된 눈을 껌벅거립니다. 방심했다가는
2016년에 가작으로 당선되었는데 올해 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름 열심히 쓴 것 같은데도 결과가 없는 것 같아 속을 끓이던 나날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사주나 운세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 집에서 혼술을 하기도 했다. 수상 결과를 듣고 보니, 역시 묵묵히 쓰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남편과 나의 가족들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소사모 모임과 장편소설 스터디 멤버들에게도 힘내서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읽고 동상을 안겨 주신 심사위원 및
새벽 세시쯤에 들어온 남자는 비틀거리며 구두를 벗었다.동공이 적당히 풀어져 있었다. 꽤 취한 상태였지만 여기가 집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한쪽 구두가 잘 벗겨지지 않자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손바닥으로 구두 뒤축을 잡아당겼다. 무게중심이 흔들린 상체가 잠시 기우뚱거렸고, 점성을 잃은 손바닥이 구두에서 미끄러졌다. 화가 난 남자가 갑자기 허공을 걷어찼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구두가 도자기 화병에 꽂혔다. 화병이 산산 조각나는 파열음에 집 전체가 들썩거렸다. 꽃받침에서 떨어져 나온 장미꽃들이 물방울과
이 소설의 제목은 영화 ‘데드맨 워킹’에서 따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랬다.헬렌 수녀(Sister Helen Prejean: 수잔 서랜든 분)는 어느날 매튜 폰스렛(Matthew Poncelet: 숀 펜 분)이란 백인 죄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매튜 폰스렛은 데이트 중이던 두 연인을 강간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 헬렌 수녀를 만난 매튜는 무죄라고 주장하며 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수녀로서 감당하기 힘든 결정을 앞에 두고 갈등하던 헬렌 수녀는 힐튼 바버(Hilton Barber: 로버
삶이 시들해지는 날이면 숨이 살아있는 시장으로 향한다. 느린 걸음으로 기웃거리다 보면 몸속에 엔돌핀이 샘솟고 축 처진 어깨에 힘이 실리며 덤으로 따뜻한 정까지 한 아름 안고 온다.재래시장 난전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작은 바구니와 큰 바구니를 구분해 채소나 과일을 담아놓았다. 가격표는 골판지에 써서 바구니에 꽂아 한눈에 볼 수 있다. 모양은 삐뚜름하게 제멋에 사는 것처럼 생김새가 모두 제각각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다가앉은 자연 그대로의 물상을 보고 있으니 더없이 친근하게 여겨진다. 인간 세상의 군상들을 마주하는
어제의 아련한 기억들을 더듬고 싶을 땐 살포시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는다는 건, 머릿속에 새겨 두었던 망각의 흉터에 불을 지피는 것과 같다. 늦가을 만추에 고향집을 간만에 찾았다. 성글게 추억이 깃든 문간방 쪽마루에 비스듬히 기대어 두 눈을 살포시 감아본다. 찰나의 순간, 어제의 환영(幻影)들이 나를 뭉텅이로 데려가기 시작한다.유년시절 나는 행랑채 서까래 기둥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마당 언저리를 두리번거리는 야릇한 버릇이 있었다. 마당 오른쪽 툭 튀어나온 둔덕에는 장독들이 정갈스레 옹기종기 놓여있었다. 아침이 되면 햇살은 감나
얼마나 많이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죠, 땅을 파고 들여다봐도 알 수 없는 깊이 입니다. 얼마나 넓게 멀리 나갔는지도 알 수 없었죠, 나무들은 가지만큼 뿌리를 뻗는다고 하지만, 밤나무는 새 열매가 맺힐 때까지 처음의 씨를 간직한대요, 화분을 옮겨 심다보면 하얗게 뿌리가 나와요, 꼭 라면 발처럼 꼬불거리며 사방으로 발을 뻗어요, 밤에 엄마 꿈을 꾸고 나면 아침이 유난히 환한 것처럼, 작은 나무도 실뿌리가 환해요, 고단한 늪을 건너 혼자라고 중얼거리며 눈앞의 것만 보았죠, 평범한 말들은 뼈가 없이 허물거리죠, 내 뿌리의 색깔과 향기, 하
코로나와 함께 걸어 온 여름은 길고 지루하고 힘든 시간의 연속 이었습니다.친구가 사다 준 아메리카블루 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화분, 나를 닮았다는 꽃 은은한 푸름으로 바다를 떠 올리게 해 주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고, 내일을 바라 볼 수도있었던 시간입니다. 라는 나무의 뿌리도 어느새 깊이 내려가 자리하고 있나 봅니다.아주 작은 꽃이 피어나는 걸 보니 오래 서성인 시간의 흔적이 고여 독특한 색을 보여주나 봅니다.다시 한 번 꿈을 꿀 수 있을 지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에 감사드립니다.
벌써 가을이 다가왔다. 가을은 내 곁에 늘 혼자 오지 않았다. 단풍과 더불어 풍요를 선사했다. 올 가을도 예외는 아닌가 싶다. 가슴 떨리는 연인을 내게 안겨주었으니 하는 말이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진한 감흥이 더 크게 느껴진다. 적잖은 시간 동안 글쓰기를 해왔다. 지금껏 글쓰기는 객관성과 논리를 담보하는 글쓰기였다. 팩트(fact)없이는 한 문장도 쓸 수 없는 써서도 안 되는 거대한 타지마할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술적 글쓰기가 글쓰기의 전형으로 알고 살아왔다. 이런 글쓰기를 뒤로하고 내가 보는 시선으로 내가 느끼는
재래시장에서 찬거리를 사 와 가족들이 좋아하는 저녁을 준비했다. 식탁을 차리는데 문자가 왔다.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에 글을 보냈으나 잠시 잊고 있었다. 감사의 문자였다.삶이 시들해지면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찾는 곳이 시장이다.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옛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현실은 각박하고 몰인정하다. 하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인정이 묻어나는 곳이 산재해있다. 재래시장에서 느낀 따뜻한 울림이 삶의 온기가 되어 한 편의 글이 되었다.평소 글을 쓴다고 하지만 글의 위치가 궁금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고개가 숙어진다.
아버지는 서툰 목수였다왼쪽 엄지손톱이 꺼멓게 죽어 있는 날이 많았다한 번은 망치가 크게 빗나가집안까지 온통 붉은 멍이 번졌다멍이 풀릴 즈음 방은 한 칸 줄어 있었다친구의 다락방에서 놀다 온 날엔찌그러진 세숫대야에서 피워 올린 파꽃처럼우산살을 감아 오르는 나팔꽃처럼낮은 지붕을 지나 더 높은 곳에 닿고 싶었다거기엔 엇박아 놓은 별이 있었고톱으로 켜놓은 내일이 있었다별과 나 사이아버지는 사다리를 놓아주었다사다리는 오를수록 좁아지고 삐걱거렸다후들거리며 올라설 때마다흔들리는 건 아버지였다아버지, 부서질 것 같아요 무서워요버티는 칸 칸마다 새
온달 환한 겨울밤 문득깊은 오지독에서 갓 꺼낸저릿한 동치미가 먹고 싶다갈증이 나는 것도 아닌데제 가진 것 속속 내어주고는겨울 하나 껴입은 통무를한껏 베어 물고 와삭 씹는 그 맛,목구멍 타고 뱃속까지 기탄없이메다 꽂히는 동치미 국물을후루룩, 들이켜고 싶다바람도 동면에 든 유정한 시간에간간한 동치미가 간절한 건 왜일까맵찬 섣달의 달력을 들여다보며멀거니 유년을 유영하다가시골집 고묵은 먹감나무 아래장독대로 난 숫눈길을 더듬는 순간오래 지나도 감도는 명문名文처럼선연히 살아나는 발자국,아, 어머니구나!아득한 겨울 난산의 밤날 낳으신 신열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