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영산으로 꼽히는 팔공산(1193m). 해발 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구를 비롯해 영천·경산·군위·칠곡 등 경북 내륙의 5개 시·군을 아우르는 우람한 산이다. 통일신라 때는 동쪽 토함산, 서쪽 계룡산, 남쪽 지리산, 북쪽 태백산 중심에 있다고 중악(中岳)으로 불리기도 했다. 팔공산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절집이나 굿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동쪽 끝자락 해발 850m 관봉 정상에 앉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영험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불상이 갓 모양의 너른 판석을 이고 있어 흔히 ‘갓바위’로 불리는 이 불상은 현세의 구복을 비
흔히 오지라 하면 흔히 강원도 깊숙한 산골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살고 있는 도내 주변에도 첩첩 산골 오지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경북 성주군 독용산(955m·禿用山) 일대는 성주군에 있는 ‘오지 중 오지’로 알려져 있다. 독용이라는 소리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데 대머리 독(禿)자의 뜻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민둥산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독옹(禿翁)의 그것처럼 빛을 받아 반짝인다는 뜻인지 알쏭달쏭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성주 독용산성길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길이다. 경상북도에 많은 길이 있지...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이다. 반목과 질시에서 이해와 화해로 우리는 건너갈 수 있을까. 자꾸만 마음 한쪽이 불안해지는 건 역사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지금부터 68년 전에 가장 치열했던 한국전쟁이 지나갔던 경북 칠곡 가산산성을 찾았다. 모든 경계에는 긴장이 흐른다.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까닭이다. 이해충돌이 가장 첨예한 경계 중 하나가 성(城)이 아닐까 싶다. 험준한 산성에서의 전투는 처절하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나 임진왜란 시절 행주산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에는 1200여 곳의 산성터가 ...
경북 고령군은 대구와 경북 성주군, 경남 합천군, 창녕군과 이웃이다. 고령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지금부터 약 3만 년 전. 대가야국 도읍지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와 철기, 가야금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곳이다. 정견모주와 이바가의 사이에 난 아들 둘이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시조가 됐다고 건국신화에 전해진다. 서기 400년 금관가야 멸망 이후 대가야는 후기 가야 연맹을 이끈 맹주로 평가받는다. 전성기에는 여수, 순창, 무주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처럼 고령의 대가야 유적들은 서민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주민 ...
김천에는 걷기 좋은 모티길이다. ‘모티’는 ‘모퉁이’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직지문화모티길(4.5km), 사명대사길(4.5km), 인현왕후길(9km), 수도녹색숲 모티길(15km) 등 4개의 길이 있다. 직지문화모티길과 사명대사길은 직지사 주변, 인현왕후길과 수도녹색숲 모티길은 청암사 주변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볼거리가 많을 뿐 아니라 걷기에 불편함이 없는 직지문화모티길을 걸었다. 출발은 직지공영주차장. 버스를 타고 왔던 길로 걸어 내려간다. 대항면 주민들이 만든 솟대거리를 지나면 쉼터가 나타나고...
‘단맛 나는 물이 솟는 샘’이라는 뜻을 지닌 경북 예천(醴泉)은 북동쪽으로 소백 준령이 감싸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낙동강과 내성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마을이다. 특히 금당실 돌담길은 99가구 전통가옥이 만들어내는 풍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당실’과 ‘맛질’ 등 두 마을은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대표적인 양반마을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곳에 도읍을 만들려다 큰 내(川)가 없어 무산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 정감록의 십승지지(十勝...
이른 아침 안동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지나 도착한 병산서원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이따금 굴뚝 연기와 바스락대며 사위가 깨어나는 기척 외에는 인적도 뜸했다. 오래전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 걸어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방문객을 위한 시설들이 새로 세워지는 등 주변 풍경이 많이 변했다. 병산서원에서 출발해 낙동강변 하회마을길을 따라 걷다 화산을 지나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부용대에 올랐다 다시 하회마을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드문드문 있는 집들을 지나면 한국 건축사의 백미(白...
안개 끼는 날이 많은 청도의 사계는 색의 향연, 특히 보색의 잔치이다. 봄에 찾은 청도는 벚꽃과 복사꽃 그리고 연한 감잎이 연출하는 색채 대비 속에 어지럼증을 일어나고, 여름은 짙어진 녹색의 푸르름에 눈이 시릴 지경이고, 가을은 곳곳에 깔린 진녹색 양탄자와 선홍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 뒤로 펼쳐진 초록의 대지에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을 보여준다. 누가 뭐래도 운문사는 겨울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푸르름 가득한 여름날은 또 다른 느낌이다. 어디에서 들어오든 길가의 여러 여름꽃이 나란히 도열해 반겨주기 때문이다. 110년 만...
영덕의 블루로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바닷길’이자 해파랑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길이다. 블루로드는 해안을 따라 A코스(빛과 바람의 길·17.5㎞), B코스(푸른 대게의 길·15.5㎞), C코스(목은 사색의 길·17.5㎞), D코스(쪽빛 파도의 길·14.1㎞) 등 4개 코스로 나뉜다. 대부분의 해파랑길 탐방로가 산림으로만 형성돼 있지만 영덕 블루로드는 청정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영덕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길은 ‘푸른 대게의 길’로 불리는 B코스...
영천은 별의 고장이다. 별빛과 햇빛이 가장 많이 드는 산으로 알려진 보현산(1126m)에 자리 잡은 보현산 천문대 때문이다. 영천은 일찍이 ‘이수삼산(二水三山)의 고장’이라 불렸다. 이수는 보현산에서 발원한 남천과 북천, 삼산은 보현산과 팔공산, 운주산이다. 보현산 위에 걸린 하늘을 본다. 호수보다 더 푸르다. 하늘이 저토록 푸를 수가 있을까. 아니 파랄 수가 있을까. ‘파랗다’와 ‘푸르다’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파란 하늘, 푸른 산, 푸른 들’을 떠올려 보면 ‘파랗다’와‘푸르다’가 구별될 것 같기도 하다. 하늘을 보고 다...
한국의 3대 오지를 BYC로 표현한다. B는 봉화, Y는 영양, C는 청송이다. 지금은 교통이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에 BYC를 가려면 정말 산 넘고 물 건너가야 했다. 날씨가 더운 요즘, BYC에는 아직 시원한 계곡과 산 등 갈만하고 볼만한 곳이 많다. 내성천이 흐르는 봉화는 어느 지역보다 고택과 정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 시원한 계곡과 고택을 볼 수 있는 길이 ‘봉화 솔숲갈래길’이다. 총 4개 구간 126㎞에 이른다. 일종의 봉화 둘레길인 셈이다. 전체 코스 중 제1구간 내성천에서 석천정사를 거쳐 닭실마을과 추원재까지 3....
서남산 가는 길을 걷기 위해 월정교에 다시 왔다. 이정표나 안내도에는 ‘삼릉 가는 길’로 표기돼 있다. 어느 나라든 건국이 있으면 패망이 있다. 신라도 기원전 57년에 건국해 기원후 935년 고려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사라졌다. 신라 왕의 탄생과 건국은 물론 패망의 흔적이 애잔하게 남아있는 길이기도 하다. 월정교-천관사지-오릉-김호장군고택-남간사지 석정-일성왕릉-양산재-나정-남간사지 당간지주-창림사지-포석정-지마왕릉-배리삼존불-망월사-삼릉-경애왕릉까지 약 8km 거리다. △돌에 새긴 개성 있는 안내도 삼릉 가는 길은 대체로 마을...
경주 남산은 남북(약 10km)으로 길게 누워있고, 동서(약 4km)로 봉곳 솟아있는 산이다. 남산이란 이름의 산이 여럿 있지만, 경주 남산은 숨 막힐 정도로 많은 유적이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산이다. 산의 규모나 크기로 보면 평범한 산 같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실로 깊고도 오묘하다. 골짜기마다 물이 흐르고 바위마다 부처가 새겨져 있고 탑이 세워져 있다. 이처럼 신라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였고 의지처였다. 그래서 신라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신성한 산이다. 선사시대 사람이 살았던 삶의 흔적인 선사시대 유적과 150여 ...
철길과 물길 그리고 찻길이 나란히 공존하는 길 오래 전부터 벼르던 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했고 예쁜 길이라고 했다.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 이어지는 길은 한 편의 서정시다. 하나같이 칭찬해 마지않는 길의 풍경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사람이 길에게 부여한 이름이었다. 승부역 가는 길. 경북 봉화에 가면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 철길 옆에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의 이름이 ‘승부역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길을 끝까지 다 걸으면 외로운 기차역 하나 서 있는 승부역이 나온다는 것이다. 미리...
울진에서 봉화와 안동, 영주 등 내륙지방으로 행상할 때 넘나들던 길에 있는 고개가 12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십이령길 또는 울진 보부상 길이다. 울진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지고 출발해 내륙으로 넘어갈 때 바지게꾼들이 첫 밤을 보냈던 곳이 바로 울진군 북면 두천1리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주방과 마방이 있었던 탓으로 하룻밤 묵는 과객과 장사꾼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열댓 가구가 사는 한적하고 평범한 산골마을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불영계곡을 관통하는 36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십이령길은 울진...
경북 영양 일월산 자락에 일제 수탈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한(恨) 서린 길이 있다.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이다. 경북 봉화·영양·청송과 강원도 영월을 잇는 240㎞가 넘는 도보 길인 ‘외씨버선길’ 일곱 번째 ‘치유의 길’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영양으로 가는 길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했고 며칠 내린 비로 미세먼지도 없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었다. 눈부신 5월 햇살에 온통 초록 물감 가득한 풍광이 잠시 세속을 잊게 한다. 영양읍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봉화로 향한다. 길을 따라 좌우를 오가며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가 바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시인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의 배경을 고스란히 현실에 옮겨 놓은 듯한 곳이 바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이다. 대구광역시 팔공산 자락에서 발원한 남천·동산계곡 물길(위천 상류)이 만나는 지점 바로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순수한 우리말로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제주도를 닮은 돌담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많은 사람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있다.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이유는 ...
신록이 짙어지고 있다.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꽃들이 다투어 피고 산과 들엔 온통 초록 물결로 가득한 몽환적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람 소리보다 물소리, 새소리, 초록이 건너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름난 산이나 유명한 행락지는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풍광만큼은 빠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이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고와리까지 걷는 신성계곡 ‘녹색길’이다. ‘녹색길’은 안동시 길안면으로 이어지는 길안천(川)을 따라 나 있다. 청송을 상징하는 과일을 생산하는 사과밭, 징검다리, 자연적 ...
오어사 오어지(吾魚池)로 향하는 도로변 벚꽃들이 활짝 피어 벚꽃 터널을 이루는 봄이면 살짝 부는 바람에 꽃비가 흩날리고 꽃잎은 물 위에 떠다닐 것이다. 그 기간이 너무 짧아 이 찬란한 환상적인 풍경도 자칫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 모른다. 오어사 주차장에서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오어사로 향한다. 1964년 운제산 계곡을 막아 만들어진 오어지는 겨우내 메말라 있다가 봄비로 인해 물이 가득 차 넘실거리고 있다. 원효 대사와 혜공 선사가 수도하면서 산봉우리를 구름사다리로 왕래해 이름 붙여졌다던 운제산(雲梯山·478m)에는 오어지를...
길은 삶의 은유이자 문명이 흐르는 강이다. 도시는 길의 접점에서 형성되고 길과 길로 연결된다. 길은 위락과 힐링의 공간이다. 길을 걸으면서 문화와 인간 삶의 흔적들을 확인할 뿐 아니라 위안과 건강을 얻는다. 경북일보는 지난해 동해안의 바닷길인 해파랑길을 2명의 여류작가가 걸으면서 소개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기획의 연장선 상에서 ‘경북의 길을 걷다’를 연재한다. 현대인들의 걷기 열풍은 ‘올레길’ ‘둘레길’을 만들어냈다. 오랜 세월 자연의 품속에 숨어 있다가 새롭게 단장돼 속살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