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는 변방 도시국가에서 북아프리카 및 유럽 전역에 이르기까지 영토 확장과 세계 최초 인구 100만 명을 기록하는 거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문장에서 암시하듯 고대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자 서양 문화권을 좌지우지하는 실세 국가였다. 로마의 미술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미술을 절충한 양식으로 풍부한 자금과 권력을 바탕으로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의 발전을 견인하였다.로마 미술의 특징이 잘 표현된 건축은 기후 조건에 맞는 무거운 석조나 벽돌을 주재료로 하고 양식 면에서 그리스 신전과 에트루리아의 아
고대 그리스 미술의 분류상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헬레니즘 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323년에서부터 로마가 그리스 본토 대부분을 정복한 시기인 기원전 146년까지를 일컫는다. 헬레니즘 미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대적인 정복 사업으로 페르시아 지방을 포함한 식민지 지역에 부수적으로 그리스 문화가 전파되거나 역으로 다양한 문화가 그리스로 유입되면서 고전기 미술과는 다른 표현양식을 보여준다.헬레니즘 미술은 그리스의 시대정신과 동방의 문화가 혼합된 범세계적인 특성이 있었고,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에 추구한 인체의 이상적인 미의식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미술은 크레타와 미케네의 선사시대 미술 이후, 기원전 650년부터 시작되는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를 통칭하는 말이다. 서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함께 그리스 미술이 언급될 만큼 서양 미술사를 조망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미술은 양식 변화에 따라 일반적으로 아르카이크 시대(고졸기), 클래식 시대(고전기), 헬레니즘 시대인 3기로 나눈다.독일의 미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빙켈만(1717~1768)은 〈그리스의 회화와 조각에 대한 의견>이란 자신의 논문에서 “우리가 위
고구려 고분벽화는 한국 회화의 출발점이자 최초의 채색화에 해당한다. 한국미술 통사에 따르면 고구려는 고대 삼국 중 가장 찬란한 고분 미술을 꽃피운 나라이다. 고구려 벽화는 초기에는 당대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가 주를 이루었고, 후기로 갈수록 내세관을 표현한 종교적인 그림이 성행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기록화인 만큼 고구려의 문화, 정치, 예술, 종교, 복식 등 다양한 학문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유적에 해당한다.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고구려 벽화는 예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차별화된 접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의 역사를 가진 이집트는 구석기시대 이후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는 긴 시간에 걸쳐 진화하고 변화된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프리카 북동부의 거대한 사막 지역에 있는 이집트는 국토의 90% 이상이 불모지인 사막지대이지만, 비옥한 나일강 주변 지역 덕택에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될 수 있었다. 풍요를 상징하는 나일강은 주기적인 범람과 강의 수위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양가적 성격을 띠고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 나일강에 의해 해마다 반복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풍요, 죽음이란 자연의 순환 현상을 목
동굴벽화에서 기인한 그림은 유구한 인류사를 거치면서 문자 발명, 기록화, 종교화, 기호학, 순수 예술 등의 유형으로 나누어져 면면히 계승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표현으로 시대마다 쓰임이나 목적은 달라도 유기적으로 인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선사시대의 그림은 주술적이거나 의사 표현, 기록을 위한 수단이었으나 점진적으로 더 특화되고 세분된 여러 주류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특히 기록화나 종교화는 유한한 인간의 생사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집착이 침착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이집트의 피라미드
원시 미술의 기원인 고대의 동굴벽화에는 실제 동물의 형상을 묘사한 사실적인 기호, 기하학 문양의 추상적인 기호와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 언어는 자체로 독립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사냥이 잘 되기를 기원하거나 생존을 위한 의식과 정보 전달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호를 조합하여 그림부호 체계를 간소화하면서 초기적 문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선사시대 이래로 동굴이나 바위에 그려졌거나 새겨진 그림 언어는 문자 이전의 제작물이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근거자료나 기호체계가 없어서 다양한 연구의 이견이 나
인류 진화 역사 속에서 미술의 기원은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문자 발명 이전의 현생인류는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몸짓, 울음, 그리기란 원시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특별한 기록수단이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인류는 그리기나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새기는 방법으로 원초적인 감성 표현이나 억압된 욕구를 표출했을 것이다. 그림 이미지는 텍스트 다음으로 자주 사용되는 미디어이며 발현도 인류 역사의 시작과 궤를 같이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다. 원시 동굴벽화나 암각화는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그림으
우리가 소위 언급하는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14세기부터 16세기에 일어난 서유럽의 문예부흥을 말하며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반석 위에 있다. 르네상스기에는 암흑시대라 불리는 중세의 종교 중심 문화가 쇠퇴하고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운동의 대두로 조각가, 화가들도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로 입지와 역할이 크게 신장하게 된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퍼져나간 문예 혁신운동은 북유럽에서도 새 물결의 파급효과로 인해 예술적 진보가 이루어지지만, 보편적인 르네상스 운동과는 다르게 독창적인 양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북유럽 르네상
에펠탑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화 상징물이자 세계인이 선호하는 파리의 랜드마크이다. 철탑의 명호는 프랑스 건축가이자 구조 공학자인 귀스타프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뉴욕에 소재하는 자유 여신상의 내부구조와 파나마 운하의 수문 공사 등의 설계에도 관여했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1889년 파리에서 열릴 만국박람회 개최를 위해 제작된 기념비적 구조물로 마르스 광장에 있다.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독일에 패한 치욕을 만회하고 손상된 자국의 자존심
조선 초기의 명작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실경산수(實景山水)가 아닌 이념 산수화이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의 꿈 이야기를 안견이 3일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제작한 것이다. 안평대군의 발문 기록에 의하면, 정묘년(1447년) 4월 20일, 꿈에 박팽년과 함께 무릉도원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찾은 도원에서 지기인 최항과 신죽주 등 일행과 한껏 즐기고 놀다 문득 잠에서 깼다고 한다. 안견의 낙관이 우측에 위치함은 관례로 작품이 끝나는 부분임을 설명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순서는 좌측부터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887~1986)는 1929년 뉴욕의 마천루를 벗어나 뉴멕시코의 광활한 자연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맞이한다.오키프는 남성중심적 사회 속에서 주체가 아닌 타자로 존재함으로써 자기표현에 대한 억압과 주체적 시선의 결핍을 겪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멈추지 않았다.“내 작업실이 아닌 공간에서 ‘타자’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간절히 꿈꾸고, 작업실만이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 본연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라고 뉴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미국 초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미술가이다. 오키프가 미국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뚜렷한 위치와 명성은 독창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스티글리츠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생존하기에 가혹한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여성의 몸으로 독립적인 삶과 개척자의 정신을 보여준 그녀의 생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키프는 미국 모더니즘의 초창기부터 자연에 근원을 둔 추상 작품을 시작으로 접사 시점을 이용한 커다랗게 확대된 꽃 그림, 뉴멕시코의 풍경화 등 주변적인 타자성 소재를 작품 안에서
20세기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인간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작품에 구현하는 미국 출신 작가이다. 호퍼의 작품에서 사실주의는 사물의 정확한 재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상이나 사회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의식에 있는 것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생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미국 사회와 1929년 ‘검은 화요일’로 알려진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촉발된 대공황을 경험하며 변화하는 대도시 속 인간의 삶을 고스
스위스 출신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rto Giacometti 1901~1966)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조각가이다. 자코메티는 천재 화가 피카소가 유일하게 인정하고 질투한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이자 조각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은 대부분 인물이 주소재이고 기존의 조각가들이 인체를 역동적이고 실제의 인간 모습보다 미화하여 표현하는 것과 달리, 그는 쓰러질 듯이 앙상하고 빈껍데기만 남은 나약한 인간의 몸을 형상화해 감상자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자코메티의 작업 방식은 뼈대에
선사시대 유적이자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시미술이다. 10여 개의 큰 바위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포경 생활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사례이자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라스코, 스페인의 알타미라 원시 동굴벽화처럼 울산 반구대의 암각화 역시 당시 서식한 동물생태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내포하고 있다. 태화강 상류의 대곡천 중류에 위치하는 대략 너비 8m, 높이 5m의 바위 표면에 단단한 석기로 새
코로나 엔데믹 전환 후 맞이하는 첫 여름 휴가시즌인 요즘,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공항마다 인산인해이다. 특히 서유럽 패키지여행의 필수 코스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인이 방문하는 인기 장소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을 개조한 것으로, 1669년 첫 번째 살롱전을 시작으로 1793년 비로소 회화작품을 전시하며 박물관의 첫 문을 열었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야외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과 61만 점이 넘는 소장작품 중 회화 소장품만 총 7500여 점에 이른다. 전시실에 있는 작품이 3500여 점에 이르러 1분씩 감상한다고
생애주기 상 청년기는 누구나 불안정하고 성장통을 경험하는 시절인 것 같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천재 화가이자 큐비즘의 거장인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1973)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암울했던 청년 시절의 작업 시기를 미술사에서는 소위 ‘청색 시대’라고 분류한다. 청색 시대는 통상적으로 1901년에서 1904년에 해당하며 이 시기에 피카소는 주로 검푸른색이나 어두운 청록색을 주조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스페인 출신의 젊은 청년 피카소는 고국을 떠나 낯선 파리에 머무는 동안 작품이 팔리지 않아 궁핍한 생활
여러분은 멕시코 하면 무엇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가? 저는 한 점의 불씨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삶을 소진(燒盡)하며 살다간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 1907~1954)가 떠올려진다. 멕시코의 국민적 연인이자 국보인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현실적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개성적이고 독보적인 회화의 영역을 구축한 화가이다.프리다는 어린 시절에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고, 18세 학창 시절에는 전차 충돌사고로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대형 사고로 겨우 목숨만 건진다. 담당 의사들이 퍼즐 조
미술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조각작품이다. 최초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시가 장식미술 박물관 건립계획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로댕에게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입구 제작을 의뢰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리시의 사정으로 박물관 건립이 백지화되면서 의뢰가 취소되어 작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지만, 그는 오히려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라고 만족해했다고 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한 로댕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구상부터 제작까지 30년 이상의 시간을 소요하면서 석고 형상까지는 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