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 대변인 “인질범이 있다면 한국 정부”
미국의 이란 제재로 한국 내 이란 자금 70억 달러 동결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 모습. 오른쪽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타고 온 고속정이다. 사진은 나포 당시 CCTV 모습. 연합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국적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 나포와 관련해 이란 정부 대변인이 “한국 정부가 70억 달러(약 7조6천억원)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온라인 기자 회견에서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일축하며 이같이 말했다.

라비에이 대변인은 한국 선박 나포와 관련해 “최근 ‘인질극’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며 “이란 자금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여기에 인질범이 있다면, 그것은 70억 달러가 넘는 우리 자금을 근거 없는 이유로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란 국민의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재 대상이 아닌 의약품 같은 물품에 관해서도 근거없는 구실을 들어 이란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은 이란 국민이 우리 자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추가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전날 오전 10시께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해양오염을 이유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를 나포했다.

그러나 한국케미의 선주사인 디엠쉽핑은 해양 오염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한국 정부는 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선박과 선원의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구했으며,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을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했다.

혁명수비대는 나포 이유로 해양오염 혐의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한국 계좌에 동결된 이란 자금에 대한 불만 또는 호르무즈 해협 제해권 과시, 적대관계인 미국과 그 동맹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라비에이 대변인의 발언으로 미국의 제재로 한국 계좌에서 출금이 동결된 이란 자금이 한국케미를 나포한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은 이날 발언에 대해 “동결된 자산과의 연관성에 대해 가장 직설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과 IBK기업은행·우리은행에 따르면 한국 내 동결된 ‘이란 자금’은 약 70억 달러로 추정된다.

한은에 예치된 일반은행의 초과 지급준비금은 지난해 9월 기준 3조4천373억 원으로, 이 자금의 90% 이상이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맡긴 돈이다.

이와 별도로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도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이 동결돼 있다.

두 은행은 2010년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원화 계좌를 개설했으며, 이 계좌는 이란산 원유 수입과 국내 수출업체의 대(對)이란 수출 지원을 위해 사용됐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2018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려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으며, 이란 정부는 이 동결 자금을 해제하라고 요구해왔다.

동결 자금의 활용과 관련해 한국과 이란 정부는 이 자금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이 인도적 거래의 범주에 속하는 만큼 이 같은 자금 활용에 대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란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외교부는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을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 및 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제재 예외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은 원화로 예치된 자금을 코백스에 송금하려면 먼저 미국 은행에서 달러화로 환전해야 하는데 이때 자금이 다시 동결될 가능성을 우려해 확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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