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물질 만능 세상이 됐다. 더불어 빈부의 차는 더욱더 극심해지고 생활모습에서 극한 차이를 보인다. 세상이 그렇게 되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금수저 흙수저 하는 말을 많이 한다. 부모를 비롯한 조상을 원망한 말로 흙 수저 타령이다. 그러나 본시 금수저가 따로 있었던 것 아니다.

금수저 그들도 흙 수저였던 때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금수저도 흙 수저만 못한 사람 얼마든지 있다. 왕자로 태어난 금수저가 세자책봉을 둘러싼 다툼으로 숨어 살거나 죽음을 당하는 일 그것 바로 흙수저만도 못하다.

어찌 됐던 세상 삶은 자신의 몫이다. 금수저가 흙수저가 되는 것도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것도 그 모두가 그렇다. 흙 수저라며 부모 탓하는 젊은이들! 그 생각 버려야 한다. 왜냐고?

중국이 낳은 사상가 공자도 중국동북부 산동성 한 고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살며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의 집 창고관리 일을 하거나 가축 기르는 일을 하면서 공부는 물론 예, 악, 활쏘기, 마차 술, 서예, 수학, 고전 등을 열심히 배워 모든 분야에 능통했다. 특히 역사와 시에 밝았다.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공자는 배움을 단순히 지식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인격의 수양까지도 염두에 뒀다. 그는 군자에게 배움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도덕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세상변화를 위해 자신에게 정치에 참여하라는 것 하늘이 내려 준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원이 되어 노나라에서 정치 사법 행정 외교 분야 일에 참여했다. 그 얼마 후 공자는 계환씨 등 세도가들의 견제를 받게 되자 노나라에서 한계를 느끼고 자기의 뜻을 펼치기 위해 결국 노나라를 떠났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 그의 나이 쉰여섯 살이었다. 공자는 자기 자기의 뜻을,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주변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인과 예에 대한 사상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12년의 세월 동안 주변 나라들을 떠돌았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공자를 따르는 제자들이 그와 함께하며 명성이 널리 퍼졌다.

공자는 결국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예순일곱 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며 글을 써 책을 내기 위해 편집에 생을 바쳤다.

공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속칭 흙 수저라는 환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힘들게 살았으나 한 시대는 물론 국가 민족을 뛰어 넘나드는 인물로 길이 빛나는 존재가 됐다.

이 세상에는 공자와 같이 흙 수저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 인물이 적지 않다. 미국의 에이브람 링컨 대통령은 시골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어머니와 사별을 하고 동네 가계에서 점원생활을 하며 학교도 겨우 초등학교 2학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흙수저 중에 흙 수저였다.

또 흑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화가 고흐 그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공자가 살던 그때와 시대가 변했는데 말이 안 된다고 하겠지만 사람 사는 환경은 크게 차이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행위가 자신의 잘 못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흙수저라 생각하는 자신의 지난 삶을 떠올려 보아라. 그리고 후손들에게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 한 번쯤 해 보고 실천하는 태도를 갖는 것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기 현실 앞에서 조상 아닌 내 탓이요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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