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세상은 초단위로 바뀌고 있는데 4·7재보궐 선거를 압승한 국민의힘은 20여 일 만에 ‘도로 한국당’이 되고 있다. 서울·부산 시장에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니 내년 대선도 ‘따놓은 당상’이라도 된 듯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잠복해 있던 꼰대 보수세력들이 이리떼처럼 달려들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를 한 4명의 중진 의원들도 하나같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매달리며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심지어 보수에 사망 선고(?)를 내린 ‘박근혜 탄핵’을 공개적으로 부정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박 전 대통령 때 개인적 은혜를 입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박 전 대통령에게 “나는 당신을 끝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가. 지금 이 중차대한 시점에 사면을 들고나와 국민들로부터 무엇을 얻겠다고 하는 것인가. 국민은 지난 4년 동안 정의와 공정·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얼마나 갈망하며 인내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가. 어찌 전직 두 대통령의 사면이 많은 국민이 여권의 내로남불과 민생에 울화병이 생길 정도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현실보다 앞 설 수가 있나. 국민이 등을 밀어줄 때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뜻을 잘 새겨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은가.

청와대서 대통령 앞에 두 손 모아쥐고 두 전직 대통령 특별사면 등을 요청하는 국민의힘 소속 두 시장의 모습을 본 많은 국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했겠나. 코로나 사태, 집값 폭등, 청년 취업난, 실업난, 세금 폭탄 등 산적한 민생문제보다 ‘사면’이 우선이었나. 지난 2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1주 전보다 2%포인트가 내려앉은 28%, 더불어민주당은 32%로 앞섰다. 지지율 하락은 사면과 탄핵 거론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다 당을 떠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국민의힘을 향한 막말도 중도층이 당을 등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재보궐선거 승리와 중진들의 사면 주장으로 ‘태극기 부대’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태극기 부대와 손잡고 당을 패배로 이끈 ‘패장’의 등장은 2030 세대의 이탈을 가속시킬 뿐이다. ‘도로 한국당’을 만들어 내년 대선을 어떻게 치르겠다는 것인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겼다”가 유권자의 7%에 불과한 여론조사를 벌써 잊었는가.

지난 10년은 우리 정치사에 이른바 ‘친박’과 ‘친문’ 정치의 퇴행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私)가 공(公)을 압도했고 과거가 미래를 질식시켰고 기득권이 혁신을 가로 막았다. 분열의 언어가 통합을 물어뜯었고 천박한 말이 지성을 조롱한 시대를 만들었다. 선거참패 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에서도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빠진 것”이라고 자성했다. 문재인 정권이 지난 4년간 ‘친일 잔재 청산’을 외쳐 국민을 편가른 이외 무엇을 남겼는가. 국민의힘도 지난 4년 내내 친박·비박 싸움하다 21대 총선을 망치지 않았는가. 2016년 새누리당이 총선 패배 후 친박 핵심 이정현을 당 대표로 뽑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 움트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야권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합류를 바랄 수가 있겠느냐. 친박 세력이 당 주도권을 잡으면 윤석열 전 총장은 제3지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여론은 정권교체를 지지하고 있었나 야권의 정치 지형은 홍준표·원희룡·유승민·안철수 중 단일 후보의 국민의힘과 제3지대 윤석열로 분열되게 된다. 결국은 20년 정권론을 주장한 민주당의 어부지리가 눈에 보일 뿐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