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포항시 시설관리공단 본부장
이광희 포항시 시설관리공단 본부장

지난달 25일 포스코인재개발원(현재는 인재창조원으로 개명) 교수로 재직하면서 포항역사의 재정립이라는 큰 족적을 남기신 이영희 교수께서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교수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포항역사를 제대로 정립한 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교수께서는 일찍이 “포항은 철강역사를 빼고는 역사를 논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포항의 고대역사에 등장하는 연오랑은 현재의 오천읍과 동해면지역에 이르는 고대 신라초기 부족국가였던 근기국(勤耆國)의 수장(首長)으로 제철기술을 보유한 실존인물이었다며, 1990년대 초반에 이 이론은 내놓았던 분이시다.

당시 지역의 사학자들은 대부분 이 교수의 이론은 배척했으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세오녀에 대한 기록을 단순 설화로 치부했다.

훗날 경북일보가 연오랑세오녀연구소를 설립해 이 교수를 연구위원으로 영입하여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세오녀의 기록을 하나하나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립해 현재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경주시에서 공직에 입문한 필자는 1995년도 시·군통합 당시 포항으로 전입한 직후 당시 지역신문 대동일보(현 경북일보 전신)에 게재된 자료를 접하고서, 경주 신라국의 시조 박혁거세의 신화 그 이상으로 연오랑세오녀 스토리에 빠져 이 교수를 수차례 찾아뵌 적이 있다. 이후 최근까지 가끔 이 교수를 찾아가 그분이 연구한 사료들을 받아보거나 포항역사의 흐름을 듣곤 했는데, 지난 2017년도부터는 멀리 남해에 요양차 가 계셔서 찾아뵐 수가 없었다.

현재 남구 동해면 도구리 해안언덕에 자리 잡은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는 이 교수의 역사풀이가 결정적으로 기반이 되어 정부지원을 받아 조성한 포항의 귀중한 역사문화자산이다. 이 사업은 애시당초 신라대장간 조성을 주제로 문체부의 3대문화권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되었다. 이 사업의 유치를 두고 경주시와 대립했는데, 포항은 고대 철 생산지이자 제철소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이 교수의 연구이론을 토대로 문체부에 철과 관련한 소상한 역사문화자료들을 제출하고 직접 브리핑한 결과, 철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은 포항시가 공예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은 경주시가 추진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되었다.

오천지역의 젖줄인 냉천은 당시 사철을 캐내는 사철집산지였으며, 냉천과 연접한 해병부대 내 일월지 연못은 고대 제철소의 철을 생산하고 제련하기 위한 제철용수지였다는 이 교수의 연구이론과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철과 관련된 고증기록들, 현재의 포항제철소 등 토대로 포항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관련 역사의 흐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문화적기반이 조성되어야한다는 포항시의 입장이 먹혀든 것이다.

이 교수는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가 등장하는 당시 신라8대 아달라왕 때의 시대적 배경과 한일관계 등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으며, 집무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포항역사 얘기를 들려주셨던 모습이 지금 너무나 생생하다. 그 이후 이 교수는 고대 신라의 언어 ‘이두(吏讀)’로 만들어진 일본에 현존하는 만요슈(萬葉集·고대 일본 지배계층의 노랫말 5400여수)을 해석해 일본 현지 지식인 300여 명으로부터 후원과 호응을 받는 등 고대 한일관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젊은 시절 한국일보에 몸담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역사문화의 맥을 심층 밝혀낸 것이며, 8대 국회의원 시절과 이후 포스코인재개발원에 재직하면서 고대 한일관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문화교류를 증진시켰거나, 포항시민과 포스코 가족들에게 역사문화의 인식을 심어주고 재조명하는데 기여한 공로가 남달랐던 분이셨다.

한 가지, 이 교수께서 그간의 업적들이 지역에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이 교수님의 유지를 이어갈 분이 지역에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끝으로, 지역사회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가 당초 구상되었던 철과 관련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관계를 연출해낸 것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테마파크 한 켠에다 고대제철소 용광로라도 연출하고 현대의 대장간이라도 갖추어 쇠를 벼루거나 담금질 등 실제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냉천에는 고대 제철소 원료를 공급했던 사철을 캐내었던 곳임을 알리고, 해병부대 내 일월지 연못에도 단순히 일월사적비만 둘 게 아니라 고대제철소 용수지였음을 나타내는 표지석 등을 세우고 그 가치를 높이도록 하면 어떨까? 또, 테마파크 내 귀비고에는 이러한 스토리를 주제로 현대기법에 접목한 연출범위를 한층 높이도록 하면 어떨까?

이 교수께서 정립해 둔 연오랑세오녀 역사를 토대로 한 포항의 철강역사와 문화적 기반과 지역의 철강산업이 더욱 고도화되고, 발전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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