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대구취재본부 기자

“보기 드물게 열심히 하던 직원이었는데…”

계약직 공무원 김열정(가명)씨가 대구 달서구청의 반려동물사업에 참여한 수강생들과 짜고 1억2000여만 원의 보조금을 챙겼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보기 드물게 열심히’다. 앞에 ‘공무원 치고는’이라는 말을 생략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한 간부 공무원은 “검찰이 무리하게 김씨를 몰고 있는 것 같다”며 두둔했다. 단순히 반려동물사업을 진행하면서 관리와 감독에 소홀한 틈을 타 마을 기업 대표들이 보조금을 횡령했다는 식이다. 평소 김씨를 ‘좋은 공무원’으로 평가한 간부 공무원의 눈에 김씨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또 다른 피해자였다.

김씨 역시 지난 10월 경찰에 구속되기 직전까지 동료들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했다. 동료들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를 향한 동료 공무원들의 두터운 신임은 그의 ‘열정’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계약직이라는 신분에도 10년 넘게 달서구청 평생학습과에서 근무했다. 평생학습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수차례 국가 공모사업에 선정되는 성과도 올렸다. ‘내일처럼 열심히 하는 공무원’으로 평가받았다.

‘열정맨’ 김씨가 국가보조금을 가로채기로 마음먹자 ‘나랏돈은 눈먼 돈’이 됐다. 그는 수강생 4명과 마을 기업을 만들어 국가보조금을 타낸 뒤 나눠 가졌다. 반려동물 관련 강의는 하지도 않은 채 강사료 명목으로 받은 보조금을 빼돌렸다. 재료비 등을 선결제한 뒤 리베이트를 받기도 했다. 이런 수법으로 2018년부터 1년 동안 보조금 1억2000만 원을 가로챘다. 동료 공무원들이 평가하던 ‘내 일처럼 열심히 하는 공무원’은 실제로 구청 사업이 ‘내일’이었던 셈이다.

김씨의 범행은 공모자들 내부에서 터져 나온 갈등이 아니었다면 완전 범죄가 될 뻔했다. 김씨가 작성한 허위 서류가 담당 팀장과 과장, 국장의 결재까지 이어지는 동안 실사조차 없었다. 공무원들은 “실무 담당자가 속이려고 마음먹고 근거 자료를 첨부한 허위 서류를 들이밀면 속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인력은 부족한데, 해야 할 사업이 많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다시 생각해봤다. 다른 공무원들이 김열정씨처럼 나랏일을 내일처럼 여겼다면 어땠을까. 1억 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면서 꼼꼼하게 챙기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공무원치고) 보기 드물게 열심히 하는’이 아닌 ‘(공무원답게) 열심히 하는’ 열정 가득한 공무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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