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프랑스 남서부 도르돈뉴 지방의 베르주락 마을에는 코가 크고 못생긴 남성 시라노 드 베르주락의 동상이 두 개나 서 있다. 그는 베르주락 성 출생으로 추정되는 유명 검객이자 작가이던 실존인물 사비니엥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락(Sabinien de Cyrano de Bergerac, 1619-1655)이다.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방스 지역 출신의 저명한 시인이자 희곡작가인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 1868-1918)의 5막 짜리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락’ (1897 작)이 성공하며 크게 알려지게 됐다.

에드몽 로스탕의 극중에서 시라노 드 베르주락은 글도 잘 쓰고 용맹무쌍한 검객이지만 코가 너무 크고 못생긴 자격지심에 사랑하던 여인 록산에게 고백조차 못했다. 그러던 중, 잘 생긴 동료인 근위대 장교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대신 써서 록산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의 편지(사실은 시라노가 써준)를 읽으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2018년에는 아론 데스너, 브라이스 데스너 작곡의 파격적인 뮤지컬 ‘시라노’가 코넷티컷 주 등에서 막을 올렸다. 뉴저지 출신의 난장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1969년생, 132Cm)와 플로리다 출신의 글래머 미녀배우 헤일리 베넷(1988년생, 173Cm)이 주연을 맡았는데, 2021년 영국 조 라이트 감독(1972년생)의 뮤지컬 영화 ‘시라노’의 원전이 됐다.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시라노’ 이전에 다른 두 영화가 특히 유명하다. 마이클 고든 감독, 호세 화라 주연의 1950년 흑백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락’은 에드몽 로스탕의 문학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수작이다.

1990년 장 폴 라팡노가 감독하고 제라르 드 파르뒤에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락’은 프랑스어 고유의 시어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조 라이트 감독의 뮤지컬 영화의 제목은 그냥 ‘시라노’이다. 앞선 훌륭한 두 영화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필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부분에서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먼저 배우들이 직접 노래 부르는 ‘뮤지컬 영화 시라노’이다, 다음으로는 출연 배우들의 유별남이다. 시라노 역에는 코쟁이가 아닌 난쟁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를, 미남장교 크리스티앙 역에는 뉴올리언즈 출신의 흑인 배우 캘빈 해리슨 주니어(1994년생, 170Cm)를 캐스팅한 것이다. 록산 역시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를 연상시키는 약간 개구쟁이 같은 헤일리 베닛이 아닌가. (베넷 배우와 라이트 감독은 미혼 상태에서 딸 하나를 두었다) 이들 세 배우의 등장은 너무 의외라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차츰 이들의 연기와 노래에 공감하게 되면서 주인공들의 키나 피부색같은 것들은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 크리스티앙에 이어 시라노마저 죽는 슬픈 결말에서 ‘No Cyrano‘ 노래를 부르며 록산이 흘리는 투명한 눈물은 상당히 미학적이기까지 하다. 록산의 집 발코니 아래에서 크리스티앙과 시라노가 노래부르는 장면은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의 발코니 장면을 연상케 한다.
 

김성태 영화평론가·국제펜문학회 회장

난쟁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무대 및 영화 뮤지컬에서 ‘시라노’ 역을 맡게 된 연유로서 그의 아내 에리카 슈미트(1975년생, 168 센티)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슈미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뮤지컬 영화 ‘시라노’에서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시기한 드 기슈 근위대장(공작)의 명령에 의해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응 먼 전장터로 전출되는데, 마지막 전투 직전 크리스티앙은 록산이 사랑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고 시라노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으로 돌격해 전사하고 시라노는 큰 부상을 입는다. 3년 뒤 고향에 돌아온 시라노 역시 전쟁 부상의 후유증으로 죽게 되는데 편지의 진실을 알게된 록산의 품안에서 돌아오지 못할 슬픈 작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슬픈 사랑을 한 시라노이지만, 실제 삶에서의 피터 딘클리지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훌륭한 배우로 자리잡았다. 2005년 결혼한 재능있는 미녀 아내와의 사이에 자녀도 둘이나 뒀다. 베이징 겨울 패럴림픽 기간 중 난쟁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한편의 서정시와 같은 영화 ‘시라노’ 를 통해 또 하나의 인간승리를 보여줬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