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헌법재판소 뒤쪽에 ‘백송’ 한 그루(천연기념물 제8호)가 있다. 수령이 600년을 넘었다. 이름대로 함박눈을 뒤집어쓴 듯 온통 희다. 우리나라 백송 중 나이가 가장 많다. 험난했던 조선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 온 소나무다. 팔을 벌린 모습이 하늘을 향해 대한민국의 태평무사를 비는 듯하다.

대심판정에도 소나무가 있다. 홍송이다. 백두산에서 왔다. 수령이 수백 년 됐다. 아름드리 기둥이 돼 대심판정의 높고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세파에 탈색되지 않는다. 되레 붉게 물들어 간다. 소나무의 웅혼한 기상이 온전히 느껴진다.

건물 외벽 제일 상단 대리석에는 9개의 무궁화가 새겨져 있다. 9명의 재판관을 상징한다. 그들의 권위가 훼손될 수 없다는 대외적 선언이다. 그래서 돌에 새기고 높이 올려놓았다.

지난주 이종석 신임 헌법재판소장이 취임했다. 경북 칠곡 출신으로 원칙주의자인 그를 야당도 거부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법대 동기란 점이 회자됐지만 비토 사유가 될 수 없었다.

“재판 독립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주목받고 있다.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이 일상화될 조짐이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민주당이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탄핵소추하려 하자 그가 물러났다. 앞으로 방통위원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탄핵소추하겠다고 민주당이 공언했다. 누가 될지 모르는데 탄핵을 미리 결정한 것이다. 방통위 기능 마비가 목적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결국 검사 2명이 사상 두 번째로 탄핵소추됐다. 헌재가 바빠지게 됐다. 사법 시스템이 정치를 재단하는 불행한 상황이 온 것이다.

헌법재판소 안팎을 백송과 홍송이 지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돌에 새긴 권위를 지켜야 한다. 그게 국민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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