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플라톤의 본질주의(Essentialism)는 이 세상이 영원불변의 완벽한 ‘이데아(Idea)’로 돼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데아는 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윈은 자연계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본질이 변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선택 이론’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들이 살아남아 자손을 더 번성시킨다’고 주장했다. ‘적자생존’이다.

보수도 진화할 수 있을까. 2020년 4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앞으로 보수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보수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진화해야 존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내 유력 주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보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전자’라는 주장이었다.

과연 그런가. 보수 진보 논쟁이 치열했던 미국에서 이제 그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공화당과 민주당이 있을 뿐이다. 보수가 이데아적인 집착에 빠지는 한 외연 확장은 무망하다. 무엇보다 내부논쟁에서 발목이 잡힌다. 세대교체가 시작되면서 보수란 거푸집이 거추장스런 계층이 중심부로 치고 들어오고 있다. 보수 기치가 세대 갈라치기의 잣대가 되고 퇴영적으로 몰린다면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갈 길 바쁜 김기현 대표가 ‘빅텐트’를 내세웠지만 폐쇄된 공간은 확장에 한계가 있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의 입당이 거론되는 가운데 하태경 의원이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국민의힘이 변해야 한다”고 아픈 데를 찔렀다. 맞는 말이다. 분명한 것은 보수를 버려야 보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해 온 과정”이라 결론 내렸다. 물그릇을 키워야 한다. 진보 담장까지 넘봐야 한다. 다양성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게 보수의 혁신이고 진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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