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성 안에 초가집 한 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서로 맞닿아 있었으며,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밤낮 끊이지 않았다.’ (삼국유사)

비 맞지 않고 길을 갈 수 있었던 통일신라 계획도시 서라벌 경주. 밤낮없던 경주인들의 풍류는 신라의 풍요를 대변했다. 그들은 어떻게 즐겼을까.

태자가 살았던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에서 1975년 발굴된 14면체 주사위, 주령구(酒令具)에서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물속에 1500년 세월을 잠겨 있었지만 온전했다. 각 면에는 술과 관련된 벌칙이 주로 새겨져 있었다. 삼잔일거(三盞一去), 술 석 잔 연거푸 마시기다. 요즘 ‘후래자삼배’(지각 벌주)와 비슷하다. 자창자음(自唱自飮)이 나오면 노래 한 곡을 한 뒤 술을 마셔야 했다. 그리고 술잔을 비운 뒤 웃음을 터뜨리는, 음진대소(飮盡大笑) 호연지기 벌칙도 있다.

고약한 규칙도 있다. 중인타비(衆人打鼻)는 여러 사람이 덤벼들어 코를 때리는 벌칙이었다. 누가 덤벼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유범공과(有犯空過)는 요즘 직책 파괴 게임과 비슷하다. 농면공과(弄面空過)가 나오면 얼굴을 간질여도 피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고, 임의청가(任意請歌)는 누구에게나 노래를 청할 권리였다. 흥에 겨운 이에게 소리 내지 말고 춤추라는 금성작무(禁聲作舞)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술자리가 잦은 연말이다. 잇따른 송년회 과음으로 고생하는 회사원들이 많다. 지난해 음주로 숨진 사람이 5000명을 넘었다. 매일 14명꼴로 세상을 등졌다는 계산이다. 특히 여성 사망자가 급증 추세다. 신라 상류층 주사위놀이는 흥을 돋우면서도 과음을 방지하는 안전장치였다. 한해를 정리하는 송년회가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 ‘사랑하는 집과 자녀를 지키자’는 ‘집애가자’(執愛家子) 구호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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