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선거에서 이기려면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아무리 지명도가 높고 탁월한 능력을 갖춰도 유권자와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주면 표를 얻을 수 없다. 서민과의 친근감을 부각하기 위해 정치인은 자주 재래시장을 찾는다. 국밥, 떡볶이, 호떡, 어묵 등이 단골 메뉴다. 유력 정치인들은 겨울철 연탄배달 봉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들은 활동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홍보물로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코미디 같은 해프닝이 자주 벌어진다. 음식값을 몰라 비웃음을 자아내거나, 얼굴에 일부러 연탄 가루를 바르고 사진을 찍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서민과 거리가 먼 사람이 표 구걸을 위해 서민인 척 행세하는 것을 ‘서민 코스프레’라고 한다. 여야 정치인의 그런 진부한 모습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지겹다는 유권자가 많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 연성권력)란 강제나 보상보다는 마음을 끄는 힘, 즉 유혹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파워는 한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가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 제반 정책 등의 매력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지낸 조지프 나이의 저서 ‘소프트 파워’에 나오는 말이다. 소프트 파워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보여주는 일종의 매력이다. 하드 파워(Hard Power, 경성권력)는 군사력, 경제력, 자원 등으로 상대의 이익을 위협하여 강압하는 능력이다.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뉴트 킹그리치는 “정말이지 중요한 관건은 내가 얼마나 많은 적을 죽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 설 협력자들을 얼마나 많이 늘려나가느냐에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적을 죽이는 것’은 하드 파워 영역, ‘협력자를 늘리는 것’은 소프트 파워의 문제다.

지금은 이론과 논리뿐만 아니라, 남다른 감성과 감각을 가진 조직과 개인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감성 시장의 시대다. 사람을 끄는 매력, 유혹의 힘, 설득력은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승패를 좌우한다. 소비자를 끌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온갖 유인책을 마련해야 하는 수험생 감소 시대의 대학, 새로운 신자의 확보와 기존 신자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종교단체 등은 독창적인 소프트 파워 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 경제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 군사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 선견지명인가. 문화가 바로 소프트 파워다. 중국은 엄청난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하드 파워로 주변국을 압박하기에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경제력과 K-무기 등으로 하드 파워도 강화하고 있지만, 한류란 소프트 파워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다. 쿠바와의 수교에도 한류의 힘이 컸다.

증오와 혐오, 저주와 모욕, 편 가르기와 세몰이는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파워가 약해지는 순간 영향력도 사라지고 사람들에게서 잊힌다. 호소와 설득, 상호 존중과 타협, 상생, 인간적인 매력 등이 가미된 소프트 파워는 결과에 상관없이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이제 국민은 억지로 연출한 국밥 먹기, 연탄 배달 같은 것 말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적 매력과 고상한 기품, 독특한 멋을 가진, 그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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