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방통심의위 특별위원

제10대 총선이 끝난 뒤 전북 김제에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했다. 간판이 있었다. ‘만고풍상상회’ 지친 삶의 냄새가 밴 이동 잡화상이었다. 확성기에서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못 잊어서 또 왔네/ 미련 때문에/울며가던 내가 왔네/ 못 잊어 왔네/그리운 님 찾아서 내가 또 왔네’ 전북 김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최낙도가 방물트럭을 만들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틀며 4년간 지역구를 누볐다. 얼굴도 알리고 생활비도 버는 신판 보부행상이었다.

이어진 11대 총선에 민권당 후보로 출마한다. 또 낙선. 가사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표가 가장 적게 나온 동네로 이사가 고개를 숙이며 산다. 그리고 13대 총선에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서 더디어 당선된다. 14대 총선에서 재선돼 민주당 사무총장을 역임했지만 비리 혐의로 밀려났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김제시장에 도전했다 낙선한 뒤 정치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70~80년대만 해도 최낙도 같은 이색 후보들이 많았다. 스토리텔링이 됐다. 어렵게 산 눈물겨운 역정이 유권자들의 동정으로 이어지며 전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 이 전설에 도전한 이색 춤꾼이 눈길을 끈다. 대구북갑 선거구 박정희 더불어민주당 후보.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무가 전공이다.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 추모제에서 맨발로 춤을 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팽목항,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도 진혼무를 추었다. 위안부와 독립운동가,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춤을 지금도 추고 있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교사로 돈을 번 뒤 뒤늦게 대학 무용과에 진학해 춤을 추다 정치판에 픽업됐다. “죽은 영혼을 위한 행사가 남은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자리가 된다”는 그는 “당선돼도 춤판을 떠날 수 없다” 했다. 25년 춤꾼이 국회에 입성해 춤출 수 있을까. 진혼무가 아닌 환희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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